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오름부’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제주시 3명과 서귀포 회원들의 게임이 시작됐다. 나와 같은 9부 오름부부터 상위 5부까지 열명 남짓 다양한 실력자들이 우리와의 경기를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수와 한 게임하기 위해 심판을 보며 기다리는 것은 봤었지만, 낮은 부수와 치려고 기다리는 일은 흔치 않다. 어색한 우쭐함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고마운 마음 가득 안고 게임을 시작했다.
난 가끔 환호했고, 때론 머리를 긁적였다. 서귀포 회원들은 게임이 끝날 때마다 내게 말을 건넸다. “제가 세 명하고 경기를 다 했는데요, 회원님 커트가 세 명 중에 제일 세요. 그런데 강하게 커트를 보냈으면 그걸 이용해서 득점으로 연결해야 하는데 그다음 공격 방법을 정하지 못한 거 같아요. 자기 커트를 감당할 공격 무기를 장착하시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거예요.” 또 다른 회원은 말한다. “지금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회원님 공격 타임에 공을 밀어서 넘기고 있어요. 내 공격 타임에는 내가 주도권을 잡아야 해요. 선재를 못 잡고 공을 넘기면 결국 2점을 잃는 거예요. 공격할 때는 과감해지세요” “오름부세요? 잘하는데요. 계속 이렇게 하면 금방 금강부로 승급하겠어요. 다만, 회전이 있는 공은 끝까지 보고 치세요. 좀 전에 자꾸 노터치 난 건 회전을 끝까지 안 봐서 그런 거예요” 내가 게임에 집중한 사이 그곳 회원들은 내 스윙부터 게임 운영 방식까지 나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서브를 넣은 후 돌아오는 공을 치는 것이 3구다. 서브권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건 3구를 어떤 식으로 할지 미리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돌아오는 공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확률이 높은 경우를 예측할 수 있다. 초보일수록 리시브는 특별한 것이 없다. 그래서 더 쉽게 3구를 공략할 수 있고,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나의 문제는 아무 생각 없이 서브를 넣고 상대가 공을 리시브하면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받는다는 데 있다. 몸은 부지런히 탁구장을 다니지만, 생각은 게을러 아직 그 부분이 정리되지 못했다. ‘선재’ 부분도 이번 2024 파리올림픽 탁구 중계 때 많이 나온 단어다. ‘선재 공격이 필요합니다.’ ‘선재를 놓쳤네요’ 등등. 자신에게 유리한 공이 왔을 때 기회를 못 잡으면, 결국 상대에게 역습을 당하게 된다. 내게 온 찬스 공은 과감하게 끝까지 스윙하기로! 서귀포 회원들 덕분에 몰랐던 사실에 놀라고, 알지만 아직 고치지 못한 부분은 기필코 고치리라 다짐하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단식경기가 끝나갈 때쯤 서귀포 회원의 제안으로 간단히 복식경기가 진행됐다. 나와 서귀포 동호회 회원이 한 팀이 되었다. 복식경기 역시 재미와 웃음이 섞인 어른들의 놀이였다. 우리는 이길 때도, 질 때도 서로를 보며 웃었다. 몇 번의 복식 게임이 끝나자 허기가 몰려왔다. 신나게 땀 흘린 지 벌써 몇 시간 째다. 시간이 더 늦기 전에 함께해 준 회원들에게 인사했다. “오늘 고맙습니다. 몇 분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같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귀포 자주 놀러 오세요. 저희 구장에 오는 분들 많이 있어요. 저희는 늘 환영입니다.” 겨울에도 따뜻한 곳이 서귀포라지만 마지막까지 서귀포 회원들은 포근했다.
배고파진 우리들은 서둘러 숙소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진짜 관광객이다. 서귀포 동생의 추천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식당으로 갔다. 사방이 바다인 섬에 살면서도 ‘역시 서귀포 바다야!’를 외치며 시원한 음료와 요리를 주문했다. 하나씩 등장하는 요리를 순식간에 비우는 사이 식당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창밖의 바다는 어느새 캄캄한 밤에 묻혀 버렸고 서귀포 동생과 우리는 처음부터 원팀인 듯 탁구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는 동호회 단체카톡방에 우리의 방문을 거듭 홍보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앞 접시에 '흑돼지 가지말이 튀김' 한 점을 놓아주었다. 고마웠다.
한 시간 남짓 이동했을 뿐인데 이곳에서의 나는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있었다. 작년 탁구 대회에 경품으로 등장한 숙박권. 누구도 당첨되지 않은 경품. 가슴에 품고 있던 서귀포에 대한 로망. 가보자는 마음에서 출발한 서귀포 탁구 원정.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 동서남북 알 수 없는 낯선 서귀포 거리. 그리고 서귀포 바다의 풍경까지. 모든 것이 숙박권에서 비롯된 나비효과였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고, 익숙지 않지만 불편하지 않은 이곳에서 호기심·설렘·자유로움·해방감 이런 감정들이 내 안에 뒤섞여 있었다. 묘하게 조화로운 이 느낌이 우리의 밤을 더 특별하고 황홀하게 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탁구를 치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있을 나를 그려본다. 탁구 라켓을 잡으면 지금보다 훨씬 에너지 넘치고 눈부시게 설레는 다른 인생의 문이 열리는 거 같다. 탁구가 그저 좋다. 오늘 밤 나의 스토리에 서귀포의 특별한 기억이 한 겹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