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선명함보다 흐릿함이 더 아름다운 이유
그날의 하늘은 특별했다.
주황빛을 중심으로 연한 핑크색이 퍼져나가고, 그 위로 탁한 보라색이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었다. 구슬비에 젖은 아스팔트가 핑크빛으로 반짝이는 풍경 앞에서, 나는 무심코 안경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선명함이 오히려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기를 머금은 공기, 노을을 감싸 안은 안개, 그 사이로 은은하게 번지는 빛.
때로는 흐리게 보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마치 이병률의 『혼자가 혼자에게』에서 읽었던 구절처럼, 서로의 뒷모습을 공유하는 사이, 두 집 사이에 숲이 있는 거리감이 주는 특별함을 떠올리게 했다.
"차라리 두 집 사이에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뒷모습을 공유하는 사이였음 좋겠다. 그 뒷모습 안쪽에 사람의 사람다운 냄새를 숨긴 사람이면 좋겠다. [...] 한 사람이 여행을 가면 대신 식물에 물을 주고, 그 한 사람이 여행에서 돌아와 문을 열면 빈집 식탁에 채 식지 않은 음식 한 접시가 조심스레 올려져 있어도 좋을, 그런 거리에 누가 살고 있으면 좋겠다."
그 순간, 시가 흘러나왔다. 마치 누군가가 받아쓰기를 해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 흐릿한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
- 윤슬
주황빛을 중심으로 연한 핑크색
그 위에는 탁한 보라색 순으로 그라데이션 되어 있는 하늘이었다
구슬비가 내리고 있어 젖어 있는 아스팔트가 핑크빛으로 반짝였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다는 욕심에 안경을 꺼냈다
하지만 쓰기 전이 훨씬 아름다웠기에 도로 벗었다
물을 머금고 있는 습한 공기
노을을 감싸 안고 있는 안개
그 사이로 은은하게 번지는 빛
흐리게 보아야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
오늘 본 노을이 바로 그런 노을이었다
산 너머에 보이는 노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 사이에 산을 하나 두고 살아가고 싶다
그럼 서로가 더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까
아름다운 널 만나기 위해
산 하나 넘는 것쯤을 감수하고 싶다
산을 넘으면서 자연의 소리에 색깔에
잠시 홀린 순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순간조차 널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난 상상해요
당신이 날 보고 싶어서
산을 넘어오는 날에는
얼마나 기쁠까
그 행복감은 과연
며칠 동안이나 내 주위를 감쌀까
상상만으로 마음 한 켠이 차오르는 걸 느낀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기꺼이 널 사랑하겠다
이 시를 쓰던 날, 나는 위로가 필요했다.
노을이 산을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녀에게 나는 서운한 기억을 남겼다.
나 또한 그녀에게 서운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말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안의 두려움이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나의 민낯, 나조차도 낯설어하는 그 모습을 그녀가 보게 될까 봐. 그래서 도망치듯 멀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두려움보다 그녀와 함께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비록 늦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우리가 만들어온 수많은 좋은 기억들이, 불행한 결말로 물들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다.
"나는 우리의 관계의 결말이 불행하게 남길 바라지 않아. 너도 우리의 해피엔딩을 포기하지 마."
마치 산 너머 노을빛처럼 은은하게, 하지만 따뜻하게 이 마음이 전해지기를.
그날의 흐릿한 노을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더욱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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