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것이 힘들다면 아직 보내지 않아도 괜찮아.
2023년 5월 1일부터 2023년 5월 7일까지.
※ 비움목록 ①
전공서적
일반책들 : 알라딘 중고서점 매입
오랜 시간 함께 했었던 전공서적.
상태가 좋은 책들은 판매하고 일부는 나눔, 오래되어 변색되고 찢어진 책은 폐기.
전공서적은 어찌 보면 나의 미련이기도 했다. 필요한 때가 되면 물건은 저절로 나에게 오게 돼있다는 믿음이 생긴 직후 가장 먼저 정리하게 됐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지만 이 역시 나를 위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과거의 나를 마주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된 건 내 인생에서는 값진 경험이었으니까.
돌이켜보면 참 감사한 선택이다.
정리를 하다 보면, 과거의 나를 마주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오래된 일기를 들춰보는 것도 그중 일부인데,
2013년 천 원짜리 노트에 기재되어 있는 기록을 보면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삶과 거의 비슷하다.
특히 '부제: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근사하게 사는 법 연구하기'나,
'시간을 느리게 하는 법을 터득할 것'은 저 때도 저런 생각을 했구나 하며 신기하기도 하다.
때때로 미래가 불안해질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될 때 나는 이 노트들을 꺼내서 쓱 본다.
그러면 크게 불안해지지 않는다.
조지프 캠벨의 『블리스, 내 인생의 신화를 찾아서』 편집자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이 성장해 왔고 생각이 변화하고 발전해 온 줄로 알았다. 하지만 그 자료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모두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20년 넘게 줄곧 나를 움직여온 것이 있었다. 그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인식하기까지는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24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나는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일반 책들을 정리하며 꼭 남겨야 하는 책들을 남기고 있다. 그중의 한 권인 이 책은 왠지 모르게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읽으면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마음의 위로를 준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오직 나를 위한 길임을.
※ 비움목록 ②
다이어리들
오랫동안 '보관'만 해오던 다이어리들. 좋은 분들께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구매해 주는 분들께 작은 쪽지와 속지도 같이 보냈다. 좋은 쓰임을 당하고 오랫동안 사랑받기를. 그동안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나 많은 다이어리들을 모았을까? '수집'하는 심리에는 그 물건에 담긴 자신의 생각이 함께 있게 마련인데, 되짚어 생각해 보면 나는 '정리를 꼼꼼히 하고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다이어리를 구매했었다.
막상 다이어리를 손에 쥐고 나면 기뻤지만, 그 기쁨은 항상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정말로 심사숙고해서 고른 게 아니라, 잠깐 스친 그 이미지 속의 나를 상상하며 순식간에 구매했기 때문이다.
진짜 나를 나답게 해주는 건 단지 '기록할 수 있는 노트와 펜'일뿐인데 말이다. 본질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문구들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걸 알았다.
!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저렇게 비워내고도 남은 문구들은 생각보다도 훨씬 많다(하하... 흔한 문구덕후의 일상일까?).
문구는 다른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난제인데, 워낙 좋은 문구들을 좋아하다 보니 좋은 종이, 좋은 노트, 좋은 커버, 좋은 펜... 등을 모았더랬다.
이 문구들을 책들처럼 촥촥 처분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속으로 '아휴.. 이것도 처분 못하면 어떻게 미니멀라이프를 해..'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다른 마음이 속삭였다. '버리는 것이 힘들다면 아직 보내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언젠가 아주 좋아했던 다이어리를-이제는 별로 큰 미련이 없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미련이라는 감정은 옅어진다- 처분하고 나서 몇 날며칠을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돈이 필요해서 무턱대고 판매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은 물건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그 물건을 적정한 가격에 처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직도 다이어리는 남았다. 만년필도 있다. 좋은 종이도 있고, 좋은 노트도 많다.
그런데,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문구 소비를 하지 않을 거란 거.
이미 주어진 것이 충분하다.
만년필은 천년만년 잉크만 있으면 재사용 가능하다.
물건 본연의 쓰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사용자도 노력해야 한다.
빠르진 않더라도 느리게 나만의 미니멀라이프를 지속하자.
미니멀라이프를 위한 비움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