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어린 나이부터 신체화 증상을 겪었고, 온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상담도 받았고 약도 먹으면서 몸만 고치려 애를 썼는데, 오히려 그게 나의 본질적인 자아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감정을 억압해야한다고 배운다. 참아야한다, 참는게 이기는 거다, 어른은 무조건 존중해라 등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감정을 느끼고 표출하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을 느낀다.
감정을 참고 억누르면서, 안에서 끓어오르는 여러가지 감각을 애써 무시하면서 아닌척, 괜찮은 척 하는 것이 '멘탈이 강하다'라고 오해한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참고 억누르며 겉으론 멀쩡해보이는 게 강한 멘탈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다. 그렇게 더이상 쌓일 공간이 없는 상태로 억누르다 터진게, 나에게는 공황이었다.
어린시절 아무것도 저항할 수 없는 나이에, 큰 두려움이 느껴지면 그것을 그대로 마주해야만했다. 듣기 싫은 소리가 있으면 그것에 저항하지 못하고 억지로 귀를 막으며 참아야만 했다.
그것 말고 방법이 없었으니까. 아니 그럴 힘이 없었으니까.
애착이론을 정립하며 어린시절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어린시절의 경험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인 '내적작동모델(Inner Working Model)'을 형성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만의 관점이자 생각, 사고, 정서적인 틀이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이 내적작동모델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경험을 통해 누군가는 공황장애를 겪기도 하고, 누군가는 거기서 교훈을 얻으며 성장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큰 상처를 받으며 힘들어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 가볍게 흘려보낸다.
유아기시절부터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이 틀이 우리가 세상 일에 반응하는 형태를 결정짓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상담하면서, '멘탈이 강해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었다. 그들은 진짜 마음 근력이 강한게 아니라, 감정을 다른 사람보다 더욱 억누르는 경향이 강했고, 오랜시간 숨어들어간 감정은 점차 신체 증상으로 드러났다. 심한 어깨 결림이나 두통, 혹은 중독이나 연인관계에서 집착, 강박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들에게 감정을 느끼고 인정해주는 것은 나약함을 의미했고, 끓어오르는 내부의 감각을 억지 긍정과 논리, 공격성으로 덮으려했다.
사실 '강한 멘탈'이라는 용어 자체가 억지스러움이 다소 담겨있다. '강하다'는 힘이 세다, 무언가로부터 이긴다 등의 의미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큰 일을 당해도 동요하지 않고 이겨내는 사람들을 강한 멘탈을 가졌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내부에서 올려보내는 온갖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회피하고, 억압하면서 강한 멘탈을 가지려 노력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룬다. 당장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억압된 감정은 반드시 그 억압의 깊이만큼 우리에게 대가를 지불하게 한다.
억압된 감정은 반드시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
무의식, 정신분석의 지평을 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공감하는 말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이 어느정도 경험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진짜 강한 멘탈은 억지 긍정이 아닌, 내 마음속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감정을 인정해주면, 그것을 이겨내려고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내 안의 감정을 인정해주지 않으니, 계속 내 안의 무언가를 이겨내야한다는 집착과 환상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집착과 강박을 만들게 한 어린시절부터의 습관적 대처전략을 하나씩 살펴보고, 그것을 마주하고 내려놓으면서 믿음과 내맡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과거의 경험을 하나씩 되짚어보고, 아직도 두려움과 외로움에 떨고 있는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내면아이치유가 실제 상담에서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감정은 우리를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안내자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살면, 생존에 불리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우리가 목표한대로, 순리대로, 세상이 나에게 원하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고 내맡기며 살게끔 도와준다.
감정을 온전히 인정해주자.
억지로 조절하려지 말고, 가만히 주시해보자.
그 날것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느껴주자.
그 과정에서 욕하고, 소리지르고,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기도하면서, 감정 본연의 에너지에 내 몸을 온전히 내어주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자.
그러면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회피하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이 과정이 처음에는 감정에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점차 부정적 감정을 흘려보내는 게 더 쉬워지고 마음도 한결 차분해진다.
이를 위한 좋은 심리기법들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설명은 다음편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