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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아나 Sep 09. 2024

바다가 젤리로 변했다!

7. 포탄 속으로

7. 포탄 속으로


  어느 계절이 가장 좋으냐고 물으면 해리는 늘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정말 다 좋았다. 물론 쪼끔 더 좋은 게 여름이기는 했다. 언제든 하루 온종일 바닷가에서 보낼 수 있는 계절이니까. 더군다나 여름방학이 있어서 해양탐구하기엔 딱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키 낮은 집들이 동화책 속에 배치된 듯 조용했던 법환포구 마을에는 지난 사건 이후로 이른 아침부터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카페와 식당들도 아침 일찍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하루의 시작이 빠르니 살짝 더 분주하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하루가 길어진 마을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바탕 소낙비 퍼붓고 지나간 듯 해리와 라산은 학교에서 맹랑한 인사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어쩌다 보니 학교 유명인사가 된 것 같았다. 어쨌든 가기로 했던 바다를 못가서 안달이 났던 해리와 라산은 토요일이 되자마자 포탄일지도 모를 그 쇳덩어리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침 일찍 몽돌해변으로 달려갔다. 숨이 턱까지 차도 땀이 주르룩 흘러내려도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해리보다 한발 앞서 먼저 도착한 라산이 이내 곧 그 쇳덩어리를 찾아냈다. 바닷물이 많이 빠져 있어 대강의 위치를 알고 있던 라산은 쇳덩어리 윗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해리야, 지난번 폴리스라인 쳐져 있을 때 경찰아저씨들이 저거 못 봤을까?”

  “그러게, 아님 우리가 말한 걸 깜빡 잊었을지도 몰라!”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둘은 말하면서 신발을 벗어 너럭바위 위에 올려놓고 그 원통형 쇳덩어리 곁에 들어가 주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사실 신발은 구멍이 숭숭 뚫린 크록스라 신고 있어도 되는데 해리와 라산은 맨발이 좋았다. 자잘대는 바닷물과 조잘거리는 몽돌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발을 간지럽혔다. 파헤쳐도 어느새 차르르거리며 메워지는 게 시간을 자꾸만 원점으로 돌리는 것 같았다. 한참을 파헤쳐 쇳덩어리 윗부분이 더 드러났을 때 라산의 손에 뭔가가 잡혔다. 잔물결로 아른아른 해서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으나 라산이 추측하고 있는 포탄의 날개처럼 보였다.


  라산의 손을 덮어대는 부드러운 모래 속에서 더듬더듬 날개 부분을 잡고 끌어올리려 힘을 주면서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역시 쇳덩어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해리가 뭐라도 힘을 보태야 할 것 같았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라산이 다시 한 번 날개를 잡고 온 힘을 다해 끌어내려고 이를 악물었다. 역부족이었다. 해리와 라산이 돌아가며 몇 차례 반복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힘이 쏙 빠진 라산이 체념하듯 발로 쇳덩어리를 툭 차면서 해리를 바라보던 순간 쇳덩어리 꼭지 원뿔뚜껑이 ‘펑!’ 열리면서 어마어마한 흡입력이 해리를 원통 속으로 훅 끌어당겼다. 놀랄 새도 없이 해리 옷을 붙잡은 라산도 순식간에 끌려들어갔다. 몸이 작아지면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는 그 광경은 몇 초도 안되는 그야말로 포착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누군가가 봤다면 분명 자신의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초강력 흡입력에 같이 휩쓸려온 바닷물을 뒤집어쓴 듯 흠뻑 젖은 채로 엉덩방아 찧으며 털썩 주저앉은 해리와 라산 앞에 손을 내미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딘가 묘하게 해리를 닮은 것 같은 이 아이는 해리와 라산을 일으켜 세우며 우! 리! 말!로 ‘옷을 말려야 하니까 잠시만 서 있으라’ 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해리와 라산이 일어서자 여자아이는 벽면에 있는 버튼 하나를 눌러 그들이 있는 그 공간의 온도와 습도가 최적의 상태가 되도록 만들었다. 약간의 바람이 스친 듯 느낀 사이에 옷은 이미 뽀송한 상태가 되었고, 바닥에 있던 물도 모두 말랐다. 이제야 제대로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해리와 라산은 그 포탄처럼 생긴 쇳덩이 원통 속에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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