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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Sep 19. 2024

딸과 어머니, 그리고 여성에 대하여

영화 <딸에 대하여> 상영 중지 논란


최근 대전광역시가 대전여성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영화 <딸에 대하여>를 상영작에서 제외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큰 논란을 낳았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개막 직전에 시가 직접 개입해 가면서까지 영화제 검열에 나서게 되었을까.


대전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고 대전시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전여성영화제는 성평등 주간을 맞이하여 개최되는 행사로, 올해 4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도 9월 5일부터 7일까지 10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었다. 그중 대전시가 상영 철회를 요구한 영화가 바로 <딸에 대하여>다. 해당 상영작에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민원이 접수된 것이다. 시는 성평등 주간의 주제가 남성과 여성의 평등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성소수자 문제는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으므로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주최 측인 대전여성단체연합은 보조금을 반납하고, 시민 모금을 통해 소규모로 영화제를 진행했다.


영화 ‘딸에 대하여’는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노년 여성을 돌보는 엄마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동성 연인과 함께 엄마의 집에서 살게 된 딸의 갈등을 그린다. 가부장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에서 살아온 엄마와 성소수자인 딸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남성 중심 사회의 폭력과 부조리에 노출된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나아가 여성 안에서도 다양한 차이와 차별이 존재함을 환기하며, 여성들이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여성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억압과 그 속에서의 공존 가능성, 여성들의 연대를 탐구하는 이 영화가 성평등이라는 주제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납득하기 힘든 이유다.


영화 <딸에 대하여> 속에는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어머니와 딸, 경력 단절 싱글맘, 비정규직 노동자, 무연고 치매 노인, 그리고 성소수자까지. 대전시의 이번 상영 중지 요구는 이러한 여성 중 일부에 선택적으로 낙인을 찍고, 그들을 배제하려는 시도이다. 여성을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상에 가두고 억압하지 말라. 백 명의 여성이 있으면 백 개의 정체성과 백 개의 삶이 존재하며, 그들은 모두 제각기 온전하고 귀중한 존재이다. 원작 소설 <딸에 대하여> 속 딸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엄마, 여기 봐. 이걸 보라고. 이 말들이 바로 나야. 성소수자, 동성애자, 레즈비언. 여기 이 말들이 바로 나라고. 이게 그냥 나야.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를 부른다고, 그래서 가족이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이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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