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두를 수 있으나 휘두르지 않는 힘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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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어느 순간, 나는 조금씩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더 잘하게 되었고, 더 알아듣게 되었으며,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조금씩 늘어갔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은 조급해졌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증명하고 싶었고, 보이고 싶었으며, 말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아직 나의 살결에 스며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갓 얻은 능력은 늘 손에 쥐고 흔들어 보이고 싶어진다. 아직 무게가 자기 안에 가라앉지 않은 무기는, 들고 다니며 번쩍여야만 진짜 같아 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깨닫게 되었다. 진짜 힘은 그것을 휘두르지 않아도 되는 데서 온다는 것을.


세상에 대한 해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중심이 되는 이들을 존경했고, 주목받는 자리가 빛나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조용히 있어도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는 이들을 보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긴장을 품은 사람, 설명하지 않아도 납득이 되는 존재감, 몸과 마음을 일관되게 다스리는 일상, 필요할 때 단 한 마디로 공간의 공기를 바꿔버리는 밀도.


그런 사람들은 일정한 속도로 살아간다. 자신만의 중심에 머물러 있고,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면 침묵한다. 그들은 휘두를 수 있으나 휘두르지 않고, 보여줄 수 있으나 보여주지 않으며, 말할 수 있으나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태도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삶을 바라보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 그들은 영향력이 드러날수록 사라진다는 것을 안다. 타인과 과도하게 얽힐수록 자기의 통제력이 무너진다는 것을 안다.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 자기 리듬의 일부가 흩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불필요하면 침묵하고, 연결되더라도 거리를 유지하며,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한 발짝 뒤에 선다. 그러나 그들이 고립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깊이 연결될 수 있다. 원한다면 누구든 불러낼 수 있고, 어디에서든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다만 굳이 그러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가장 고요한 힘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나를 흔들고, 말하게 하고, 반응하게 만들지만, 정말 강한 사람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휘두르지 않아도 중심이 되는 사람.


어쩌면 이것이 삶의 진짜 목적일지 모른다. 무엇을 가지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숨기느냐.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그것을 언제 하지 않느냐. 무엇을 아느냐보다 그것을 어디까지 감당하느냐.


이제는 조금 알겠다. 내가 진짜 힘을 가졌는지 아닌지는, 얼마나 자주 휘두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휘두르지 않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https://medium.com/@irenekim1b/the-quiet-strength-0e7d69a3d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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