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물결 속, 스쳐간 인연
세이클럽, 친구추가, 쪽지.
그리고 붉은 티셔츠와 거리 응원.
기억하나요?
그 여름, 우리도 누군가와 그렇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지 며칠 후,
그녀의 모니터 구석에 작은 아이콘이 반짝였다.
세이클럽 메신저를 열자
친구목록에
낯설지만 어딘가 들어본 닉네임이 보였다.
그 순간,
여름날의 눈부신 햇빛과 오락실의 소음,
달콤했던 팝콘 냄새가 떠올랐다.
그리고 수학여행에서 다시 마주쳤던 그 눈빛도.
잠시 후, 짧은 쪽지 하나가 도착했다.
“잘 지내?”
그 안에 지난 시간이 휘몰아치듯 스쳐갔다.
그녀는 화면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그의 프로필을 열어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안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채팅창에서 이어지는 밤늦은 대화,
가끔씩 오가는 이메일 몇 줄.
자주 연락하진 못했지만,
1년 전보다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2002년 여름,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거리마다 붉은 티셔츠와 함성이 물결쳤다.
도시의 밤은 낮처럼 환했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합쳐졌다.
그는 그 붉은 물결 속에서,
그녀를 찾았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던 순간,
그녀 옆에 낯선 남자가 보였다.
함성과 노랫소리, 흔들리는 깃발,
축제의 열기와 여름밤의 더위,
응원의 함성이 뒤섞인 순간,
그의 마음에도 알 수 없는 불길이 번졌다.
그녀가 그를 알아보곤 걸어오려 했지만
흥분한 인파 속에서 두 사람은 점점 멀어졌다.
그 잊지 못할 여름,
모두가 하나 되어 환호했던 그 순간처럼
뜨겁게 스쳤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처럼
그들의 연락도 서서히 잦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