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국, 대만, 홍콩, 베트남 등 4시간 이내의 비행은 가뿐하다. 기내식 먹고 잠시 눈을 붙인 뒤 화장실도 한 번 다녀오고 창밖의 솜사탕 같은 구름을 바라보며 잠시동안 멍을 때려본다. 가이드북을 꺼내 도착지의 정보들을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착륙시간이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10시간 이상의 비행은 모든 것을 체념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도착시간을 확인하면 오히려 더 지루하고 시간이 안 가는 것 같다. 때가 되면 나를 내려주겠지 생각하고 있는 게 상책.
인천발 알마티행 비행시간은 6시간 50분.
거기에 20분 정도 연착이 되었으니 내가 말한 어정쩡한 7시간 정도의 비행이 돼버렸다. 앞서 언급한 일들을 하고 왠지 시간을 보내기에 좋을듯한 박진감 있는 복싱영화 한 편을 감상했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알마티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쉽지가 않았다.
꽤나 지루해하고 있을 무렵 드디어 착륙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쳐가고 있던 내게 단비와 같았던 그 상냥한 목소리. 방전된 가던 나를 다시금 충전시켜 주는 것 같았다. 안전하고 사뿐한 착륙~!!!
알마티국제공항은 최근 제2청사가 완공되면서 깔끔하게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국제공항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인천국제공항에 비하면 턱없이 작고 아직 부족한 시설들도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 중요하지는 않았다. 알마티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심장은 가만있질 못하는 듯했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그 그림대로 하나하나 일들이 잘 풀려나갔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고 환전을 하고 심카드도 장착했다. '이번여행은 생각한 대로 술술 잘 풀리려나 보다.' 하지만,,, 나의 행복한 상상은 어디까지나 여기까지였다. 뒤이어 내게 닥칠 대혼란의 순간들을 어찌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