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장기집권의 딜레마
태풍에 의해 뿌리가 들린 나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년 강한 태풍이 불어올 때면 ‘이 나무는 버티겠다.’ 하던 튼튼한 나무조차도 버티지 못하고 넘어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이 태풍을 버틴 나무의 뿌리는 얼마나 튼튼한 거야.’ 하고 감탄하곤 한다. 이는 축구에도 적용된다. 감독의 철학이 튼튼하고 깊게 뿌리내린 팀은 위기가 찾아와도 버텨낸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가 튼튼하고 깊게 내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 뿌리내릴 감독이 장기집권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은 이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장기집권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두 명의 감독이 있다. 이제는 전 감독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아스날의 전설, 아르센 벵거 감독이다. 이 두 감독은 해당 클럽을 장기 집권하며 그들의 철학을 클럽에 이식했고 클럽의 산전수전을 모두 겪으며 함께 성장한 클럽의 근본, 뿌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영원할 것 같던 그들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은 모두 늙는다. 어느 순간에는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이 자연의 원칙이다. 아무리 퍼거슨과 벵거라 해도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다음 주자를 위해 자리를 넘겨주었다. 거대한 뿌리를 보낸 두 팀은 새로운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 감독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두 팀이 선택한 감독은 팀의 뿌리를 경험한 솔샤르와 아르테타였다. 그러나 두 감독 모두 최근 위기에 처해있다. 솔샤르는 최근 부진한 성적으로 팬들의 지탄을 받고 있으며 감독직이 위태위태하다는 보도가 끊이질 않는다. 아르테타는 최근은 반등하여 좋은 성적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기복 있는 모습으로 포스트 벵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팬들의 의구심을 지우진 못하고 있다. 아스날과 맨유는 포스트 벵거, 포스트 퍼거슨처럼 클럽을 오래 지휘할 수 있는 감독을 찾고 있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과연 전설적인 그들과 같은 감독을 찾을 수 있긴 한가? 기다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일까?
물론 감독직이 파리 목숨인 클럽은 좋지 않다. 클럽이 감독의 색을 받아들일 새도 없이 감독을 갈아치우게 되면 클럽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선수단 구성도 문제가 생기며 과도한 경제적 손실을 얻게 된다. 감독을 믿고 기다리는 것도 구단이 보여야 할 태도이다. 대표적으로 첼시가 있다. 첼시는 감독 교체의 아이콘이다. 잦은 감독 교체로 팬들의 비난을 받았고 선수단에는 늘 정리대상이 존재했다. 그러나 잦은 감독 교체를 가져가더라도 결과를 언제나 챙겨 왔다. 실제로 첼시가 무관이었던 시즌은 근 10년간 13-14, 15-16, 19-20, 단 세 시즌뿐이었고 매년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반면 맨유와 아스날을 살펴보자. 아스날은 2010년대 들어 4번의 FA컵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중 세 번의 우승은 벵거가 이뤄낸 것이다. 아르테타가 이뤄낸 우승은 부임 직후 만들어낸 FA컵 우승 한 번이다. 맨유는 2010년대 들어 5번의 우승을 경험했는데 퍼거슨 시대 이후의 우승은 3번이고 솔샤르는 우승 경험이 없다.
감독을 자주 교체해야 결과가 따라온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적재적소, 결단이 필요한 시기에는 결단을 내려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단 이야기이다. 첼시는 과도하나 과감한 결단을 통해 결과를 가져왔다. 벵거와 퍼거슨 이후 흔들리고 있는 양 팀에게도 신중하지만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색채를 잘 보여주고 있지 못한 두 감독이 커다란 두 클럽을 장기 집권하며 지휘할 만한 인물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발전 가능성이다. 매번 같은 문제점을 보이지만 개선은 없고 허술한 전술과 부족한 카리스마로 언제나 위기를 자초하는 솔샤르, 마찬가지로 무엇을 하려는지 명확히 보이지 않고 위기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르테타, 이 둘은 그동안 단점을 개선하고 좋은 점을 발전시키는 모습을 그다지 보여주지 못했다. 아르테타는 부임 기간도 길지 않고 아직 젊으니 조금의 검증은 더 필요하나 벵거의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이진 않는 듯하고 솔샤르는 더더욱 그렇다. 선수단 구성에 사용하는 투자에 비해 결과가 너무 없고 언제나 같은 문제를 반복하며 최근에는 선수단 장악도 실패한 듯한 모습이다. 솔샤르 역시 퍼거슨처럼 위대한 감독이 될 수 있으리라 예상되지 않는다.
고민해볼 점은 하나 더 있다. 과연 한 감독이 장기 집권하는 것이 옳은가이다. 축구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 해가 갈 때마다 변화하는 축구를 곧바로 따라가기란 쉽지 않고 투입되는 자본의 크기도 어마어마해지고 있다. 한 해 한 해 결과물이 있지 않으면 클럽의 경제적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전에 비해 투입되는 자본의 크기가 커졌기 때문에 시장의 크기도 커지고 이로 인한 리스크의 크기도 커진 것이다. 따라서 클럽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장기집권을 위한 감독을 기다리는 시간을 갖기보다는 적절한 시기에 결과물을 바로 가져올 수 있는 감독으로 교체하는 것이 유리하다. 물론 한 감독이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펼치기 위해서 적어도 3년은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결과물이 클럽의 재정으로 직결되는 지금 시대에 장기 집권할 만한 인물을 찾고 선임하고 그를 위한 선수단을 구성해주고 시행착오를 기다려 주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해당 투입이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는 감독을 적절한 시기에 교체해주며 클럽이 축구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도록 돕고 클럽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것이 조금 더 합리적이고 높은 확률을 가질 수 있다. 시장의 크기가 커지고 일도 많아진 지금 이전처럼 한 사람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조금은 무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맨유와 아스날의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인물이 퍼거슨과 벵거였기 때문이다. 축구사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위대한 두 감독을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둘의 뒤를 이을 만큼 위대한 감독이 또 나오리라 확신할 수도 없다. 물론 그들과 같은 감독이 다시 등장한다면 얼마든지 장기집권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니 클럽은 선택을 해야 한다. 뿌리내리는 것이 힘든 만큼 뿌리 깊은 나무도 드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