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혁준 Feb 14. 2021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

기회를 잡아내는 순간

 옛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 힘세고 뛰어난 사람이 없는 곳에서 보잘것없는 사람이 권력을 가진다는 의미의 속담이다. 보통 완벽하게 쓰기보단 ‘호랑이가 없으면 토끼가 왕이다.’의 느낌으로 간단하게 사용한다. 옛 말씀 하나 틀린 게 없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건가. 이 속담은 축구계에서도 자주 쓰인다.


 시즌을 운용하다 보면 많은 변수가 생긴다. 기존에 꾸렸던 선수단에서 감독이 교체될 수도 있지만 선수가 이적하며 바뀌기도, 불의의 부상으로 이탈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수에 대비해 감독은 언제나 그 선수를 대체할, 대체자에 대한 구상을 해놔야 한다. 다른 팀에서 선수를 사 오기도 하고 기존에 있던 자원의 능력을 이끌어 내 공백을 최소화하기도 한다. 지금부터 살펴볼 사례는 한 선수가 다른 한 선수를 완벽히 대체해 화제가 된 경우이다.


1. 메없산왕, 메시가 없으면 산체스가 왕이다.


출처 : 네이버 뉴스


 거의 해당 유행어의 시작인 단어이다. 메시가 없으면 산체스가 왕이다. 메시와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산체스는 2011년 바르셀로나에 입성해 활약했다. 당시 바르셀로나에는 공고한 한자리 메시를 포함해 비야, 페드로 등 좋은 공격자원을 많이 보유한 팀이었기에 험난한 주전 경쟁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산체스는 이 예상을 뒤엎듯 첫 엘 클라시코부터 출전하면서 손쉽게 데뷔전을 치렀다. 좋은 미래가 예상되었던 입단 초기와는 다르게 산체스는 좋지 못한 결정력과 오른발 의존도로 인해 부진을 거듭한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13-14 시즌, 산체스가 드디어 폭발하기 시작한다. 리그 개막전부터 선제골을 선사하며 산뜻하게 시작한 산체스는 연속으로 골을 뽑아내며 시즌 통산 54경기 21골 13개의 도움을 기록한다. 팀 내 득점 2위에 올랐고 이때부터 메시가 없으면 산체스가 왕이다, 메없산왕이라는 유행어가 탄생했다. 팀에 합류한 네이마르, 페드로, 메시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활약한 산체스는 다음 시즌 아스날로 향해 아스날의 왕, 산왕이라 불리며 팀의 주축 자원으로 성장한다. 이후 2015년 코파 아메리카, 2016년 코파 아메리카 모두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맞붙는데 이 두 경기를 모두 칠레가 가져가면서 2년 연속으로 칠레가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하자, 팬들은 당시 칠레의 핵심이었던 산체스를 두고 ‘메있산왕, 메시가 있어도 산체스가 왕이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2. 호없베왕, 호날두가 없으면 베일이 왕이다.


출처 : 네이버 뉴스


 13-14 시즌, 토트넘에서의 폭발적인 활약을 보여준 가레스 베일이 해당 활약을 바탕으로 당시 9100만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와 함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입성한다. 입단 초기 잦은 부상과 기복, 부진으로 팬들에게 제2의 카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으나 베일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베일의 개인적인 노력과 호날두, 벤제마, 베일을 조화시키려는 안첼로티의 노력이 만나 베일은 부상을 털어내고 도약하기 시작한다.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가릴 것 없이 활약하기 시작한 베일은 호날두가 출전하지 않은 경기에서는 본인이 레알 마드리드의 주축이 되어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호날두가 없는 경우 베일이 왕인, 호날두의 후계자라고 부르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이 팬들의 마음에도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된 경기가 바르셀로나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이다. 당시 베일은 엘 클라시코에 선발 출전해 믿을 수 없는 속도를 선보이며 결승골을 집어넣고 레알 마드리드에게 우승컵을 선사했다. 베일은 결승전에서 평점 9.1점을 받으며 MOM에 선정되었다. 이어진 시즌에서도 베일은 좋은 활약을 보였고 호날두가 결장한 경기에서는 팀의 에이스 노릇을 해주며 호날두가 없으면 베일이 왕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해줬다. 이후 베일, 호날두, 벤제마는 BBC 트리오라 불리며 레알의 갈락티코 2기를 이끌게 된다.


3. 아없윌왕, 아자르가 없으면 윌리안이 왕이다.


출처 : 네이버 뉴스


 개인적으로 첼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였다. 그의 플레이는 무너진 하늘 속에서 솟아날 구멍을 보여줬고 첼시는 그와 함께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첼시가 기적적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획득한 다음 시즌,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던 그는 ‘자신은 유럽 챔피언과 계약하러 간다.’라는 트윗을 남기며 첼시에 입성했고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프리미어리그를 지배했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까지 첼시에게 유로파리그 우승컵과 막대한 이적료를 남기며 본인의 목표였던 레알 마드리드로 둥지를 옮겼다. 바로 스탬포드 브릿지, 첼시의 왕이라 불렸던, 에당 아자르의 이야기이다. 아자르가 떠난 그 자리, 아자르의 10번은 윌리안이 이어받았다. 윌리안은 10번을 이어받았던 19-20 시즌, 팀이 영입 금지라는 징계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본인 몫을 해내며 아자르가 해줬던 크랙의 역할을 해줬다. 팬들은 이를 두고 윌교안(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권한 대행이 된 황교안과 비슷해 붙여진 별명), 권한 대행 등의 별명을 붙이며 그의 활약을 칭찬했다. 윌리안은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아자르가 없으면 윌리안이 왕이다.’라는 명제를 본인이 증명하고 자유계약 신분으로 아스날로 향했다.


4. 덕없귄왕, 덕배(데 브라이너)가 없으면 귄도안이 왕이다.


출처 : 네이버 뉴스


 데 브라이너의 결장이 맨시티 공격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했다. 맨시티의 공격은 무뎌질 것이고 맨시티는 단단한 수비를 중심으로 승점을 챙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다. 귀신같이 모두의 예상이 빗나갔다. 데 브라이너가 결장하는 위기의 순간, 맨시티의 공격을 풀어주는 것은 귄도안이었다. 최근 귄도안은 도르트문트에서 좋았던 모습을 되찾고 있는 듯하다. 4-3-3 전형의 메짤라로 출전할 때마다 팬들은 ‘귄짤라 만큼은 안된다.’라고 이야기하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데 브라이너가 빠진 그 자리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주며 맨시티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이는 스탯으로도 증명된다. 귄도안은 최근 펼쳐진 5번의 리그 경기에서 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20라운드 웨스트브롬과의 경기에서 멀티골, 22라운드 번리와 경기에서 1 도움, 23라운드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멀티골, 오늘 새벽 펼쳐진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멀티골과 1 도움, 최근 다섯 경기에서만 6골과 2개의 도움이라는 공격수에게도 힘든 스탯을 기록하며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귄도안이 이런 활약을 펼치니 귄도안의 메짤라 기용에 의문을 품었던 팬들도 생각을 바꾸었고 오히려 ‘사실 데 브라이너가 귄도안의 억제기였다.’ 하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덕없귄왕으로 끝날지, 덕있귄왕(덕배가 있어도 귄도안이 왕이다.) 임을 증명해 맨시티의 우승 경쟁에 힘을 보탤지 귀추가 주목된다.


 축구에서 누군가를 완벽하게 대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사람이 어찌 같겠는가. 그러나 누군가의 이탈에도 본인의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선수를 기용하지 않을 감독은 어디에도 없다. 출전의 기회는 제한적이기에 모든 선수의 시작은 팀원을 대신해서 나온, 누군가의 대체자일 수밖에 없다. 만일 자신이 누군가의 대체자로만, 소모품으로만 사용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면 위의 사례를 잘 읽어보길 바란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대체자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축구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