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와 프시케
‘에로스’ 혹은 ‘큐피드’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자연스레 화살 통을 등에 매고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가진 아기 천사 에로스를 떠올린다. 우리가 숱하게 보아온 회화 작품들을 비롯한 미디어에서 소개되는 에로스는 하루라도 장난을 치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칠 것 같은 장난꾸러기 같은 아이의 모습이다. 진정한 사랑을 알기엔 너무 어리고, 그래서인지 사랑을 대하는 에로스의 모습은 다소 가벼워 보이기까지 한다. 만화 영화를 볼 때마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에로스가 어쩐지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도 평소 에로스의 사랑을 향한 진중함 없는 짓궂은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평생 사랑을 모르고 피터팬 같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만 살 것 같은 에로스에게도 진정한 사랑이 오게 되는 날이 온다. 그것은 그가 ‘프시케’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날부터 시작된다.
옛날 어느 나라의 왕과 왕비에겐 세 명의 아름다운 딸들이 있었다. 세 자매 중 가장 눈부신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막내딸 ‘프시케’는 이웃 나라 사람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러 올 정도로 빼어났으며 개중 그녀를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 또한 존재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미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프로디테의 제단에는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를 안 아프로디테는 격분하여 자신의 아들, 에로스에게 프시케를 가장 추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하라는 명령을 했다. 새로운 놀 거리가 생긴 에로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장난칠 생각에 신나서 프시케를 찾아갔지만 잠든 프시케를 본 에로스는 그녀의 화려한 외모에 놀라서 우물쭈물 대다, 실수로 자신의 화살촉에 찔려서 프시케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일평생 다른 이들의 마음 가지고 장난치던 업보를 그대로 돌려받게 된 셈이었다. 이때 에로스의 몸집은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건장한 성인 남성으로 자란다. 진정한 사랑을 하면 성인이 된다는 아름다운 은유적 표현이 에로스의 성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막내딸이 세상에서 가장 추한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슬픔에 빠진 왕과 왕비와는 달리 프시케는 매우 태연자약하게 자신을 바위산 꼭대기로 데려가 달라 청한다. 그런 프시케의 소원에 왕과 왕비는 아랫사람들을 시켜 어여쁜 신부로 단장한 프시케를 산꼭대기로 보낸다. 그 후 서풍 제피로스가 프시케를 안전한 풀밭으로 데려다주었고 그 자리에 잠이 든 프시케는 휘황찬란한 궁전에서 눈을 뜨게 된다. 사람은 없고 자신을 하인이라 소개하는 음성만 들리는 궁전에서 살게 된 프시케는 밤에만 나타나는 ‘추한 남자’와 결혼 생활을 한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다정하고 배려심 넘치는 ‘추한 남자’에게 사랑에 빠진 프시케는 자신의 남편의 얼굴이 궁금했지만 자신의 얼굴을 보면 앞으로 영영 볼 수 없다는 남편의 말에 꾹 참는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둘의 사랑에도 위기가 오게 된 건 막냇동생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질투한 언니들의 이간질 때문이었다. 등불을 숨겨 두었다가 ‘추한 남자’가 잠들었을 때 얼굴을 비춰보라는 조언에 따라 프시케는 그 날밤 ‘추한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고, 그가 ‘에로스’라는 것을 알게 된 프시케는 당황해서 손을 덜덜 떨다가 등불의 기름 한 방울을 실수로 에로스의 어깨에 흘리게 된다. 이를 안 에로스는 배신감에 분노하여 프시케를 떠나고 프시케는 에로스를 다시 되찾기 위해 아프로디테를 찾아, 종노릇을 하게 된다.
주변인들에게 은혜를 받은 프시케는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심부름을 큰 무리 없이 하게 되지만 마지막 심부름에서 그르치게 된다. 페르세포네가 아프로디테에게 전해 주라던 아름다움의 묘약이 담긴 상자를 가져가던 프시케는 자신도 오랜만에 만날 에로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상자를 몰래 열어보게 되는데 아름다움의 묘약은 다름 아닌 깊은 잠이었던 것이다. 한 편 프시케를 떠나고서도 프시케를 그리워하던 에로스는 프시케를 다시 찾으러 나선다. 아름다움의 묘약이 담긴 상자를 열고 깊은 잠에 빠진 프시케를 발견한 에로스는 입을 맞춰 프시케를 영원한 잠에서부터 깨우고 제우스의 허락을 구해, 프시케와 결혼을 하게 된다. 에로스와 결혼하면서 영생의 삶을 얻게 된 프시케는 신들로부터 에로스와 같은 날개를 선물 받게 되는데, 프시케가 받은 날개는 새의 날개가 아닌 나비의 날개였다.
그리스어로 ‘나비’와 ‘영혼’이라는 뜻을 가진 프시케는 인간의 영혼으로 살 땐 영생의 삶을 사는 신인 에로스에게 닿기 위해 고전한다. 누에고치가 긴 잠을 잔 뒤에 화려한 빛깔의 날개를 뽐내는 나비가 되어 다시 태어나듯이, 아프로디테의 말도 안 되는 심부름으로 죽은 사람들만 간다는 저승에도 다녀오고 사랑의 묘약이 담긴 상자를 몰래 열어 죽음의 잠에 들었다가 깨어난 프시케 역시 나비와 같이 긴 고통 끝에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런 프시케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정신은 놀랍게도 오늘날 젊은 층들이 즐겨 쓰는 신조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전하는 삶’이 고정 값이 된 한국 사회에서 젊은 층들은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자’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정신을 외치지만 때론 하기 싫은 일도 견뎌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일을 버티면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걸 ‘존버’라 일컫는데 이는 ‘X나’라는 비속어와 ‘버틴다’의 앞 글자만 따와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그리고 ‘존버’하는(X나 버티는) 삶을 이겨내면 낙이 온다는 말을 ‘존반승’이라 부른다. ‘존반승’은 ‘‘존버(X나 버티면)’는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뜻을 가진 ‘존버’가 응용된 또 다른 신조어다.
공주와 왕자가 나오는 동화책이나 만화 영화를 보면 끝엔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그 들은 그 후로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는 문장이 꼭 나온다. 그리고 프시케의 이야기 속에서도 다른 맥락으로 ‘그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를 암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랑’을 뜻하는 에로스와 ‘영혼’을 뜻하는 프시케가 만나, ‘영혼의 사랑’을 하게 되는데 그 둘 사이에서 ‘볼룹타스’라는 딸아이가 태어난다. 볼룹타스는 ‘기쁨’을 뜻하는 ‘쾌락의 여신’인데 이는 중의적으로 에로스와 프시케는 오래도록 기쁘게 살았으며 그 둘의 행복의 산물은 딸아이 ‘볼룹타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프시케의 이야기는 ‘영혼의 고통을 견뎌낸 뒤에 영원한 사랑의 희열을 얻는다’라는 함축적인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탈리아 출신의 조각가인 안토니오 카노바가 조각한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는 긴 잠에 빠진 프시케를 입맞춤으로 깨워주는 에로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서로를 팔에 감싸 안고 주변에 어떤 것도 그 둘을 방해할 수 없다는 듯, 온전히 서로를 눈에 담고 있는 모습에서부터 애틋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에로스는 황급히 프시케에게 날아온 것처럼 날개가 위로 활짝 펼쳐져 있고 한쪽 무릎은 바닥을 지탱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 무릎은 거의 굽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하체만 아슬아슬하게 휘감겨, 바닥에 늘여진 천 위에 누워 있는 프시케는 두 팔은 에로스의 머리를 감싸고 있지만 몸에 힘이 없어 보인다. 이는 방금 전까지 죽음의 잠 속에 빠져 있다가 에로스의 키스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프시케의 몸이 축 쳐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눈은 올곧게 에로스에게 닿아 있으며 몸이 늘어지는 것을 이겨내고 에로스를 두 팔로 감은 모습이 에로스를 향한 프시케의 절절한 사랑이 느껴진다. 이러한 에로스의 역동적인 자세와 고정된 자세로 오래 버티고 있기 힘들어 보이는 프시케의 아름답게 뒤틀린 인체는 마치 둘의 순간을 포착한 것 같다. 이러 생동감 있는 감정 묘사와 인체 움직임이 보이는 조각상에서 우리는 안토니오 카노바가 헬레니즘의 시기의 조각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닿을 수 있도록 곱슬거리는 머리를 내어주고 프시케를 내려다보는 에로스의 눈빛은 사랑스럽고 다정하기 그지없다. 또한 한쪽 팔은 프시케의 가슴을 가려 잡고 또 다른 쪽 팔은 프시케의 머리를 받친 채 손으론 프시케의 볼을 감싼 채 보듬고 있는데 그런 에로스의 몸짓 하나 하나로부터 프시케를 향한 지고지순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가 에로스임을 증명하듯, 그의 등엔 날개가 위로 곧게 뻗어 있으며 등에는 화살이 가득 찬 화살 통을 옆으로 매고 있다. 에로스를 보면 아직 성인 남성이라 하기엔 전체적인 골격 자체가 덜 자란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배에는 미약하게 살집이 잡혀 있으며 얼굴 선 역시 각진 것보단 둥근 편에 더 가까워 보인다. 프시케와 에로스의 이야기를 보면 에로스가 자신의 화살촉에 찔리자마자 성인 남성으로 자라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또 다른 이야기로는 청소년기의 남성으로 자라났다는 이야기도 볼 수 있다. 진실한 사랑과는 별개의 삶을 살아오던 어린 에로스가 사랑에 눈 뜨는 것은 곧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음을 뜻하기도 하는데 그런 에로스를 덜 자란 남성의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아이 같은 미성숙함과 성인의 진실된 마음을 더 잘 표현해준 것으로 보인다.
잘록한 허리 밑에 감싸진 부드러운 천은 프시케를 육감적이지만 성스럽게 느껴지도록 한다. 그리고 에로스의 팔이 그녀의 가슴을 가림으로써 그녀의 관능미를 증폭시키는 동시에 둘 사이의 애절하지만 은근한 성적인 텐션을 드러낸다. 프시케의 가슴과 음모는 자연스럽게 가려져 있지만 프시케의 뒷모습을 보면 그녀의 나체가 과감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 이 조각상의 흥미로운 부분이다. 등 한가운데로 길게 고랑이 져 있으며 그 밑엔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보인다. 그리고 그 엉덩이 바로 옆엔 당 시대에 쓰이던 물병으로 유추되는 물병이 눕혀져 있다. 얼핏 보았을 땐 페르세포네가 아름다움의 묘약을 넣어준 상자가 아닐까 싶지만 상자라고 하기엔 어떻게 보아도 물병으로 보인다. 페르세포네에게 아름다움의 묘약을 받아오기 전, 저승에서 물을 길어 오라는 아프로디테의 또 다른 심부름이 아니었을까 유추된다. 프시케와 에로스의 이야기를 보면 에로스가 프시케를 깨운 일화엔 키스로 깨운 것 말고 다른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는 에로스가 제우스에게 간청하여 제우스가 깨워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며 또 다른 일화는 에로스가 자신의 화살로 프시케를 살짝 찔러서 깨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프시케 등 뒤에 있는 물병 옆을 보면 화살 하나가 같이 눕혀져 있다. 이것은 이 조각상을 만든 안토니오 카노바가 에로스가 프시케를 깨운 이야기들을 모두 염두하여 조각상으로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미성숙과 성숙을 오가는 풋풋하지만 진득한 사랑, 세상엔 오로지 서로만이 가득 차 있음을 보여주는 둘의 애정이 가득 서린 눈빛. 모든 인간들은 영원한 삶을 살지 못하지만 이 조각 속의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안토니오 카노바 역시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 둘의 마법 같은 황홀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순간으로 포착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사진 출처: 네이버,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