by
보내미 이 복 희
Nov 03. 2024
변명을 훔치다/ 이복희
된장 뚝배기에 숟가락 함께 들락거리는 건
왠지 께름칙하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처럼
공중화장실 변기에 그냥은 엉덩이 걸칠 수 없어
일회용 변기 커버 한 장을 훔쳤다
종이 한 장 훔치는데도 죄를 알아 벌렁거리는 심장
꼬깃꼬깃 접어서 가방 속에 넣은 종이
왜 그리도 버석거리던지
콩닥거림 속에 야릇한 희열이 생겨났다
얼마 전까지 기마 자세로 엉거주춤 서서
배설하던 내 모습을
눈 맑으신 하느님은 축은한 듯 내려다보지 않으셨을까
이제 일회용 변기 커버 한 장을 슬쩍 마련했으니
전국 어느 공중화장실이라도
한 번은 맘 놓고 고독을 즐길 수 있겠다
몸에서 나온 뜨끈한 찌꺼기
슬그머니 내려놓을 때
변기 속 원심력은 내 비밀을 채간다
다음은 걸터앉을 누군가를 위해
물은 또 어디론가 흘러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