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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Oct 27. 2024

두 번의 신고

 과학고 입시에 떨어지고 나는 집 근처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쯤부터 키가 급격히 크기 시작하더니 이 때 쯤 나는 몸도 꽤 다부지게 변하고, 키도 180cm를 넘겼다. 사실 아버지와 엄마가 모두 키가 작지 않았고, 누나들도 키가 큰 편이었기에 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이는 매우 기쁜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저번에 현도한테 맞을 때, 어린 애들은 오히려 어른보다 덩치나, 힘과 같은 원초적인 요소로 서열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불어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한 아이가 그림, 글, 책 같은 것을 탐닉하며 내향적인 취미까지 가지고 있으면 먹잇감으로서 더 할 나위 없는 금상첨화의 조건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양자에 모두 해당하니 얼마나 군침이 돌았겠는가. 그래서 적어도 이 둘 중 하나는 해결이 되었으면 했는데, 자연스레 해결이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는 착하고 편견 없는 친구들을 만나 기실 아무래도 좋은 얘기였지만, 고등학교 때 새로 만날 친구들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꼭 키가 커야만 했다.


 노력으로 얻은 것은 아니지만 키가 커진 보람은 당연히 있었다. 실제로는 벌레 하나 못 죽이는 성격임에도 내 덩치를 보고 다른 애들이 나를 얕잡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첫 학기 중간고사가 끝나니 성적이 나쁘지 않게 나오고 나니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체 공부를 조금 할 줄 아는 게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지만, 수능과 대학 입시만을 바라 보고 달려가는 고등학교 생활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게 꽤 멋지게 보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이번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중학교 때도 성적이 오르면 선생님들과 애들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슬프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또래 집단 내부에서든 선생님으로부터든 여전히 공부 실력으로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것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내겐 좋은 일이었다. 나는 적어도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무시 당하지 않는다고 꼭 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쉬는 시간에 뒷 자리에 모여 애들끼리 태블릿PC로 무언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보고 있길래 다가가서 물어봤다.


"이야~ 미쳤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거야?"

"어, 창수 왔구나. 너도 같이 볼래? 이거 완전 개미침."

태블릿 PC에서는 소위 말하는 야동, 포르노가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난생 처음보는 살색의 향연에 조금 역한 마음이 들었다. 학교에서 이런 것을 대놓고 본다고? 미친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학교에서 이런 걸 봐도 돼?"

"아, 뭐 소리도 껐는데 어때. 그리고 이런 거 안 보는 놈이 어딨냐? 넌 어떤 배우 좋아해?"

당장 같은 공간에 여자애들이 십수명이었다. 사물함에서 물건 꺼내러 지나가기만 해도 보일 것 같은 각도에서 그들은 포르노를 계속 시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훈이라는 애가 갑자기 나지막이 말했다.

"이야... 역시 백마가 죽여주네."

그 중 한 명인 영규라는 애가 짝 소리를 내며 태훈이의 등을 쳤다.

"미친 놈아. 들리겠다. 조용히 봐."

"크크, 씨발. 미안. 아, 존나 꼴리네."


 그 애들은 쉬는 시간 내내 위험한 위치에서 계속 영상을 봤다. 놀라운 것은 그 아이들이 평소에는 딱히 모나거나 남을 괴롭히는, 그런 성격의 아이들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명백히 저건 범죄행위이다. 평소에는 별로 이상행동을 보이는 녀석들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 친구들에게는 저게 범죄행위라는 자각이 없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공공장소에서 포르노를 본 것인지...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약 2개월 후 여름 방학 전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었다. 평소와 달리 교복을 입지 않고 사복으로 등교해서 전세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출발 준비를 하는데, 출발 전 번호 순으로 출석 체크를 하고 있었다. 태훈이는 박씨라서 나랑 성이 같아 내 옆 번호였고, 나의 오른쪽에 서있던 태훈이가 갑자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야, 저기 정윤경 봐봐."

"윤경이? 왜? 뭘 보라는 건데?"

"가슴 진짜 존나 크지 않냐? 개오진다."

"그런 걸 나한테 왜 물어봐..."

"아, 원래 우리 반에서 임정화가 제일 큰 줄 알았는데 오늘 진짜 인정. 체험학습 맨날 하면 좋겠다."

"태훈아. 제발 그런 건 좀 나한테 얘기 하지마."

"아니, 뭘 그렇게 뻗대냐? 정윤경이 너 좋아한다던데? 너 개부럽다, 진짜. 복 받은 놈."

"나는 그런 거 별로 관심 없어."

"그런 거? 씨발, 너 게이냐? 여자 싫다는 놈 처음 보네."

"됐다. 우리 번호 부르신다. 앞에 봐."


 내가 적당히 그런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아니 솔직히 말해서 확실한 성희롱인 그 음담패설을 혐오한다는 티를 많이 내었는데도 태훈이는 마치 내가 남자면 그런 대화를 싫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나한테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태훈이를 비롯하여 이 놈들은 마치 섹스를 못해서 환장한 동물 같았다. 인간이 아니라 동물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여자고, 이 녀석들 맘에 들었으면 나는 이 놈들 입방아에 올라 몇 번이고 유린당했겠지. 이 놈들이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나한테 이런 소재를 농담 거리로 계속 들이대는 것을 보면, 놀랍게도 남자애들 사이에서 이 따위 것들이 대화 소재로서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합리적 의심이 생겼다. 모든 남자애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반 기준으로는 예외 사례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기에 당시에는 정말 모든 남자들이 성적 충동에 지배 받는 동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남자애들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게 고등학교 때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갑작스레 건네는 성적인 대화는 내가 남자애들의 또래 집단에 제대로 못끼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정말 최악은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1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있던 날이었다. 영어 선생님이 감독으로 들어오셨는데, 젊은 여성분이셔서 원래도 남자애들은 그 선생님을 매우 좋아했다. 선생님들은 시험 대형으로 펼쳐진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시며 감독하시다가, 중간 중간 의자에 앉아 짬을 내어 교탁에서 담당 학년의 행정 업무를 보셨는데, 그 날은 우리 반에서 가장 양아치로 유명했던 병천이가 결국 일을 냈다. 선생님은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스커트를 입고 오셨는데, 교탁 밑에 휴대폰을 녹화 기능을 켜서 몰래 숨겨둔 것이다. 선생님의 치맛속을 보려고 말이다. 해당 시험이 끝나자 병천이는 바로 핸드폰을 수거하러 갔다.


"아, 씨발. 제대로 안 찍혔어."

태훈이랑 영규를 포함해 많은 남자애들이 뛰어갔다.

"야야, 나도 좀 보자."

"아, 밀지 좀 마라."

"아이씨, 개아깝네. 영어 팬티 색깔 개궁금했는데."

삽시간에 영어 선생님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성희롱이 오고 갔다. 이전에도 문제였지만, 이제는 저 녀석들을 신고해야 겠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런데 나는 두려웠다. 저 녀석들이 어떻게 보복할까 너무 무서웠다. 어쩔 줄 모르고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저 사건이 일어난 순간부터 그들의 행동은 선을 넘은 문제가 되었음이 분명했다.


내가 망설이던 그 때, 우리 반 반장이었던 정화가 일어났다.

"야, 너희 뭐하는 거야? 지금 뭘 보고 있는 거냐고?"

병천이가 대답했다.

"꺼져, 임정화. 네가 알 바 아니야."

"너네 지금 선생님 치맛속 들여다 본 거잖아. 그걸 어떻게 우리들 앞에서 대놓고 하고 있어? 제정신이니?"

"뭔 개소리야? 얘들아 우리가 지금 영어 치맛속 보고 있었냐?"

다른 남자애들이 거들었다.

"아, 아니?"

"그럼 뭘 봤다는 거야? 이리 줘봐. 아니면 보여달라고."

"됐거든? 네가 알 바 아니니까 신경 끄세요."

정화의 친한 친구인 연지도 와서 언성을 높이며 추궁했다.

"너희 평소에도 쓰레기 같은 말하면서 우리들 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 모를 줄 알아? 그런데 너희 지금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어!"

"뭐래, 누가 너희한테 관심이나 준 적 있대? 곽연지 너도 그렇고 우리 반 여자들 다 개못생겼는데. 우리 지금 만화보고 있거든?"

"누가 시험끝나고 갑자기 교탁에서 휴대폰 꺼내서 만화를 봐? 이리 안 줘?"

연지가 휴대폰을 낚아채려 달라들었다. 하지만 병천이가 바로 휴대폰을 잡은 손을 들어서 피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연지의 손은 벽처럼 두껍게 쌓인 병천이 근처의 남자애들로 인해 휴대폰까지 닿을 리가 없었다.

"빨리 달라고! 만화면 그럴 이유가 없을 거 아니야!"

"저리 가. 내 핸드폰인데 내가 왜 줘!"

이 상황을 지켜보던 정화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바로 교무실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태훈이랑 영규를 포함해 병천이에게 편승했던 남자애들이 뛰어나가 정화한테 애원하기 시작했다.

"야, 임정화. 한 번만 봐줘. 안 찍혀서 보지도 못했어. 그리고 저건 다 강병천 혼자서 한 거야."

"너희도 같이 보는 걸 봤는데, 뭘 강병천 혼자서 한 거라고 뒤집어 씌우고 있어? 너네도 다 공범이야."

"찍은 놈이랑 우리랑 같냐? 병천이만 얘기하고 우리는 좀 봐주라. 응? 나 대학교 가야 돼."

"너희들은 용서가 안 돼. 저리 비켜."

이미 복도에서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는 시점에서 1학년 전체가 다 쳐다보기 시작했고, 전세는 역전이 되었다. 그 기세로 정화는 남자애들을 뚫고 교무실에 가서 모든 사실을 말했고, 우리 반은 그 날 초토화가 되었다. 들은 바로는 영어선생님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무너지셨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해서 우리 반은 잔여 시험이 모두 연기되었고,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병천이를 비롯해 가담한 남자애들 대부분이 회부되었고, 여자애들과 가담하지 않은 나머지 남자애들은 증언을 위해 수시로 교무실과 징계위원회를 들락거리게 되었다.


 신고의 결과는 시원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학교 이미지가 실추된다며 해당 사건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영어 선생님을 압박하였고, 공식적인 기록 없이 마무리 하기 위해 병천이 부모와 영어 선생님 간의 화의를 도모하였다. 징계위원회가 열렸음에도 어느 순간 흐지부지되며 이도저도 아닌 마무리가 되었고, 결국 병천이는 자발적인 전학을 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정범인 병천이가 그럴진대 종범인 나머지 남자애들은 어땠겠는가? 그 녀석들은 나중에 적당히 학교 생활을 끝마치고 사회로 나가게 되었다. 적어도 학교 내에서는 이미 소문이 다 퍼져 학부모들도 아는 사실이었는데, 엄마를 통해 전해듣기로는 교장선생님은 오히려 치마를 짧게 입은 영어 선생님을 탓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랑 아버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혈기왕성한 남자 아이들을 상대로 그런 옷을 입는 교사한테도 문제가 있다고 양비론적인 입장을 펼쳤다. 아니, 오히려 성인인 영어 선생님 쪽을 더 책망하는 것 같았다. 요즘이라면 이 사건은 이렇게 처리가 될 수가 없고, 이렇게 처리가 되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 일이 처리가 될 수 있는 시대였고, 그렇게 일이 실제로 처리가 되었다.


 내가 가장 후회되는 것은, 정화랑 연지가 나설 때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병천이를 위시한 남자애들의 행동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것이 아니기에 그 때의 결정은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서 내가 내 의지로 한 것이 된다. 나는 침묵했고, 영어 선생님의 구명에 내가 기여한 바는 정화와 연지가 나서고서야 증인으로 함께 나선 나머지 반 아이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물론 내가 나섰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럼에도 나설지 말지 고민하던 그 때가 내가 지금의 회피적이고 비루한 성향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너무 후회가 된다. 어차피 진짜 친구가 될 아이들도 아닌 걔네들이랑 멀어지는 게 뭐가 그리 두려웠기에 나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공포에 굴종했을까. 이 때부터 학습된 무기력은 나를 지금의 도망만 치는 못난 사람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그 사건 이후의 학교 생활은 다를 게 없었다. 2학년이 되자 그 때 일은 어느 새 빠르게 잊혀졌고, 새로 바뀐 반에서 적응하니 시간은 빠르게 갔다. 그리고 2학년 때부터는 사실상 수능을 준비하기 위한 전초전이 시작되어 성적을 막론하고 다들 자기 인생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짜내는 시간이었기에 별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종종 여백에 낙서를 하는 것을 제외하면 그렇게 좋아하는 그림도 따로 그리지 않았다. 뭔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들 공부를 하고, 선생님도 부모님도 이 때 인생이 결정된다고 윽박 질렀다. 논리적 근거는 없었지만 그 단호함에 설득되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학교에 가서, 책에 코를 박다가 야심한 새벽에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 다음에는 씻고 자고 일어나고...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었고 3학년, 심지어 수능날까지 그렇게 기계적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흔들림 없이 공부했으니 성적도 당연히 잘 나왔다.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는 내가 최고였다. 자부심 같은 건 없었다. 좋아서 한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수능이 끝난 날 가채점을 하고 선생님께 전화로 성적을 말씀 드렸더니 매우 기뻐하셨다. 심지어 다음날은 교감선생님한테도 집에 전화가 왔다. 부모님은 매우 기뻐하셨다. 특히 아버지는 내 딴에서는 잘 본 점수긴 하지만 그럼에도 서윤이 누나보다는 한참 점수가 낮은데, 왠지 모르게 내 수능 성적에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집이든 학교에서든 내가 가는 곳에 한동안은 웃음꽃만 피었다. 그런데 이 웃음꽃은 오래 가지는 않았다. 당시 집에는 누나들이 학교나 직장 때문에 독립해서 나가고 부모님과 나만 남아 있었는데, 이 웃음꽃이 멎어버린 것은 아버지께 내가 어느 학과에 갈지 말씀 드리고 나서부터이다.


"그래, 창수야. 고생했는데 이제 진지한 얘기를 해보자꾸나. 어느 학교랑 학과에 갈지는 정했니?"

"J대 서양화과에 가려고요. 안 되면 나군의 B대에 있는 같은 학과에 원서를 넣을 생각이에요."

"J대? 지금 네 성적에 J대를 간다고? 거긴 점수가 남아도 너무 남아. 그리고 무슨 서양화과? 너는 예체능도 아닌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J대는 실기가 없이 수능 성적으로만 선발하는 전형이 있거든요. B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문제 없을 거예요."

"기가 차는 구나. 세상 어느 학교 전교 1등이 J대나 B대를 가? 거긴 반에서 3등 정도나 하는 애들도 가는 곳이야."

"제가 그림 좋아하시는 거 아시잖아요. 저는 앞으로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제 인생의 목적이 아니에요, 아버지."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그런 곳 보낼 거면 너 지원도 안 해줬어. 그리고 거길 입학하겠다면 등록금이든 뭐든 지원도 안 해줄 거다. 너도 아빠랑 서윤이처럼 지내고 싶은 것이냐? 돈을 많이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니, 이렇게 철이 없을 수가! 내가 널 잘못 키웠구나. 돈이 없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안 돼."


 생각해보면 돈에 대한 관점 만큼은 아버지와 서윤이 누나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맞는 말이기는 하다. 만약 내가 저 때 서양화과에 갔으면 내 생각 이상으로 곤궁해져 내 선택을 후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그 때도 그걸 완전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의 지원이 끊어지는 게 싫었다. 하향지원이니 장학금이야 받겠지만, 내게는 아버지가 지원해주는 따뜻한 집과 용돈이 필요했다. 서윤이 누나처럼 바쁘게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할 자신까지는 없었다. 지난 수험생활로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 더 이상 그 만큼 열심히 살 자신이 없었다.


"그럼 A대 미술교육과랑 C대 미술교육과는 어떠세요? 그림 쪽으로 잘 안 되었을 때, 교사가 되어서 충분히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여긴 실기가 있긴 한데, 학원 가서 급하게 배워서라도 한 번 도전해볼게요."

"교사는 남자가 할 직업이 아니야. 여자한테 좋은 직업이지. 너는 그런 점수를 받아 놓고 어찌 계속 그런 수준의 학과들을 얘기하는 것이냐? 아빠가 생각했을 때는 학교는 무조건 A대 경영학과나, E대 경제학과가 좋겠다. 나중에 고시를 볼 때도 거기서 배우는 상경계열 과목의 지식이 도움이 되고, 아니어도 취업할 때도 확실히 유리해. 무엇보다 아빠가 살아보니 고시 출신은 나중에 뭘 해도 밑지는 것이 없단다. 일단 젊을 때 고시에 도전해보고 안 되더라도 그 정도 학교를 나오면 늦은 나이에 취업을 해도 잘 살 수 있고, 이 쪽이 모든 면에서 최고니 아빠 말을 들으면 후회 안 할 거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든, 그림에 최소한 한 발이라도 걸친 학과를 가야 해요. 이건 양보할 수 없어요."


 사실 그림이 좋긴 했지만, 그 때까지는 그걸로 꼭 밥을 벌어먹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원서를 어디 쓸지에 대해서도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답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와 본격적으로 얘기하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그림을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신념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줏대 없이 살던 내가 처음으로 고집을 부린 순간이었다.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야지. 입 아프게 더 말하게 하지 말 거라. 서희는 아빠 말 듣고 경영학과 가서 얼마나 잘 다니고 있어? 아빠 회사 통해서 해외 인턴십도 보내주고... 아빠가 말해준 길로만 가면 비단길이 깔려 있는데 왜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 게냐? 정신 차리거라."

"아버지, 제가 공부를 한 건 그냥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어요. 나중에 대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제가 어떤 학과에 가고 싶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수능 점수나 내신이 부족해서 못 갈 일은 없도록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말한 점수가 아깝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어요.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가는 게 아니라 제가 원하는 곳에 가려고 넉넉하게 따두면 좋은 옵션 같은 존재가 점수니까요. 평생 아버지가 하라는 걸 제가 거부한 적이 없잖아요. 이번 한 번만 제 말을 들어주세요. 제발요, 아버지. 네?"

"점수가 아까울 게 뭐 있냐는 게 아주 서윤이랑 똑같구나. 나는 네가 예전부터 엄마 설거지 도와주고, 청소 도와줄 때부터 갸륵하면서도 남자애가 왜 저렇게 주방에 들락거리는지 내심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어. 네 엄마가 니가 자주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도 아차 싶었다. 나중에 계집애들이나 하는 환쟁이 하겠다고 미대 보내달라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내 예상이 틀리길 바랐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아버지에게 저자세로 부탁하듯이 말을 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계집애처럼 그림이나 그린다는 비아냥이니 부아가 치밀었다. 평생 절대로 대들지 못할 것 같던 아버지임에도 그를 향한 분노가 누를 수 없이 차올랐다.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지금 보니까 서윤이 누나가 맞았네요. 아버지가 입에 달고 사는 남 깔보는 말투부터 해서 아버지라는 인간한테 넌덜머리가 납니다. 등록금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으니까, 이제 제가 어디를 가든지 신경 꺼주시면 좋겠어요. 이제 저도 성인인데 아버지가 뭐 어쩌시게요? 그리고 아버지한테 저는 힘들게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제가 어떤 짓을 하든 아버지 성격상 어차피 저에게 잘해주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요? 무슨 말씀을 하시든 제가 아버지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죠.”


 내 스스로도 내 입을 통제할 수 없었다. 말하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제 아버지가 어떻게 반응할까? 평생 주리를 틀어도 아무 말 없던 먹잇감이 처음으로 이빨을 드러냈을 때, 포식자는 어떤 행동을 취할까? 앞에 일어날 일이 두려워졌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고, 잠시 아버지 눈을 피한 뒤 다시 아버지 눈을 응시하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갑자기 아버지의 주먹이 날아왔다. 주먹을 맞은 나는 의자와 함께 고꾸라지며 뒤로 넘어졌다. 입가에 액체가 흘러 만져보니 입술이 터져서 피가 줄줄 나고 있었다.


"이 쌍놈의 새끼가, 어디서 가장한테 말 버릇이 그 따위야. 너... 너... 이 아빠가 뭐라고 생각하길래 그 딴 소리를 하고 앉아 있어? 이 호로새끼가 20년을 키워놨더니 이런 불효막심한 짓거리를 해? 내가 이런 놈을 뼈가 빠지게 일해서 학교를 보내고 밥을 쳐먹이고 있었네. 아이고, 내 팔자야. 너는 더 맞아야 돼. 이리 와!"

엄마가 화들짝 놀라서 아버지를 감싸 안으며 말렸다.

"당신, 그만해요. 창수도 흥분해서 그런 거 같으니까 당신이 참아요. 응? 이러다 애 잡겠어."

아버지가 엄마를 방바닥에 던지듯이 밀어버렸다. 아버지가 엄마를 때린 것은 처음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주체를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더니 골프채를 가지고 거실로 나왔다.

"너 이리 엎드려. 내가 너를 키우면서 단 한 번도 때린 적이 없다만, 너는 오늘 맞아야 돼. 안 맞으면 넌 정신을 못 차릴 거야. 그리고 나한테 너는 맞지 않으면 안 될 죄를 지었어. 빨리 와서 대!"

"창수야! 얼른 아버지한테 잘못했다고 빌어. 당신 참아요. 이러다 사고 나겠어. 가족끼리 지금 이게 무슨 일이람!"


 당시 나는 내가 맞은 것보다는 엄마를 밀치는 아버지의 행동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이제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저 상태의 아버지를 제압하려면 물리력으로 해야 될 것이고, 그러다가는 진짜로 엄마가 말한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그래, 일단 내가 집을 나가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나가면 분노한 아버지한테 엄마가 맞을까봐 두려웠다. 잠시 동안 깊게 고민한 끝에, 나는 일단 짐을 챙겨서 나오며 밖에서 112에 아버지를 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서는 내 등에 대고 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새끼 어디가? 이리 안 와! 이제 아빠가 우스운 게냐? 너 그대로 나가면 이제 아빠랑 끝이야!"

"여보, 여보, 여보... 그만해요. 그만. 제발!"

"이거 안 놔!"


문을 닫고 집을 나서며 바로 112를 눌러서 아버지를 신고했다. 경찰관에게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위치를 말했고, 나는 그 위치에 있을 수 없으니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만 전했다. 끊기 전에 신고자의 인적사항이 필요하다고 하여, 알려준 후 전화를 끊었다. 이제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했더니 한 곳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서울에서 자취하는 서희 누나의 집, 그곳 뿐이었다. 누나한테 전화를 했다.


"누나, 나 누나 집에 가도 될까?"

"갑자기? 무슨 일인데?"

"아버지랑 너무 크게 다투었어. 그리고 누나... 내가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했어."

"뭐? 무슨 일로 신고했다는 거야, 대체?"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셨어. 내가 미술 쪽 학과를 가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안 된다고 하셨고, 내가 아버지한테 내 맘대로 할 거니까 신경을 끄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미친듯이 화를 내기 시작했어. 그러다 엄마가 말리다가 아버지한테 밀쳐졌어. 아버지랑 엄마랑 혼자 두면 아버지가 무슨 짓을 할 지 몰라서 일단 신고할 수밖에 없었어."

"하... 일단 내 말 잘들어. 너 어디야 지금?"

"수원역으로 가고 있어."

"그럼, 일단 올라와. 그리고 혜화역에서 내리면 돼. 저번에 누나 학교 와봐서 잘 알지?"

"응, 고마워. 누나."

"그리고 너 오면 내가 바로 수원에 내려갈테니까 너는 누나 집에 있어 일단은."

"뭐? 누나가 거길 왜 가?"

"그럼 저렇게 엄마를 둘 거야? 나라도 내려 가야지. 큰 언니한테는 전화했어?"

"아니, 누나 생각 밖에 안 했는데 당장은."

"큰 언니한테는 내가 전화할게. 넌 일단 누나 집에서 자고, 냉장고에 반찬이랑 밥 있으니까 꺼내 먹어. 카드 놓고 갈 테니까 그걸로 뭐 시켜먹어도 되고. 좀 정리되면 내가 전화해줄테니까 일단 좀 피해 있어."

"미안해, 누나. 나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고마워."

"그래, 일단 끊자. 얼른 와."


 누나는 혜화역에서 나를 만나 잠깐 달래주고, 곧바로 수원으로 내려갔다. 금방 서연이 누나한테도 연락이 왔다. 아마도 서희 누나랑 같이 수원에 내려간 것 같았다. 다음 날 서희 누나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경찰들도 사건이 일단락 되니까 그냥 가정 다툼이라고 대충 내사를 종결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것에 대해서 크게 앙심을 품은 것 같았다. 어떻게 자기 아비를 경찰에 신고하냐며 계속 분기탱천해 있어, 엄마와 누나들이 며칠 간 달래고 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아마 이 일은 아버지와 인연을 끊지 않는 이상 아버지가 내게 평생 무기로 삼으실 게 분명했다.


 서희 누나가 남기고 간 돈으로 치킨을 먹으며 생각했다. 바로 지금이 서윤이 누나처럼 될 것인지, 아니면 다시 돌아가서 평소처럼 살아갈 것인지의 갈림길이라고 말이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니 아버지가 주는 돈, 그래. 그런 것은 없어도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를 못 보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20년을 부대끼며 살았더니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여전히 내게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싫었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좋았다. 이상한 감정이었다. 난 아버지를 끊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돌아오라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누나 집에서 열흘을 못 채우고 돌아갔다.


 다음 주 평일 점심 쯤 도착해서 엄마랑 먼저 대화를 했다. 엄마는 아버지도 이번 일로 느낀 게 많으시고, 여전히 널 사랑하시니 다시 한 번 대화를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어차피 내 말을 안 들어주실 거 같은데,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 동안 엄마가 설득한 게 있으니, 아버지도 어느 정도 납득하실 거라고 하셨다. 옆에서 서연이, 서희 누나도 거들었다. 일단 한 번 더 얘기는 해보라고 말이다. 이런 제안과 별개로 나 역시도 아버지를 위한 절충안을 나름대로 마련해두고 있었다. 아버지와 연을 끊을 것이 아니면 나도 생존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저녁이 되어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예... 들어오셨어요?"

"그래, 언제 집에 왔니."

"오늘 점심 쯤 왔어요."

"알았다. 일단 밥이나 먹자."


아버지는 안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으신 후 나오셨고, 오랜만에 서윤이 누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모였다. 누나들과 엄마는 식탁 맞은 편 TV를 보며 자질구레한 얘기들을 나누었지만, 기본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이겨내기는 어려웠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많은 말이 오가지는 않았다. 식사가 다 끝날 때 쯤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건네셨다.


"창수야. 그래, 생각은 좀 해보았니?"

"네, 아버지. 그림은 그래도 그려야 할 거 같아요. 죄송해요.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가 말하신 것처럼 고시까지는 제가 생각을 못하겠지만 회사에 가서도 유용한 전공을 고르려고 해요."

"그게 무엇이냐?"

"산업디자인학과요. 마찬가지로 실기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어요. P전자 같은 곳도 디자인 부서가 중요성이 높아지는 걸 보면, 그림을 그리면서도 취업문이 앞으로 충분히 넓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학은?"

"A대랑 E대 두 군데로 지원하려고요."

"알았다. 요즘 디자인이 뜬다고는 하더라. 그리고 며칠 동안 네 엄마랑 서연이, 서희가 네가 참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더구나. 아빠도 생각을 좀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실기가 필요해도 지원해줄테니 다른 대학 중에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한 번 해보거라."

"그런데, A대랑 E대가 학교 간판은 제일 좋아요. 아버지가 A대랑 E대를 추천하셔서 저도 고민 끝에 말씀 드린 거예요."

"저번 주에 TV에서 입시 전문가가 하는 강연을 보니, 우리나라도 이제 대학 간판보다는 어떤 과가 그 대학에서 유명한지가 중요해질 거 같더라. 그리고 그 과가 국제적인 수준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지가 중요하겠지. 게다가 그 사람이 앞으로 디자인이 기업에서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전공이 될 것이라고 하더군. 방금 네가 말한 것처럼 말이다. 서울의 주요 대학 수준이면 어딜 가도 괜찮을 거 같으니 간판은 너무 신경 쓰지 말 거라."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아버지는 내가 앞에서 말한 것을 근거로 삼기보다는 TV에 나온 전문가가 말한 것을 본인을 설득하는 근거로 우선시했음을 말씀하신 것이니까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전공을 설득하는데 내 말을 이렇게까지 안 들어주시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아버지 나름의 납득이 된다면 그 누구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게 내 마음이었고 이렇게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예. 아버지.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할게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서 아빠의 투자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네 몫이야. 서희는 내가 하라는대로 했으니 내가 책임을 지겠지만, 너는 네 길을 간 것이니 네가 책임져야 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중간에 절대 포기 안 하고 열심히 할게요."

서희 누나가 끼어들었다.

"아빠, 창수 잘할 거예요. 창수가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리는 게 아니라, 한다면 하는 애잖아요. 걱정 마셔요."

"그러길 바라야지. 그런데 창수는 지 아비는 쉽게 포기하는 것 같더라. 경찰에 신고도 하고 말이야."

분위기가 싸해졌다. 아버지의 농담에는 날카로운 뼈가 있었다. 애써 풀리는 것 같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솔직히 이제와서 다시 저 얘기를 꺼내다니 진짜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연이 누나가 말했다.

"에이, 아빠. 왜 그러세요. 창수 아직 어려요. 실수한 거죠. 아빠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 한 번만 해줘요, 네?"

누나가 아양을 떨며 아버지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엄마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요. 당신, 창수가 평소에 당신 말을 얼마나 잘 듣는데 그래요. 아까도 말했지만 나랑 우리 서희, 서윤이가 보증한다니까요. 창수는?"


 누나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역겨웠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절대적 기준에서 봤을 때 내가 아버지한테 잘못을 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집이 원래 모양새로 다시 굴러가려면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아버지를 풀어주면서 저런 아양을 떠는 것이 필요했고, 어리숙한 나 대신에 우리집의 애꿎은 여자들이 갖은 애교를 떨고 있었다. 누나들도 원해서 하는 게 아닐텐데, 너무 미안했다. 나로 인해서 누나들이 저런 고강도의 정신노동을 하고 있다니, 이 쯤 되니 아버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누나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이 상황을 빨리 끝내려면 무조건 내가 조아리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의 사과용 문장을 머릿속에서 작성하고 바로 완결성 있게 내뱉었다.


"아버지, 저번 주 일은 정말로 죄송해요. 제가 전적으로 잘못했습니다. 순간의 그릇된 판단으로 아버지께 큰 상처를 안겨 드렸어요. 이 상처는 제가 남은 인생을 살면서 평생 동안 씻어 드릴게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통 크게 용서 한 번만 해주세요."

뱀을 만난 개구리처럼 배를 땅에 붙이고 철저한 약자로서 사과하는 모습이 아버지는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충분히 반성한 것 같구나. 이제 오늘 이 이야기는 다시 안 꺼내마. 그럼 원서 쓰고 나서 나한테 알려주거라. 나는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 자도록 하마."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셨고, 엄마가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하셨다.

"꾹 참고 사과 잘했어. 그렇게 하니까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시니. 앞으로 대학교 가면 종종 전화도 해 드리고 그래. 그럼 이번 일은 금방 잊혀질 거야."

"예. 알겠어요, 엄마. 그리고 누나들도... 나 때문에 고생했어. 미안해."


 팔자에도 없는 죄인이 되었지만 이렇게 아버지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한 것을 종종 무기로 꺼내셨지만, 그것은 내가 감내하기로 한 부분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갔다. 나는 아버지께 선언했던대로 A대와 E대의 산업디자인학과에 지원했고, 둘 다 합격을 했다. 둘 다 서울 북서쪽에 있어서 수원에서 통학하기에는 멀었고, 나는 자취방을 잡으며 A대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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