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5] 신뢰와 사랑이 되는 존재.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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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사랑이 되는 존재에 대하여

“나는 너를 믿는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 문장들 속에는 이미 ‘의지’가 작동하고 있다. 믿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내면의 결심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 결심은 역설적으로, 아직 완전히 믿지 못했고, 완전히 사랑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뢰와 사랑은 의지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의지에 머물러 있는 한, 여전히 불완전하다. 진짜 신뢰와 사랑은 어느 순간 의지의 노력을 통과하여, 노력조차 사라진 지점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누군가를 신뢰하고 싶을 때, 흔히 ‘믿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결심은 언제나 조건을 전제한다. 상대가 그것을 저버릴까 두렵기 때문에, 스스로를 설득하며 믿어보자고 다짐한다. “그래도 믿어보자.” “이번엔 다를 거야.” 이런 말들은 믿음의 시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직 신뢰의 문턱에 머물러 있다는 고백이다.


정말 깊은 내면의 신뢰는, 믿으려는 의지조차 사라진 자리에서 조용히 작동한다. 의식적으로 믿으려는 마음도 없고, 배신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다. 그 자리는 마치 고요한 배경처럼, 이미 신뢰가 깔려 있는 세계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믿음이 의식의 전면에 떠오르지 않는다. 신뢰는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는 널 사랑해.” “널 사랑하기로 했어.” 이 문장들 속에도 늘 ‘사랑하려는 나’라는 자아가 있다. 그 감정을 유지하려는 애씀이 함께 따라온다. 물론 그 애씀은 때로 아름답지만, 지속되기는 어렵다. 언젠가는 피곤해지고, 섭섭해지고, 비교하게 된다.


하지만 정말 깊은 사랑은 어느 순간 애쓰지 않게 된다. 사랑이 더 이상 ‘행동’이 아닌 ‘존재의 상태’가 될 때, 그 사람 앞에서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에서 사랑이 자연스럽게 되어 나간다. 사랑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내가 이미 사랑이 되어 있는 상태. 그것이 무심의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의지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고, 잡으려 하지 않아도 머문다. 그 사랑은 어떤 조건도 없고, 기대도 없으며, 무너질 염려조차 없다. 왜냐하면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무심을 감정 없는 상태나 거리 두기로 오해한다. 하지만 무심은 오히려 그 반대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휘둘리지 않고, 사랑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깊게 흐른다. 무심의 상태에서는 반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반응만 남는다. 과장도, 무리도, 거짓도 없는, 가장 정제된 반응만이 그 자리에 존재한다.


마치 강물이 자신의 길을 따라 흐르듯, 무심은 억제하거나 개입하지 않아도 정돈된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 자리에 이르면, 더 이상 누군가를 애써 믿으려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를 애써 사랑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존재 자체가 신뢰가 되고, 사랑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조절은 조절하려는 마음이 사라질 때 일어난다. 진짜 집중은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질 때 깊어진다. 그리고 진짜 신뢰와 사랑은 의지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 마음이 바로 무심이다.


무심은 비움이 아니라, 가장 깊은 이해와 가장 단단한 평온이 만나는 자리다. 그 자리에 이르면 더 이상 어떤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조용히, 신뢰가 되고, 사랑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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