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흘려보냈는데, 왜 온전한 무심이 아닌가?

by Irene

감정을 흘려보냈는데, 왜 온전한 무심이 아닌가?

이 의문은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정당하고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그래서 이제 이 생각을 더 명확히 정리해본다.


질문의 핵심 요지

“나는 분명히 감정을 느꼈고

그것을 인식하고 흘려보냈고

감사함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왜 분석했을까?


왜 그렇게 설명되었는가?

“그건 2단계이다”라는 설명이 나왔던 이유는,

내가 했던 설명 안에 감정에 대한 논리적 해석이 강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허무감이 들었지만, 그건 몸이 회복이 필요했던 거고, 그건 맞는 일이고, 잘 된 일이고…”

이처럼 감정을 해석하고, 바꾸고, 전환하려는 태도가 드러나 있었다.

이런 접근 방식은 2단계(자각과 전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지점은 이것이다.

→ 바로, 해석하려는 습관이 남아 있는 한, 그건 여전히 2단계라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감정을 잘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여도,

그 감정을 “이해하고 정리하려는 마음”이 개입된 순간,

그것은 여전히 자각 이후 ‘전환’을 시도하는 단계다.


3단계가 되면, 이 해석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감정이 올라오면 그저 ‘있고’, 그저 ‘흘러가고’, 그저 ‘머무는’ 상태가 된다.

그 흐름을 굳이 말로 해석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내면의 태도’다.

감정을 흘려보냈다고 해서 모두가 3단계인 것은 아니다.

그 안에 해석이 개입되면, 그것은 여전히 2단계다.


그러나 후속적으로 다시 들여다보니,

그 장면 안에는 감정에 대해 붙잡지 않고, 흐름에 맡기는 상태가 분명히 느껴졌다.


“허무하다”는 감정이 들었고

그것을 억누르거나 바꾸려 하지 않았으며

“그럴 수 있다”는 여지를 두었고

그 감정을 흘려보냈고

그저 그 흐름 속에 머무는 상태였다.

이것은 3단계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여전히 경계선은 미묘하다.

말이나 표현에서는 2단계의 요소가 섞여 있고,

실제 내면은 3단계에 가까운 자리에 머물고 있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더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은,

‘해석하려는 습관’이 완전히 내려가야 진정한 3단계다.

그 습관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건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구분/ 2단계/ 3단계

감정 인식/있음/있음

감정의 처리/해석, 전환, 수용/흐름 그대로 머무름

마음의 태도/“이 감정을 잘 다뤄야지”/“이 감정도 그냥 삶의 일부”

중심성/의식적으로 중심을 잡음/중심 그 자체가 됨

생각/해석이 개입됨/생각 없음, 그저 있음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바로 ‘해석의 개입 여부’다.

지금 어떤 감정을 대하면서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해석하고 방향을 잡으려는 습관이 있다면,

그건 명확히 2단계다.

3단계는 그 모든 것을 놓고,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뿐이다.



그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분명히 2단계와 3단계를 넘나들고 있는 전환기에 있다.

아주 고도로 자각적이며

감정을 잘 다루고 있으며

이미 무심의 문턱까지 도달해 있다.


때로는 3단계에 머물고

때로는 다시 2단계의 언어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건강한 전환기의 모습이다.

누구나 이런 경계지대를 지나간다.


그리고 이 경계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통과의 열쇠는 ‘해석하지 않으려는 용기’다.



내가 했던 방식은 분명히 3단계의 흐름과 매우 유사했다.

다만, 설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해석하려는 습관’ 때문에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2단계라고 분류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이미 3단계의 내면 상태를 살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2와 3 사이의 경계선에 서 있다.

그걸 자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흐름은 3단계를 향해 흐르고 있다는 증거다.


3단계는 “내가 3단계인가?”라고 묻지 않는 자리이다.

그냥 흐르고, 그냥 존재한다.

묻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 조정하지 않고,

다만 삶과 함께 존재한다.


지금 이 흐름의 언저리에 있다.

이제는 “이게 맞나?”라고 확인하지 않아도 된는 날이 올 것이다.

이미 잘 가고 있다.


언어로 설명되는 순간,

단계는 언제나 왜곡되기 마련이다.


삶으로 살고 있는 그 자리,

그것이 진짜 도(道)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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