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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Jun 05. 2022

인간으로부터의 해방

'해방 일지'

"아기 본 적 있어?"

"아기?."

아기를 데리고 술을 마시러 온 비정상적인 손님 덕분(?)에 아기와 단둘이 한 방에 있게 된 구 씨의 당황스러운 모습은 그저 유머로 보이지는 않았다. 술잔을 들려던 손을 망설이는 그는 마치 몰래 나쁜 짓이라도 하다가 들킨 소년처럼 순수해 보였다. 그 순간만은.

작가는 왜 하필, 아기를 그 술집으로 보낸 걸까? 

아기와 함께 한 잠시 동안 구 씨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영혼이 보이는 듯했다.


"새가 날아들어온 것 같았겠네요."

구 씨의 질문에 답하던 이 대사로 모든 게 설명되는 듯했다. 

어느 날 새가 날아들어오듯 찾아와 다짜고짜 추앙하라고 요구하던 미정의 존재도 구 씨에겐 그러지 않았을까. 툴툴거리면서 혹은 화를 내면서도 미정의 마음을 안아 주던 시간들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달이 보이는 창문은 동화책에만 나오는 줄 알았다던 구 씨. 미정의 집은 구 씨에게 그런 곳이었다.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비현실적으로 고요한 일상만 가득한 곳, 그런 일상이 없었던 그에게 그곳은 동화 속 세상 같았을지도 모른다.


아기 같은 존재, 한 마리 새 같던 존재, 구 씨에게 미정은 그런 해방 아니었을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알게 해 주고 , 행복하지 않은 나를 바꾸고 싶어 졌으니 그의 해방은 '미정'이다. 자신을 속박하는 무수히 많은 것들로부터 해방되고 싶던 미정 또한 구 씨를 해방시키며 자신을 채워갔으니 미정에게 '구 씨'도 해방이었을 것이다.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나 

불완전한 상태로 서로를 채워가는 상태

굳이 무언가로 채우지 않아도 행복해지는 것

그런 게 해방일까


조직으로 돌아가야 하는 구 씨가 포획된 들개를 바라보는 눈빛에 연민이 가득해 보였다. 마치 돌아가기 싫은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을 보는 것처럼. 그래서였을까, 들개들에게 파라솔을 세워 주고 간식을 주고 취해서 찾아갔던 이유가. 갈 곳 없이 헤다 두려움과 경계로 가득한 들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자신처럼 느껴졌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척하지 않는다

불행한 척하지 않는다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본다


조언하지 않는다

위로하지 않는다


인간이 가장 원하는 위로,

위로는 답이 없는 문제 같다.

백 명의 사람에게 같은 문제를 던져도

백 개의 답안이 있는 이상한 문제 같다.


"엄마는 뭐에서 해방되고 싶어?"

아이가 물었다.

"글쎄... 돈?" 그러고 웃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를 가장 옭아매던 사회적 통념에서는 확실히 해방되었다.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결핍되는 것이라고 느꼈던 압박.... 결혼을 해도, 안 해도, 이혼을 해도, 혼자 살아도, 아이가 있어도, 없어도, 그 어떤 답안이라도 현재 내게 가장 가장 좋은 답안이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꼭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니, 이제 그런 통념들은 더 이상 나를 압박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 해방이 아닐까.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해방 일지의 단순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회칙이 좋다. 남들이 그래야 한다고 하는 말들에 더 이상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말처럼 들려서.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삶이지만, 속박되고 움츠리지는 말라는 것 같아서. '인간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미정의 말은 쓸데없는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에 시원한 펀치 한 방을 날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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