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와 맨시티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한국시간으로 5월 6일 새벽에 펼쳐진 레알 마드리드와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경기,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고 공방전 끝에 첼시가 2대 0으로 승리하며 합산 스코어 3대 1로 결승에 진출했다. 먼저 결승에 올라있던 맨시티와 첼시의 결승 대진이 성사되자 팬들은 다시 한번 프리미어리그 클럽 간의 결승전이라며 주목했다. 특히 과거 만수르의 등장 이전, 부자 구단주의 대표였던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와 새롭게 등장해 이제는 부자의 대명사가 된 만수르의 맨시티가 맞붙는다는 점이 결승을 더욱 흥미롭게 했다.
맨체스터 시티는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린다. 만수르의 힘을 얻은 맨시티는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자를 하며 강팀으로의 도약을 꿈꿨다. 투자의 힘이었을까. 그토록 염원하던 리그 타이틀을 퍼거슨의 맨유를 꺾으며 얻어냈고 이제는 완전한 프리미어리그의 강호로 자리 잡았다. 그런 맨시티가 가진 단 하나의 아쉬움이 바로 유럽 클럽 대항전 타이틀이었다. 여러 스타 선수와 과르디올라라는 스타 감독을 영입한 맨시티였지만 이상하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고배를 맛봐야 했다. 챔피언스리그 최고 성적은 펠레그리니 감독이 거둔 4강이었고 유럽 대항전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펩을 두고 경질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그런 맨시티가 4강에서 PSG라는 난적을 물리치고 드디어 결승에 올랐다.
이번 시즌 맨시티의 강점은 그간 자랑하던 화려한 공격력이 아닌 탄탄한 수비였다. 사네의 이탈, 스털링과 제주스의 부진, 아구에로의 부상까지. 팀의 공격을 이끌던 에이스들이 모두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던 가운데 신예 필 포든과 케빈 데 브라이너, 귄도안 등의 미드필더들이 공격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공격력은 어쩔 수 없었다. 두 전문 공격수의 부상과 부진은 뼈아팠고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맨시티가 탄탄한 경기력과 리그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후방 라인의 안정감이었다. 에데르송은 리그나 펩의 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해 그간 지적받던 부족한 안정감도 완전히 개선해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고 이번 시즌 최고의 영입이라 불리는 후벵 디아스는 엄청난 적응력과 경기력을 보여주며 단숨에 맨시티 수비의 핵심으로 자리했다. 디아스의 영입과 함께 그간의 부진을 한방에 털어내며 놀라운 수비력을 보여준 스톤스도 수비의 중심이었다. 팬들은 두 중앙 수비 조합을 ‘디아스톤스’라고 부르며 칭찬했고 워커와 칸셀루, 페르난지뉴, 로드리 등 거의 모든 수비수들이 안정적이고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부족했던 맨시티의 수비가 달라지자 성적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리그에서는 2위 맨유와 경기 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승점 13점 차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고 챔피언스리그는 홀란드의 도르트문트를 8강에서, 네이마르와 음바페의 파리를 준결승에서 만났지만 모두 승리하며 결승에 올랐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은 맨시티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이기에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이제 펩의 맨시티는 카라바오 컵 우승에 이어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동시 석권을 노린다.
첼시의 이번 시즌은 롤러코스터였다. 어마어마한 이적시장을 보내며 세계를 놀라게 했던 첼시였다.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이적시장에서 영입 징계로 인해 자금을 마련해놨던 첼시만 활발했고 최고의 활약을 보이던 베르너와 카이 하베르츠, 구단의 취약 포지션을 메우려 나타난 멘디와 벤 칠웰, 미리 영입해놨던 지예흐, 베테랑 티아고 실바 등 많은 선수를 영입했다. 팀의 완벽한 지원, 영입 징계임에도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던 팀의 레전드 프랭크 램파드가 첼시를 주목하게 했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램파드의 첼시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아무런 전술이 없는 듯 공격도 수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선수들은 오합지졸이었다. 부진한 성적과 좋지 못한 라커룸 분위기로 인해 첼시 보드진은 칼을 빼 들 수밖에 없었고 후임으로 천재적인 전술가지만 괴팍한 성격을 지닌 토마스 투헬이 부임했다. 해당 결정에 의문을 다는 팬들이 많았다. 그의 성격이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첼시의 반등은 여기서 시작이었다. 첼시는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리그는 안정세를 되찾으며 4위에 올랐고 챔피언스리그는 9년 만에 다시 결승에 진출하며 첼시 팬들을 설레게 했다. 팬들은 올 시즌이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와 디 마테오를 거치며 우여곡절 끝에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던 2011-2012 시즌과 닮았다며 ‘첼램 덩크 시즌 2’라고 부르고 있다.
맨시티처럼 첼시의 이번 시즌 강점도 수비이다. 램파드가 지휘하던 시절에도 주마와 티아고 실바의 수비는 장점 없는 첼시의 유일한 장점으로 꼽히며 나름의 안정감을 보여줬었는데 투헬 부임 이후 패배는커녕 실점조차 하지 않는 짠물 수비를 보여주며 다른 팀들을 숨 막히게 했다. 반면 공격은 부실했다. 공격에서 램파드 시절부터 첼시의 에이스 노릇을 해오던 마운트를 제외하면 큰 기대를 받으며 첼시에 새로 둥지를 튼 베르너도 실망스러웠고 타미 에이브러햄도 마찬가지, 지루도 늘 아쉬웠고 지예흐, 풀리식, 하베르츠 모두 아쉬웠다. 무실점 경기는 많아졌지만 다득점 경기가 없어 아쉬움을 보이는 팬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수비의 안정화는 아주 고무적이었다. 투헬은 부임하자마자 4백에서 3백으로 전환했다. 공격력을 이용하기 위해 알론소와 오도이를 윙백으로 배치하기도 하고 수비의 안정감을 위해 칠웰과 리스 제임스를 윙백으로 배치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전술을 구사했다. 뤼디거와 아스필리쿠에타, 티아고 실바의 3백은 완벽한 안정감 그 자체였고 팀의 수비 시스템이 완성되니 주전의 누군가를 대체하기 위해 나온 주마와 크리스텐센도 그간의 불안한 수비가 아닌 좋은 수비를 보여줬다. 여러 요인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수비진 안정화에 정말 큰 역할을 한 것은 캉테라고 본다. 사실 앞선 투헬의 선택은 코바치치와 조르지뉴 조합이었다. 볼 운반에 능한 코바치치와 후방 빌드업에 능한 조르지뉴는 투헬의 축구에 잘 어울리는 미드필더들이었다. 이 조합에 캉테가 균열을 냈다. 기존 메짤라 자리에서 애매한 모습을 보여주던 캉테가 다시 두 명의 미드필더에 한 자리로 배치되자 예전 중원지역을 지배하던 모습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절정의 경기력을 보이며 최우수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이번 레알 마드리드, 포르투와의 경기에서도 캉테는 좋은 컷팅과 리커버리, 태클을 보여줬고 때로는 공을 잡고 드리블을 치며 캉테가 운반도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캉테와 투헬, 모든 수비진의 활약이 빈공인 첼시에게 상승세를 가져왔고 마운트를 필두로 한 베르너와 하베르츠, 풀리식은 조금씩 폼을 되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첼시는 9년 만에 다시 오른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우승으로 ‘첼램 덩크 시즌 2’의 완성을 노린다.
별들의 전쟁, 챔피언스리그가 코로나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어느새 결승만을 남겨두고 있다. 리버풀과 토트넘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이후 다시 한번 펼쳐지는 프리미어리그 클럽 간의 결승전, 맨시티의 그토록 염원하던 첫 우승 일지, 첼시의 첼램 덩크 완성을 위한 9년 만의 우승 일지. 5월 말, 축구팬들의 시선이 이스탄불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