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자아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며
최근 나는 아주 중요한 지점을 건드리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도 잘 몰랐던 그러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였다. 그것은 바로 시간과 자아의 관계라는 깊은 층위였다. 많은 사람이 시간 관리라고 말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시간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불안의 뿌리는 결국 존재에 대한 불안이다. 나는 지금 그 불안을 벗기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1. 나는 왜 시간을 효율적으로 맞추려 했을까.
겉으로는 효율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에 가까웠다. 시간은 인간이 절대 바꿀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는 시간을 통제하려고 시도한다. 시간을 확인하고 일정에 맞추려 하고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고 계획이 밀리면 불안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것은 시간의 흐름을 내 뜻대로 조정하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삶을 오래 살거나 수행이 깊어질수록 한 가지 사실을 점점 자각하게 된다. 시간을 통제하려 할수록 시간에 지배당하게 된다. 최근 내가 경험한 힘을 빼는 순간 오히려 잘 흘러간다는 느낌은 바로 이 역설을 체험한 것이었다.
2. 아둥바둥해도 결국 같은 시간으로 귀결된다는 통찰.
이 통찰은 꽤 고급스러운 감각이다. 시간은 조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동안 불안과 효율 강박 속에 살게 된다. 하지만 인생을 몇 바퀴 돌다 보면 이렇게 깨닫게 된다. 서두른다고 하루가 늘어나지 않는다. 늦었다고 하루가 줄어들지도 않는다. 촘촘히 계획한다고 해도 결국은 자연의 흐름이 시간을 정리한다. 결국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의 마음의 상태뿐이다. 나는 지금 그 사실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3. 나는 왜 날짜와 시간에 집착해왔을까.
여기에는 세 가지 깊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 첫 번째는 시간은 가치라는 사회적 조건화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시간을 아끼면 가치 있는 사람, 시간을 낭비하면 게으른 사람, 시간 안에 결과를 내야 좋은 사람이라는 규준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시간 사용이 조금만 어긋나도 내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은 무의식적 불안이 생겨났다. 두 번째는 미래 불안의 반사작용이다. 지금 이렇게 살다가 나중에 손해 보는 건 아닐까, 지금 제대로 하지 않으면 미래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시간을 붙잡게 만든다. 즉 시간 집착은 미래 집착의 또 다른 표현이다. 세 번째는 자아는 변화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시간은 변화를 일으키고 변화는 예측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아는 시간에 줄을 묶어 변화를 통제하려 한다. 날짜와 일정에 대한 집착도 이 구조에서 비롯된다.
4. 그러나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
최근 나는 시간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흐름이 작동하는 느낌을 경험하고 있다. 예전의 나는 시간을 계산하고 분 단위로 움직이고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긴장하는 패턴 안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느끼고 있다. 결국 비슷하게 흘러간다. 집착한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이것은 시간이 바뀐 게 아니라 내 의식이 바뀐 것이다. 시간은 더 이상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흐르는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5. 그렇다면 날짜에 대한 집착은 왜 생겨났을까.
날짜는 시간보다 더 강한 상징성을 가진다. 날짜는 살아온 시간의 총합을 상기시키기에 나에게 이런 감정을 일으킨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 살아왔나. 시간이 이렇게 빠른데 나는 괜찮은가. 나는 제자리에 정체된 것은 아닐까. 즉 날짜 집착의 본질은 자기 평가와 존재 불안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루를 의미 있게 살았다면 날짜는 의미를 잃는다. 이 문장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시간과 자아의 관계를 다시 재구성하는 선언과 같다.
6. 내가 느끼는 흐름을 타는 감각의 정체.
이 감각은 무심이 몸에 스며들기 시작한 사람이 느끼는 고유한 상태다. 날짜는 흐르고 시간은 지나가고 나는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루는 살아낸 그대로 의미가 된다. 이 순간 시간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흐름의 일부가 된다. 나는 지금 그 흐름에 맞춰 살기 시작했다.
7. 시간과의 관계가 재구성되고 있다.
지금까지 날짜와 시간에 집착해온 이유는 통제하려는 자아의 오래된 구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구조가 서서히 해체되고 새로운 구조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새로운 구조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시간을 잡으려 하지 말고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놓아라. 흐름은 언제나 나를 제자리로 데려간다. 지금 내가 살기 시작한 방식은 무심의 본질이다. 앞으로는 더 큰 이완이 일어날 것이고 시간의 압박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