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쓰려다 블로그를 접을 뻔한 날

잘하려는 마음이 나를 멈추게 했습니다.

by 박재훈

블로그를 시작한 지 반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매일 쓰는 일이 조금 익숙해지고, 글이 쌓이자 주변의 반응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글이 좋아요.”
“글 감성이 참 따뜻하네요.”
그 몇 마디가 너무 기뻐서, 저도 모르게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왕 하는 거 더 잘 써야겠다.’
그 마음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글을 올리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습니다.
예전엔 하루에 한 편을 올렸는데, 이제는 이틀, 사흘에 한 편이 겨우 올라갔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문장 구조를 먼저 생각했고,
단어 선택에 몇 분씩 머뭇거렸습니다.
글을 다 써도 ‘이 문장이 어색한가?’ ‘이 표현이 너무 감정적일까?’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처음엔 그게 발전이라고 믿었습니다.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상한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글을 쓰는 게 즐겁지 않았고,
작성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도 ‘이게 괜찮을까?’라는 의심이 머리를 채웠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는 마음이, 어느새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어느 날, 새벽까지 글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한 문단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웠습니다.
결국 새벽 3시가 넘었을 때, 화면에는 한 줄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쓰지?’
그때 처음으로 블로그를 접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니터 불빛만 남은 방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그 고요 속에서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처음엔 단지 ‘하루를 기록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좋은 글’이 목표가 되자, 글을 쓰는 이유가 바뀌어버렸던 겁니다.

완벽주의는 은근히 다정한 얼굴을 하고 찾아옵니다.
‘더 나아지고 싶다’,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되죠.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마음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도구로 변합니다.
문장 하나에도 정답을 찾으려 하고,
그 답을 찾지 못하면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저는 그 함정 속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좋아요’의 함정에 빠지다

처음엔 관심이 고마웠는데, 점점 그 관심이 두려워졌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기다리고 있을까 봐,
괜히 이번 글이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좋아요’의 숫자가 제 기분을 결정했습니다.

공감 수가 많으면 기분이 좋았고,
적으면 괜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댓글이 없는 날은
‘이제 내 글이 재미없어진 걸까?’라는 불안이 생겼습니다.
그럴수록 문장을 더 다듬고, 더 완벽하게 만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글은 점점 딱딱해졌습니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제가 먼저 지쳐갔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평가받을 글을 만들고 있구나.’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온몸이 싸늘해졌습니다.
처음의 진심이 완전히 사라지고,
남은 건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제 모습뿐이었습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다

그날 이후, 잠시 블로그를 멈췄습니다.
일주일 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예전의 글들을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처음 썼던 글, 아무도 읽지 않던 시절의 글들.
문장은 어설펐지만, 이상할 만큼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 글들에는 완벽하지 않아도 진심이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공감했던 건 문장이 아니라 ‘온도’였다는 걸요.
조금 서툴러도,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글이
결국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는 걸요.

그날 밤, 예전처럼 아무런 계획 없이 새 글을 썼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마음이 복잡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 문장을 쓰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다듬지 않은 글이 오히려 더 저 같았습니다.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난 진심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저는 제 방식으로 규칙을 세웠습니다.
‘글을 고치는 건 한 번만.’
이 규칙 덕분에 불필요한 완벽주의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쓴 문장을 믿고, 마음이 담긴 글이라면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렇게 쓰다 보니 글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글 속에는 이제 더 이상 인위적인 꾸밈이 없었습니다.
그냥 ‘살아 있는 하루’가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글에 더 많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문장 속에서
진심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기 때문이겠죠.

그때 알았습니다.

불완전한 문장이 사람을 위로한다는 걸요.
모두가 완벽한 세상 속에서
서툴고 흔들리는 마음이 오히려 더 진짜처럼 느껴진다는 걸요.



완벽보다 진심이 오래간다

블로그를 하다 보면 완벽함을 추구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조회수, 반응, 평가, 비교.
그런 숫자들이 문장을 흔들고, 마음을 흔듭니다.
하지만 글은 결국 사람이 쓰는 것입니다.
사람이 완벽할 수 없듯, 글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잘 쓰는 게 아니라,
멈추지 않고 쓰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매일 글을 올리기 시작했을 때,
방문자 수는 여전히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제는 누가 읽어주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제 하루를 단단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완벽주의는 제게 꼭 필요한 시련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배운 건 ‘잘 쓰는 법’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법’이었습니다.
때로는 서툴게, 때로는 어색하게라도
계속 쓰는 사람만이 결국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있음을
저는 그 시절을 통해 배웠습니다.

오늘도 글을 씁니다.
문장을 다듬지 않아도, 문법이 틀려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 글 속에 ‘지금의 나’가 살아 있다는 것.
불완전하지만 진심이 담긴 글 한 줄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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