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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Oct 27. 2024

다시 혼자가 되던 날

 20평 남짓한 카페, 내 앞에는 약혼녀 지혜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다. 이 곳에 들어온지 10분 쯤 되었을까? 우리는 아직까지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옆의 손님들은 저 사람들은 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 저러고 있을까 싶은지 방금 전부터 우리를 몰래 흘기고 있는데, 시끄러운 카페에서도 아무 말 없이 커피만 홀짝이는 우리는 아무래도 이목이 끌리는 존재인가보다.


 나는 그녀가 왜 말을 안 하는지 안다. 지난 주의 일에 대해 답을 해줘야 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돌아봐도 저번 주말 대전에서 있었던 일은 끔찍했다. 그런 사람들이 부모라는 게 부끄러워질 정도였으니까. 나라고 지난 일주일 간 아무 생각 없이 시간만 죽이다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지혜가 원하는 답을 할 자신이 없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나는 우리 부모를 막아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 후에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 것들은 지혜의 관점에서는 극복도 인내도 불가능한 압도적 폭력으로 느껴질 것이 분명했다. 억지로 밀어 붙인다면 나와의 결혼 생활은 지혜에게 있어 결국 사실상의 형무소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내게 내 부모를 내가 막아낼 힘이 있을까? 아니다.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법에 저촉되는 일도 아니고, 애초에 내게 경찰이나 사법기관처럼 이들을 단죄하거나 예방해낼 힘도 없었다. 제압하거나 막아낼 수 없다면 그 사람들이 설령 고문에 가까운 짓을 무작정 저지르더라도 막거나 없앨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모든 것이 철저하게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은 그녀를 보내주는 것 뿐이었다.


"미안해. 나는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엄마랑 아버지를 못 말릴 거 같다."

"못 말린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도저히 못 막겠으니 너는 그냥 당하라는 거야?"

"그게 아니야. 내가 그 사람들을 때려서 제압하거나, 아예 죽이지 않는 이상 멈출 수 없을 것 같다는 얘기야."

때린다거나, 죽인다는 표현에 지혜는 짐짓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파혼이라도 하자는 거야?"

"그래. 그게 너한테도 좋을 것 같아. 나랑 살면 너한테도 지옥일 거야."

지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쁜 새끼. 나한테 먼저 결혼하자며 들쑤신 건 너야. 너는 항상 도망칠 뿐이지. 해결이 안 되긴 뭐가 안 되는데? 변명하지마. 넌 그냥 나랑 네 부모 중에 어느 한 쪽을 고를 자신이 없는 거야."


 지혜를 만난 후 처음으로 그녀에게 욕을 들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지혜 말마따나 모든 일의 원흉인 그 못된 부모를 과감하게 잘라낼 자신까지는 없음을 절감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수 분은 되는 시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창 밖의 거리만 바라보았다.


 침묵을 깨고 지혜가 물었다.

"내가 무조건 1순위라며? 그게 거짓말이었던 거야? 다시 한 번 물을게. 그냥 우리 둘만 생각할 수는 없는 거야?"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그리고 모든 걸 떠나서 여전히 세상에서 그녀를 제일 사랑한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헤어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내가 비웃으며 보았던 상황들과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이가 없었다. 스스로 부끄러워 너를 사랑했고 항상 네가 1순위였다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고는 적당히 둘러대는 말로도 할 수가 없었다.


"안 될 것 같아. 여기까지 하자. 그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

지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 알겠어. 잘 살라는 말은 못하겠네. 그런데 그거 알아? 나는 네가 괜찮다면 다 받아들일 수 있었어. 이 상황은 전부 네가 자초한 거야. 잘 있어."

지혜는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가방을 들고 카페를 나갔다. 카페 내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아니 나를 쳐다보았다. 창피함을 느낄 만한 상황이지만 창피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이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이 밀려들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또 도망치고 만 것이다.


'어쩌다 나는 도망만 치는 사람이 되었나?'

'언제부터 우리집은 내 삶을 방해하는 족쇄가 되었을까?'

'내가 아닌 서윤이 누나였다면 달랐겠지?'


 지혜가 나간 후 찰나의 시간 동안 얼마 남지 않은 자존감마저 부숴버릴 듯이 공격하는 자조적인 생각들이 계속 엄습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 중 선택을 하면 되는 이 간단한 기로에서도 부모랍시고 끊어내지 못하는 내 자신의 나약함과, 책임으로부터 도피하였다는 명백한 사실이 나를 계속 고통스럽게 했다.


 그래, 이 관계를 끊은 건 결국 부모가 아닌 내 자신이다. 내 선택으로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함께 할 사람을 결정하고 지켜내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고 이 모든 책임은 내게 있음이 분명하다. 스스로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졌다. 나라는 인간은 깡도 의지도 없이 살아갈 뿐이고 내 것을 빼앗아가도 잠깐 짖을 뿐 금세 꼬리를 내리는 하룻강아지, 가감 없이 딱 그 정도의 비루하고 시시한 존재였다. 자기 삶도 오롯이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에게 결혼할 자격이 있을 리가 있을까?


 창 밖에서는 요즘 뉴스만 틀면 나오는 대통령의 국정농단 문제로 일어난 시위가 여전한지 확성기로 조악하게 커진 누군가의 목소리가 귀를 괴롭히고, 그 소리를 따라 끊임 없이 인파가 이어져 지나간다. 나는 억지로나마 카페 안의 푹신한 빈백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스트레스로 인한 깨질듯한 두통도 조금은 가시는 듯하다. 그리고 조금씩 진정되는 감정을 확실하게 억누르려 노력해본다. 대체 어떻게 자랐길래 나는 이리도 무책임한 인간이 되었나? 모든 것이 시작된 내 첫 기억부터 되새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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