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하늘로 간 물고기
종달리 엉불턱 갯바위 근처에 ‘어랑’이라는 작은 아기 물고기가 살았어요. 어랑은 낮이 되면 바위틈에서 숨바꼭질하며 노는 걸 좋아했어요. 시커먼 바위틈에 숨어 있으면 감쪽같이 사라져서 아무도 찾지 못하는 게 재미있었거든요.
좀 더 넓은 바다에 가서 놀고 싶은데 아직은 어려서 엄마 물고기가 멀리 나가지 못하도록 지켜보고 있었어요. 가끔씩 어랑은 엄마 몰래 멀리 갔다가 혼나기도 했답니다. 먼 바다에는 힘센 물고기도 많았고 거친 바위도 많았어요. 그래서 엄마 물고기는 어랑이 다치거나 나쁜 물고기들한테 혼쭐날까 봐 걱정되었지요.
하지만 어느 날부터 어랑은 그 좁은 놀이터가 심심해졌어요. 이제는 몸집도 좀 커져서 숨바꼭질할 때면 따개비에 부딪혀 콕콕 찔리기도 했지요. 여리고 아름다운 선홍빛 줄무늬 비늘이 뜯겨 나가 몹시도 아프고 속이 상했어요. 점점 숨바꼭질도 재미가 없어졌어요.
눈부신 햇살로 은빛 바닷물이 찰랑거리던 여름 어느 날 바다 위로 폴짝폴짝 튀어 오르며 바깥세상을 살펴보던 어랑은 엉불턱 시커먼 갯바위 위에 너무도 우아하게 서있는 하얀 갈매기 한 마리를 봤어요.
어랑은 그 갈매기가 한눈에 맘에 들어 친구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가까이 갈 용기는 나지 않았지요. 갈매기가 떠나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갈매기한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바닷속에서 갈매기를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바닷물이 계속 일렁거리니까요.
서쪽 하늘 밑으로 바닷물이 발갛게 물들어 갈 무렵 집으로 돌아온 어랑은 해초더미 사이에 혼자 들어가 낮에 봤던 갈매기를 생각했어요. 내일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보겠다고 다짐했지요.
다음날 다시 엉불턱 갯바위 근처로 가서 폴짝 튀어 오르며 살폈어요. 그러나 갈매기는 보이지 않았어요. 어랑은 갈매기가 서 있었던 바위틈에 들어가 갈매기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얼마나 기다렸을까? 배도 고프고 슬슬 눈도 감기고 있었는데 바닷물 위에 뭔가 어른거렸어요. 어랑이의 작은 가슴이 심하게 방망이질해서 꼬리지느러미가 정신없이 좌우로 흔들렸어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려 심호흡을 크게 세 번 하고 어랑은 용기를 내서 차분하게 물가로 나갔어요.
“안녕? 난 어랑이야. 넌 누구니?” 어랑은 바다 표면에 몸이 드러나도록 몸을 최대한 바닷물 위로 바짝 붙이고 말했어요. 그러나 갈매기는 어랑이를 보지 못했답니다. 이번에는 갈매기가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 그 앞쪽 바닷물 위로 폴짝 튀어 오르며 소리쳤어요.
“안녕? 난 어랑이야!”
화들짝 놀라기는 했어도 어랑이를 알아본 갈매기는 이내 눈을 반짝이며 몇 발짝 걸어 어랑이 가까이에 왔어요.
“안녕? 내 목소리 들리니?”
“응, 넌 눈부신 하얀 깃털을 가졌구나! 난 ‘어랑이’라고 해. 너는?”
“나? 음~ 난 이름이 없어. 너도 무척 아름다운 비늘을 가지고 있네!”
“고마워! 그런데 이름이 없어? 내가 너의 이름을 지어줄까?”
갈매기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해서 내일 만나자고 했어요. 어랑은 뛸 듯이 기뻤어요.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온 어랑은 해초더미 속에서 갈매기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생각했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생각만 하던 어랑은 드디어 멋진 이름 하나를 떠올렸어요.
‘가장 아름다운 비밀 친구, 가아비! 그래 가아비가 좋겠어.’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어랑은 가아비를 만나러 갔어요. 빨리 만나 그 이름을 선물하고 싶어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거든요. 한참을 기다려 해가 하늘 위로 높이 떠올라 붉은색이 은빛으로 바뀐 긴 꼬리 그림자가 반짝이며 어랑이에게 닿을 때가 되어서야 갈매기는 나타났어요.
“벌써 와 있었구나! 많이 기다렸니?” 갈매기는 서둘러 어랑이 있는 곳 가까이 바짝 다가오며 말했어요.
“응, 아니! 조금 전에 왔어.”
“응? 아니? 그게 뭐야?” 갈매기는 깔깔거리며 한참을 웃었어요.
“너 많이 기다렸구나. 늦어서 미안해! 내일부턴 나도 일찍 올게.”
“아니, 아니, 조금 기다리긴 했지만 늦지는 않았어. 내가 좀 일찍 나온 거지.” 어랑은 멋쩍은 듯 말꼬리를 흐렸어요.
“참, 내가 네 이름을 지었어. ‘가아비’ 어때?”
“우와~~ 가아비? 정말 예쁜 이름이다. 고마워!”
“다행이다! 네 맘에 들어서.”
“근데 가아비는 무슨 뜻이야?”
“히히, 가장 아름다운 비밀 친구! 넌 나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 친구야.”
어랑과 가아비는 매일매일 엉불턱 갯바위 근처에서 만났어요.
“가아비, 저기 저 하얀 솜털 뭉치는 뭐야? 폭신폭신 뛰어놀면 너무 재밌겠다!”
“아, 저 구름? 저 하얀 솜털 구름 말하는 거지?”
“응, 저게 구름이구나. 넌, 저 구름에서 놀아봤어?”
“당연하지! 그런데 저 구름에서는 뛰어놀 수가 없어. 저렇게 솜뭉치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아주 작은 물방울밖에 없거든.”
“물방울? 바닷물 같은 물이 있어?” 어랑은 물방울이 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뻤어요.
“가아비, 나 언제 한번 저 구름에 데려다주라.”
“너, 바닷물 떠나서 살 수 있어?”
“글쎄, 난 한 번도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어. 그래도 꼭 한번 가보고 싶어.”
“어랑아, 구름에 가는 건 너에게 큰 위험일 수 있어. 그래도 네가 원한다면 방법을 찾아볼게.”
간절한 소망이 생긴 어랑은 폭신폭신한 하얀 솜털 뭉치에서 폴짝폴짝 뛰며 보드라운 감촉을 느껴보는 상상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가아비가 엉불턱 갯바위 근처에 와서 어랑이를 급히 찾았어요.
“어랑아, 어랑아, 어디 있어? 드디어 오늘이야!”
넙데데한 해조류 속에서 늦잠을 자던 어랑이는 다급한 가아비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이 깼어요.
“가아비, 무슨 일이야? 밖이 왜 이렇게 어스름해? 네가 잘 안 보여.”
“아~ 어둑어둑해서 날이 밝은 걸 몰랐구나! 안개가 자욱해서 그래. 드디어 오늘이야!”
“으응? 오늘이라니?”
“조금 있으면 구름이 낮게 깔리고 어두워질 거야. 그때 구름에 가볼 수 있어.”
“우와~~~ 정말?”
자욱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더니 사방이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바다 위에 낮게 드리워졌어요.
“가아비, 새하얀 솜털이 아닌데? 왜 이렇게 시커먼 구름이 되었어?”
“어랑아, 비가 오려고 그러는 거야. 작은 물방울들이 커져서 빛을 흡수하게 되면 꺼먼 그림자처럼 되는 거지.
“그럼, 구름들은 모두 같은 거야?”
“응, 물방울이 햇빛을 반사하면 하얀 솜털 구름이 되는 거고, 빛을 흡수하면 먹구름이 되는 거야.”
“네가 내 날개에 올라오면 내가 구름 속으로 날아갈게. 일단 저쪽 먹구름까지 가자.”
어랑은 가장 낮게 드리워진 구름까지 힘껏 헤엄쳐서 재빠르게 이동했어요. 가아비가 바닷물 표면에 멈췄을 때 어랑은 있는 힘을 다해 폴짝 뛰어 가아비 날개에 오르려 했어요.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지요. 가아비가 날개를 바닷물 표면에 바짝 붙이자 어랑은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폴짝 뛰어 날개에 올라탔어요.
“우와!” 어랑은 신이 나서 지느러미들을 막 흔들었어요. 가아비는 최대한 조심히 날개를 흔들며 구름 속으로 들어갔어요. 보드랍고 촉촉한 물방울들이 어랑이와 가아비의 피부에 살포시 와닿아 싱그러운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바닷물과는 다른 물방울이라 어랑은 오래 있을 수가 없었어요.
“가아비, 정말 고마워! 최고의 경험이었어. 오늘을 잊지 못할 거야.”
“네가 좋아하니까 나도 기분이 좋아. 곧 큰 비가 내릴지 모르니 얼른 집으로 가.”
“그래, 우리 내일 만나자.”
무척 아쉬웠지만 어랑은 아직도 콩닥콩닥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생각하면 할수록 바다 밖에서의 경험은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거센 바람과 세찬 폭우가 퍼붓고 지나간 다음 날은 더 강렬해진 짱짱한 햇빛이 바닷물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어요. 낮이 점점 길어지자 어랑은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가아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가아비는 종종 친구들에게 날아가 맛있는 것들을 가지고 왔어요. 어랑이가 먹기에는 크기가 커서 가아비는 부리로 잘게 잘라 어랑이에게 줬지요. 그러다 문득 주변이 컴컴해진 걸 알았어요.
“우와~~~ 가아비, 저기 저 수많은 물고기들 보여? 저기 좀 봐봐. 저런 곳이 있었다니, 대단하다!” 어랑은 침을 꼴깍 삼키며 처음 본 아름답고 황홀한 광경에 넋을 잃고 가아비에게 말했어요.
“아, 저건 물고기가 아니고 별이라고 하는 거야. 밤이 되면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려.”
“하늘? 별? 하늘이라는 바다에 별들이 살고 있구나!”
그날 밤 어랑은 집에 늦게 들어왔다고 엄마한테 혼났지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하늘바다에 반짝반짝 별이라는 물고기 떼가 저토록 많이 있다니!
매일매일 밤하늘이 보고 싶어서 어랑은 엄마 몰래 밤에 바닷가로 올라왔어요. 하염없이 바라봐도 아름답기만 한 반짝이는 물고기별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어요. 이런 어랑이의 소망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간절해졌답니다.
시름시름 말라가는 어랑이가 걱정되어 가아비가 물었어요.
“어랑아, 무슨 일 있어? 너 요즘 표정이 어두운 것 같아.”
“가아비, 나 저기 저 하늘이라는 바다에 가보고 싶어. 우리 바다랑 똑같이 생겼는데 저긴 고요하고 반짝이는 물고기별도 많아. 나 저기 정말 가보고 싶어.”
“어랑아, 저긴 너무 멀어. 그리고 저긴 물이 없어서 네가 살 수가 없단다.”
“물이 없는데 어떻게 별이 살아?”
“저 별들은 여기서는 조그맣게 보여도 실제로는 엄청 커다란 공같은 거야. 네가 자주 보는 테왁처럼 동그랗게 생긴 행성들이지.”
“물고기들이 아니란 말이지? 그래도 난 저기에 한 번 가보고 싶어.”
“만약에 간다고 하더라도 날이 밝으면 너의 피부가 마르고 네 몸은 타들어가. 호흡을 할 수도 없고 목숨이 위험해. 그리고 다른 새들이 너를 물고 갈 수도 있어. 너무 위험해!”
가아비의 말처럼 하늘로 가는 일은 위험한 일일 수 있다는 걸 어랑이도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바다를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어랑은 하늘에 가고 싶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매일 바라보기만 하다 병이 나서 살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가아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거야. 부탁해! 나를 하늘로 데려다줘.”
“어랑아, 오늘 집에 가서 한 번 더 생각해 봐. 네가 꼭 가겠다 하면 나도 생각해 볼게.”
밤을 새워 생각해도 어랑이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요. 어랑은 그날 밤 가아비의 날개에 올라탔어요. 여름 햇빛에 데워진 바닷물보다 서늘한 느낌이 드는 공기가 어랑이를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이내 곧 안정을 찾았어요.
“괜찮아? 물방울 속이 아니라서 숨쉬기 어렵지 않아? 물 밖이라 몸이 건조해지면 얼른 말해. 다시 바다로 내려갈게.”
“응, 걱정마! 내가 힘들면 말할게. 네가 아까 물을 듬뿍 적셔서 하늘로 갈 때까지 괜찮을 것 같아. 너의 깃털은 정말 포근하고 부드럽구나!”
말은 그렇게 했어도 어랑은 벌써 호흡이 힘들어지고 있었어요. 어랑은 가아비의 몸통에 바짝 붙어서 가아비의 따듯한 심장 소리를 들었어요. 가만 귀 기울이다 가아비의 심장 소리에 맞춰서 호흡을 해보았어요. 기분이 차분해지고 좋았어요.
바다를 떠난 지 꽤 된 것 같았는데 하늘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가면 또 그만큼 멀어지고 있었어요. 그래도 반짝이는 별들이 있어서 어랑은 행복했어요. 어랑은 날개 위에 있는 자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가아비가 지칠까 걱정이 되었어요.
“가아비, 힘들지 않아? 너무 힘들면 말해.”
“어랑아, 난 괜찮아. 너 말을 많이 하면 안 되니까 네가 힘들 때 그때 말해.”
어느덧 높은 하늘까지 올라갔어요. 그러나 별들에게 말을 걸어도 들릴 것 같지는 않았어요. 아가미가 파르르 떨렸어요.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지느러미를 움직일 수조차 없이 축 늘어졌어요. 어랑은 가아비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하늘에 도착하는 상상을 했어요.
하늘 가까이에 다가갔을 때 수많은 물고기별들이 어랑이가 온 것을 기뻐하며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들을 떠올렸어요. 눈부실 정도로 많은 물고기별들이 반짝거려 어랑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실눈을 했어도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를 만큼 너무도 행복했어요. 벅차오르는 행복에 어랑이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어요. 그러나 어랑이의 몸은 빠르게 식어갔지요. 가아비는 굵은 눈물방울을 뚝! 뚝! 흘렸어요.
“어랑아, 넌 벌써 물고기별이 되었구나! 하늘바다에서 행복하게 지내렴. 가끔씩 엉불턱 갯바위에 놀러 와.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