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어문 Apr 02. 2022

마흔의 공기는 어때?

서른, 아홉 대사 중에서-


영원할 것만 같은 우리, 호기심으로 시작한 우리의 관계는 어느덧 어른이 되었고, 서로의 사랑을 보았고 이별을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 견디며 , 어느새 아홉이 되었다. 서른 하고도 아홉. 


드라마 '서른아홉'의 그녀들은, 어린 시절 만나 지금까지 함께 해 주는 친구들과 나의 모습 같다. 10대 때 만난 친구들의 아이들이 어느덧 10대의 끝자락이 되어 갈 때까지 함께 걸어가고 있는 친구들, 가볍게 수다를 떨던 우리는 문자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고, 가족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상처를 보듬어주는 우리가 되었다. 

영원할 것 같은 우리의 우정은.... 그렇다. 이젠 갑자기 누군가가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버렸다. 드라마의 그녀들은 이별하기에 아직 너무 애틋한 나이이지만, 마흔 하고도 아홉은 어쩌면 갑작스럽게 이별이 찾아올 수도 있는 나이인 것이다. 



내 부고 리스트를... 브런치 리스트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끝내 항암 치료를 거부한 찬영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마 나였어도 병상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실낱 같은 희망을 아니 기적을 믿고 싶은 친구들과 가족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라만 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은 정말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차마 부모님께 자식의 죽음을 부탁할 수 없는 찬영은 차근차근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떠난 뒤 자신을 찾아올 사람들을 만날 곳을 계약하고, 자신이 없는 삶을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소소한 부탁들을 한다. 부모님의 오래된 식당을 리모델링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끼니를 부탁하고, 부모님의 생신을 부탁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부재로 힘들어할 그들이 함께 잘 견뎌내기를 진심으로 부탁한다. 


부고 리스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고 리스트가 뭘까, 가족들이 고인이 생전에 인연이 있는 분들께 소식을 전하기 위한 절차 정도로만 생각했다. 찬영의 부고 리스트의 기준은 언젠가 밥 한 끼 먹자고 연락 오면 같이 밥을 먹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떠나기 전 볼 수 있다면, 꼭 보고 가고 싶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찬영의 마음을 아는 미조는 주희와 생전 부고 리스트를 만든다. 겨울바람처럼 시린 장례식장이 아닌, 화사한 봄 같은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볍게 즐기는 브런치 같은 이별을 선물한다. 그래서 그녀는, 슬프지만 행복하게 떠날 수 있었다.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는 마지막을 선물하면서.


마흔의 공기는 어때?


떠난 찬영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녀의 마지막을 차마 볼 수 없었던 미조가 아직도 아파할 것을 아는 듯이, 더 아파하지 않았으면 이야기해주고 싶은 그녀에게서 소식이 왔다. 밥 잘 먹고, 수면제 없이 자고, 잘 지내냐고 묻는 그녀. 너희들과 예순, 이른, 여든...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싶었다는 그녀. 

떠난 후에도 남겨진 사람들 곁에서 그녀만의 시간으로 함께 하고 있는 듯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러, 봄이 되면 꽃을 보러, 부모님 생신에는 부모님을 뵈러 , 마치 그녀가 모든 순간을 함께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만질 수도, 안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그녀지만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서른아홉의 환한 그녀로 영원히 남아 있었다. 


네가 없는 것만 빼면.... 같아


남겨진 사람들은 남겨진 대로 그녀를 그리워하며 가끔은 눈물도 흘리며 슬픔을 겪어 내었고, 시간은 아무 일 없는 듯이 흘러만 갔다. 그리고 그녀의 버킷 리스트, 작품으로 자신을 남겨 두고 싶었던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그 또한 자신과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선물 같았다. 영화관에서 그리움과 반가움으로 눈물짓던 가족과 친구들을 보면서, 슬프지만 그렇게라도 그녀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할 것 같은 시간도 언젠가는 모래시계처럼 빠져나간다. 

다음에, 편할 때, 여유될 때,라고 미뤄두었던 친구들과의 만남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찬영의 말처럼, 미조의 말처럼, 친밀하고 소중한 관계, 친애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얼마나 내게 허락되어 있을지 알 수 없을 일이다. 내게 친구들은, 꾸역꾸역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해 준 또 다른 버팀목이었다. 


언젠가 찬영처럼 먼저 떠나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녀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소소하고도 소소한 글이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들을 떠올리고 있는 이 글이라도 친구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실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