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채워낸 시간보다
허공으로 흘려보낸 듯한 시간들이다.
해야 할 일을 미루다가
손도 대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 날들,
몸은 쉬고 있었지만
마음은 쉬지 못해
결국 아무것도 회복하지 못한 주말들,
‘조금만 더 있다가 시작해야지’
라고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저녁이 되어버린 오후들.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어쩐지 아깝기도 하고,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들 전체가
완전히 ‘잃어버린’ 시간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하루는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싫다”는 사실을
조금 더 또렷하게 알려주었고,
의욕이 바닥난 시간들은
“나는 무엇을 할 때 살아나는 사람인가”를
다시 묻게 만들었다.
잃어버린 것 같은 시간들 속에도
사실은 작은 징표들이 숨어 있었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
조금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미약한 의지 같은 것들.
그래서 나는
올해의 ‘잃어버린 시간’을
완전히 없던 시간으로 지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다음에 같은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
이렇게 한 번 더 돌아보고 적어 두는 것.
언젠가 오늘을 떠올렸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들’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시간들’로
기억될 수도 있기를 조용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