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학한 A대학교는 꽤 큰 학교였다. 부지 기준으로는 서울에서 아마 가장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워낙 학교가 크다보니 내 자취방에서 우리 학과 수업이 이루어지는 미술학관까지는 한 번 버스를 타고 나서도 한참 걸어야 했다. E대학은 상대적으로 학교가 작았는데, 그래서 그냥 그곳을 갈 걸 그랬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나는 디자인만 배우면 되었지 학교가 어딘지는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바꾸기에는 늦었고, 일단은 열심히 다닐 각오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산업디자인과는 디자인과 중에 그래도 남자가 있는 편이라고 들었지만, 막상 와보니 우리 과의 성비는 대략 1:9였다. 압도적인 여초사회였고, 그렇다보니 대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여자애들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가끔 연락이 와 우리 과 여자애들을 소개 좀 시켜달라는 요청이 오기도 했지만 애초에 내 성격이 그런 걸 주선할 성격도 아니고 고등학교 애들에게도 나는 별로 애정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연락을 조금씩 무시했다. 그런 식으로 한 학기를 연락을 무시하니 결국 고등학교 애들과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자연스레 과생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 입학 때도 사건이 하나 있긴 했다. 누나들의 입학식에는 가지도 않았던 할머니가 내 입학식에는 꼭 가야겠다며 떼를 쓰셔서 끝끝내 올라와 참관을 하시고 가셨다. 왜 하필 내 입학식일까, 고민을 해보았다. 그것을 알아내려면 할머니라는 사람에 대해 반추해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3형제인데,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막바지인 1938년에 태어나셨고, 본인 말씀에 따르면 그 때부터 가세가 기울어서 모든 것을 본인이 일구어내며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쇠락한 집안에서 적당히 정해준 남자인 할아버지와 결혼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평생 돈을 벌어오신 적 없이 술과 노름으로만 세월을 보내실 때 혼자서 삯바느질로 한복집을 운영하셨다. 당연히 벌이는 부족했지만 자식들 세 명이 모두 대학에 입학하도록 교육에 열을 쓰셨고, 그렇게 원하시는 우리나라 최고대학은 못갔지만 그래도 괜찮은 국립대에 자식 세 명을 모두 입학시킨 것에 대해서 엄청나게 자부심이 있는 분이었다.
이런 할머니에게 며느리란 내 잘난 자식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눈에 넣어도 아까운 내 자식이 '데리고 살아주는' 무능한 여자들로 보였나보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명절 때마다 자식 자랑과 본인 인생의 고난을 북한의 선전 방송처럼 반복하셨고, 어린 나이였지만 나 역시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집요하시다는 생각을 했었다. 항상 모든 며느리에게 내 귀한 아들이 너희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라는 말을 대놓고 하시는 우리 할머니의 행동은 당연히 집안의 대부분의 불화를 일으키는 씨앗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첫 번째로 터져나간 것이 바로 큰 어머니다. 아, 이제는 큰 아버지가 재혼 하셨으니 첫 번째 큰 어머니라는 표현이 정확하려나. 아무튼 큰 어머니는 친정 식구들로부터 귀하게 자란 고명딸이었고, 그 집에서는 큰 어머니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평소에도 못마땅했을 것이다. 큰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두 명이 있는데, 각각 나를 기준으로 세 살이 많고, 두 살이 어리다. 사촌형이 10살 때 이혼했으니, 총 결혼생활 기간이 겨우 10년을 넘는 수준일 것이다. 나는 사실 우리 할머니를 시어머니로 모시며 10년이면 어딜 가도 잘 버텼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촌 형과 동생에게 미안하지만, 큰 어머니는 할 만큼 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웃기는 점은 막상 이혼을 한다고 공식화가 되고 나니, 할머니가 이혼을 막겠다며 인천에 있는 큰 아버지집에 본인이 사는 충남 태안에서부터 버선발로 뛰어오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까운 자식이 드디어 정신차리고 본인의 수준에 맞지 않는 며느리를 쳐내겠다고 하는데, 왜 말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자기 자식에게 이혼남이라는 꼬리표가, 자기 손자에게 편부 가정이라는 또 다른 꼬리표가 붙는 것이 극도로 싫으셨던 것 같다. 허나 말린다고 말려질 일은 아니었다. 큰 어머니는 이혼을 선언하고 1년 내로 재산 분할부터 양육권까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가셨다. 큰 아버지는 양육권을 얻기 위해 재산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포기하셨다고 듣긴 했다. 아무튼 그리되니 이제 꼼짝없이 편부가정이 된 큰 아버지가 가여웠는지 할머니는 태안의 집을 세를 주고 큰 아버지 집에서 상주하기 시작했다. 사촌 형과 사촌 동생은 그래서 다음 큰 어머니가 들어오기 전인 한 5년 정도를 할머니와 살았다. 그래서 아직도 큰 아버지는 명절에 사촌 형과 동생에게 할머니가 너희를 키워주셨으니 너희는 더더욱 할머니에게 효도를 해야한다고 말하시고는 한다. 내 관점에서는 솔직히 큰 아버지, 큰 어머니가 결정한 이혼의 철저한 피해자인 두 형제가 왜 큰 아버지가 초래한 상황으로 인해 벌어진 할머니로부터의 양육에 대해서 빚을 갚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둘은 그 말이 멍에가 되었는지 여전히 태안에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오가며 할머니를 챙긴다. 심지어 최근 사촌 형은 직장도 할머니로부터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잡아서, 이제 고령이라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은 할머니에게 위급상황 때 언제든 뛰어갈 수 있게 자신의 생활반경을 할머니에게 맞추어 두었다고 들었다. 내게는 이것이 아버지의 죄를 자식이 갚는 괴상한 광경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가 얼마나 그 둘을 키울 때 잘해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큰 어머니가 이혼했을 때, 가장 큰 이유는 며느리 중에서도 가장 큰 효도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인식이 있는 할머니는 장자의 며느리인 큰 며느리에 대해서는 유독 심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큰 어머니가 이혼하고 나서 다음 타겟은 우리 엄마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종종 엄마가 주말에도 전화를 받으면 할머니에게 부리나케 뛰어나가는 것을 본다. 이는 큰 아버지가 재혼을 하고 나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우리 엄마는 큰 며느리가 부재한 5년 간 할머니의 5분 대기조로서 멋지게 거듭이 났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경로의존성이라는 것이 있고, 시키던 사람에게 시키면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말하지 않고 적당히 말을 하더라도 그 동안 시켰던 일을 회고하여 알아서 척척 원하는 것을 가져오니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그 순간부터 우리 엄마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집안에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할머니의 요구는 내가 나중에 취업을 하고 나서 부장님에게 맞추는 것보다도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는 점이다. 실수를 해서는 안 되며, 잘 해도 그것은 칭찬의 대상이 아니라 본인이 할 일을 적절히 수행한 것으로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혹시라도 며느리가 자신의 요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는 그 어떤 핑계도 용인되지 않았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할머니는 그것을 마음에 두고 그러면 네가 미리 했어야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지 등 여러 이유를 대가며 엄마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런 것을 볼 때 우리 할머니가 직장 상사였다면 삽시간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사람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가족이 아닌 회사 사람에게도 저렇게는 못할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여자를 들볶는데 도가 튼 여자, 그야말로 ‘여자 죽이는 여자'이다.
엄마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나도 아버지께 대들지 못하는 멍청이지만, 장담할 수는 없더라도 나조차도 엄마가 당하는 만큼 당했으면 다시 한 번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나보다도 수동적이고 회피적인 사람이다. 이 일을 그럼 엄마가 잘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딱 봐도 엄마는 이 일을 참아낼 수 있는 인내력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참아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 근거로, 엄마는 저런 일이 있을 때 마다 우리 남매에게 본인의 힘듦을 피력했다. 어떤 날은 엄마랑 우리 남매까지 다섯 명이서 배를 깎아 먹고 있는데,
"너희 할머니는 왜 저런다니? 엄마가 저번에 할머니가 예전에 가져다 준 청국장이 맛있다고 해서 갖다 드렸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왜 냄새가 나는 이런 걸 맘대로 가져오고 난리냐고 화를 내시는 거야. 내가 미쳐. 정말."
내가 말했다.
"본인이 저번에 맛있었다고 한 걸 까먹으신 거 아니야?"
"무슨, 심지어 저번에 전화로 혹시 또 갖다줄 수 있냐고 그랬어. 그래서 엄마가 예전 회사 선배한테 힘들게 전화해서 다시 받아다 준 건데 어이가 없어, 진짜."
서희 누나가 말했다.
"할머니가 잘못했네. 그럼 왜 갖다달라고 하셔놓고 이러시냐고, 당황스럽다고 말씀을 드리지 그랬어."
"너희 할머니 성격에 그렇게 말하면 납득을 하시겠니? 그냥 내가 참아야지. 어휴..."
서윤이 누나가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
"보면 엄마가 더 문제야. 그 딴 취급 당하는데 왜 말을 안 해? 납득을 안 하면 어쩔 건데? 납득 안 하면 사람 죽여도 돼? 죄를 지었으면 본인이 알아먹든 못 알아먹든 얘기를 해줘야지. 그리고 왜 지 아들 냅두고 엄마한테 효도하라고 난리야?"
"박서윤! 너 어른한테 그게 무슨 말 버릇이야. 할머니한테 '지'가 뭐야? 그리고 뭐 사람을 죽여? 얘는 진짜 나중에 어떻게 되려고 말뽄새가 이렇게 되어버린거야?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니?"
"말꼬투리 잡지마. 진짜 사람을 죽인다는 게 아니라 비유잖아, 비유. 그리고 할머니가 어디 '지'라는 소리 안 들을 자격이 있는 어른씩이나 되시나? 엄마를 그렇게 대우했잖아. 맨날 할머니댁 가면 뭐해. 아빠는 반대로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동안 외가에 간 게 손에 꼽는데, 이것만 봐도 이미 얼마나 불균형한지 보이지 않아? 앞으로도 엄마는 아빠랑 할머니가 시킨다고 다 할 거야?"
"아빠가 바빠서 그래. 바쁘다 보니 외가를 조금 못챙기신 것이고 원래 아빠도 외할머니 걱정 많이해주셔."
"아무리 바빠도 할머니가 자기를 부르거나 혹시 할머니가 아프기라도 하면 바로 뛰어가던데? 외할머니가 아플 때만 '유독, 정말, 많이' 바쁜가보네?"
"이게 정말 엄마한테! 하, 하긴 박서윤 너를 내가 말로 어떻게 이기겠니. 입만 살아가지고는..."
"말을 잘해서 내가 이기는 게 아니라, 엄마 말이 틀려서 엄마가 지는 거야. 결국 이 문제는 엄마가 바뀌지 않으면 안 바뀌어. 엄마가 만만하니까 그러는 거잖아. 때려도 헤헤 웃고, 맞아도 그런가보다 하는 사람 권리를 누가 챙겨줘? 엄마는 사실상 할머니랑 아빠한테 정신적으로 맞고 있는 건데. 엄마도 앞으로 바뀔 생각 없으면 이런 얘기 좀 하지마. 듣기 싫으니까."
서연이 누나가 끼어들었다.
"서윤아, 엄마한테 너무 그러지마. 엄마가 오죽하면 우리한테 얘기하시겠어? 너도 엄마한테 말 너무 나쁘게 하면 옆에서 듣는 언니도 화가 나. 그만 좀 해."
서윤이 누나가 마지막 남은 배를 포크로 찔러 입에 넣으며 말했다.
"예예. 아주 다 착해빠져가지고 나만 나쁜 사람이 됐네. 그런데 언니도 그러지마, 진짜. 언니가 여기서 나를 말려버리면 엄마는 진짜 이게 이해를 받을 수 있을 만한 사건인 줄 안다니까, 여기서 얘기가 끝나버리면 엄마는 자기가 틀렸다는 생각을 절대 안 할 거야. 난 엄마를 생각해서 일부러 더 강하게 말한 거라고. 그럼 난 들어가서 공부할 테니 언니는 더 듣든지 마음대로 하쇼.“
서윤이 누나는 방에 들어갔고, 엄마는 상처를 받으셨는지 별 말 없이 우리한테 배를 하나 더 깎아주시면서 자기 팔자가 어떻고 얘기를 이어나가셨다.
우리 엄마라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 한 번 아버지가 주말에 골프를 치러 나가고 엄마가 우리 남매를 불러서 심각하게 할 얘기가 있다며 거실로 모이게 한 적이 있다.
"너네 아빠가 아무래도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애. 나는 어쩌면 좋니? 너희들도 있는데?"
서윤이 누나가 말했다.
"그래? 새삼스러울 건 없네. 그런데 엄마도 맨날 아빠 담배 태울 때 재떨이 옆에 단란주점 라이터 있던데 그거 어디서 났는지는 생각 안 해봤나보네?"
"그거야 너희 아버지 일하다보면 그런 곳 갈 수도 있지. 그거랑 이거랑 같아?"
"뭐가 달라? 다른 여자랑 자고 다니는 건 똑같지."
엄마가 서윤이 누나의 등을 쎄게 때렸다.
"이게 어디 어린 창수랑 서희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못할 말을 하게 만들지 말아야지. 아빠가."
서연이 누나가 말했다.
"엄마, 그러면 어떡해? 아빠랑 이혼할 거야? 이제 우리 아빠랑 따로 사는 거야, 그럼?"
"너희는 어쩌면 좋겠니? 엄마는 도저히 이제 아빠랑 못 살 거 같은데, 아빠가 내가 사준 적이 없는 옷을 입고 집에 왔어."
"그걸로는 아빠가 바람 피우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 않아?"
"아니야, 그거 외에도... 너희한테는 차마 말 못하겠는데 일단 엄마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믿어주렴."
서윤이 누나가 다시 끼어들었다.
"엄마, 보험회사 다닌다고 영업할 때 다 룸살롱에 가지는 않아. 그건 아빠 선택이고. 그리고 엄마는 아빠랑 회사에서 만났잖아. 그 때 아빠가 그런 곳 가는 걸 모르고 결혼한 거야? 나는 진짜 가만히 보면 엄마도 이상해. 내 관점에서는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생각을 안 하고 맨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니까 정말."
엄마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지금 말하는 건 룸살롱 문제가 아니라니까! 거기서 너네 아빠가 어떻게 할지 네가 어떻게 알아!"
갑작스런 엄마의 반응에 우리 네 명은 모두 당황했다. 심지어 우리 중에 가장 강단 있는 서윤이 누나마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어붙은 분위기를 깨려는 건지 당시 9살 밖에 안 되었던 서희 누나가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마 편이야. 화내지 말아. 우리끼리 잘 살면 되잖아."
나도 거들었다.
"나는 엄마랑 아버지가 이혼하면 무조건 엄마 따라 갈 거예요. 나 버리지 말아주세요."
말을 하는 도중에 내 스스로 날 버리지 말아달라는 표현에 몰입이 되었는지 울음이 나왔다.
"아이고, 창수야. 왜 울고 그러니. 엄마가 우리 창수를 왜 버려. 이렇게 귀한 내 아들을."
내가 울자 서희 누나도 따라 울었다. 서연이 누나는 울먹였고, 서윤이 누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서윤이 누나가 말했다.
"엄마, 일단 내가 말이 너무 심했어, 미안해. 그런데 진짜 솔직한 엄마의 마음이 궁금해. 이혼할 거야?"
"고민해볼게. 일단 너희들한테 미리 알려줘야 충격이 덜 할 것 아니야. 그래서 미리 말해준 거야.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하자. 곧 아빠 돌아오실 거야."
서연이 누나가 말했다.
"그래요, 엄마. 결정되면 알려줘.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울게."
우리 남매 네 명은 저 날 이후 엄마와 아버지가 곧 이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각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연이, 서윤이 누나는 나랑 서희 누나한테 와서 우리 넷은 떨어질 일이 없다고 계속 진정시켜주었고, 아버지 앞에서는 티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엄마의 당부에 따라 우리 네 명은 이혼의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철저하게 연기를 했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엄마는 이혼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근거로 엄마는 경제적 이유를 제시했다. 이혼하면 우리 넷을 키울 경제적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서윤이 누나는 반발했지만, 엄마는 여자가 혼자 돈을 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이미 자신은 결정을 내렸으니 이 일은 묻어두자고 말했다. 이렇게 들쑤시고 묻자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서윤이 누나는 엄마의 결정과 별개로 이 날 이후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취급을 안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고, 나머지 셋 역시 이 일이 있고 나서 한참 동안 아버지를 대할 때 다소 어색한 모습이 삐져나오는 것을 막기는 어려웠다. 이처럼 엄마는 원래 아버지랑 할머니와 다르게 이런 가부장적 인습, 다시 말해 수동적으로 참는 여성이 옳다는 잘못된 신념에 대해서 적어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만은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기점으로 엄마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명절 때 가족끼리 모여 TV를 시청하는데 아버지와 형제들은 뉴스를 보고 그들이 지지하는 노동당의 모 정치인이 성추문을 일으키고 실각한 사건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하여간 저 언론들이 문제야. 저렇게 잃을 거 많은 사람이 뭐하러 젊은 여자랑 놀아났겠냐고, 다 가짜뉴스지."
작은 아버지도 곧바로 신나서 첨언을 했다.
"그러니까요. 요즘은 언론이 언론이 아니라니까? 오히려 유튜브랑 신뢰도가 다를 것이 없어."
"네가 뭘 좀 아는구나. 하여간 여자들도 문제야. 만약 저게 사실이면 저 여자가 꽃뱀일 것이다. 저렇게 지가 먼저 달라붙은 다음에 나중에 입을 싹 씻고 성희롱이니 뭐니 법적으로 걸어버리는 거지."
아버지의 말에는 근거가 없었다. 근거가 없는 공격으로 중견 정치인 쯤 되는 사람이 실각을 할 리도 없다.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 이 정치인은 확정판결을 통해 해당 건에 대해서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런 말은 서윤이 누나의 심기를 건드리기 충분했다.
"듣자 듣자 하니까 진짜, 어이가 없어서. 성추문을 일으킨 사람한테 오히려 꽃뱀한테 당했다니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지금 뉴스만 봐도 증거가 저렇게 차고 넘치는데요?"
"뉴스에 나온 것이 다가 아니다, 서윤아. 저 정치인이 나이가 아빠나 큰 아빠, 작은 아빠 쯤 될 텐데 우리 나이쯤 되면 잃을 게 얼마나 많은데 너 같으면 한 번에 저렇게 나락에 떨어질 일을 벌이겠어? 사람은 잃는 것을 무서워하는 법이야.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언론에서 거짓말을 하는 거지."
그들은 믿고 싶은대로 믿는 것 같았다. 중학생인 나도 저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서윤이 누나를 말리고 싶었다. 믿고 싶은대로 믿는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지구상에 없으니까.
"잃고 안 잃고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금.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권력을 이용해서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강제로 성폭행했고, 그 성폭행으로 인해서 내부고발이 일어난 게 이 사건의 본질이잖아요. 잃는 것이 두려워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세상에 있는 수 많은 부자, 엘리트 범죄자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존재하는 건가요?"
큰 아버지가 표정관리가 안 되기 시작했다. 논리적인 반박보다는 비꼬는 식의 말이 나올 타이밍이었다.
"우리 서윤이가 무슨 책이라도 한 권 읽고 왔나보구나. 그 페미니즘인지 뭔지 요즘 여자애들이 인터넷에서 많이 얘기하고 공유하고 그런다고 하던데, 영훈이 네 딸한테 정치 교육 좀 다시 해야 쓰겠다. 서윤이가 공부는 잘하는데 헛똑똑이네, 헛똑똑이."
가만히 참고 있을 서윤이 누나가 아니었다.
"갑자기 무슨 페미니즘 타령이에요? 그리고 이게 페미니즘이랑 무슨 상관인가요? 권력이 강한 사람이 반대로 여자고, 약한 사람이 남자일 수도 있는데, 제가 뭐 어디 여자라서 당했다고 말이라도 했나요?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말하죠. 네, 맞아요. 이런 사건의 피해자는 대부분이 여자들이에요. 그리고 권력층에 있는 사람 대부분은 남자들이죠. 누가 뭐래도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가부장적인 사회니까요. 맨날 여자가 문제다 이렇게 말하시는데, 그럼 권력형 범죄는 남자들이 대부분 일으키니까 여기서는 남자가 문제인가요? 남자들한테 권력을 다 뺏어야겠네요, 그럼?"
엄마가 갑자기 서윤이 누나를 끌어 안으며 말렸다. 이 때는 엄마가 아버지랑 이미 이혼을 안 하기로 결심한 뒤였다.
"그만해, 서윤아. 어른들한테 대드는 거 아니야. 그리고 엄마가 봐도 여자들이 문제가 없는 건 아니야. 쉬운 일만 하려고 하고, 게다가 큰 아빠 말씀처럼 약은 애들이 얼마나 많니? 너도 살아보면 조금은 느낄 거야."
저 말은 서윤이 누나를 더 돌아버리게 만들 것이 분명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엄마까지 왜 그래? 엄마도 여자잖아. 저런 말을 하는데 오히려 거들고 있어? 어떻게 딸 셋 가진 엄마가 그래? 저 뉴스 속 여자도 어느 집 딸이겠지. 내가 나중에 저렇게 당하면 엄마는 내 잘못이라고 할 거야?"
"우리 집이랑 남의 집 일은 다르지, 서윤아... 됐으니까 가족끼리 그만 얘기하자. 이런 거."
"진짜 말이 안 통하니까 내가 바보가 되네. 더 말하자고 해도 안 할 거야. 소 귀에 경 읽기인데. 이런 데서 화내면서 쓴 내 숨이 아깝다."
"그래도 여기 어른들이 엄마가 보면 다른 집보다 많이 깨어있고 너희들 말도 많이 들어주시는 편이야. 어쩜 너는 항상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은 거니?"
서윤이 누나는 포기했는지 구태여 대답하지 않고 방으로 갔다. 작은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는 누나의 꽁무니에 대고 한 마디 했다.
"저거 여자애가 저렇게 드세가지고는 어떤 남자가 나중에 데려갈지 참 걱정이다, 걱정."
이렇게 이혼 결심을 묻어버린 엄마는 아버지랑 할머니 못지않은 훌륭한 가부장제의 수호자가 된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할머니의 내 입학식 방문에 대한 이유를 말하자면, 이는 한참을 얘기한 우리집의 성향을 미루어보면 너무나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다. 할머니가 세 명의 누나의 입학식에 가지 않은 것은 손자가 아니라 손녀여서이다. 물론 서윤이 누나 입학식은 본인의 의지로 우리 가족 중 아무도 못 갔으니 논외지만, 그래도 기회가 있어도 안 가셨을 것 같다. 참고로 사촌형과 동생의 입학식도 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우리 할머니가 자식들을 대학을 보내는 교육열을 가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한 엘리트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입학한 학교는 할머니의 기준에서 충분히 자랑스럽지 못했다.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솎아내면, 공부를 잘하는 남자애인 내 입학식이 할머니가 오고 싶은 유일한 선택지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할머니가 진짜 나를 너무 좋아해서 오신 게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솔직히 할머니랑 대화를 나눈 기억도 거의 없기 때문에 이는 더욱 확실하다. 입학식에 할머니가 온 것은 적어도 우리 과에서는 나 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부끄러워 할 일까지는 아니겠지만 왠지 모를 창피함이 몰려왔다. 그래도 적어도 이번만 버티면 사실상의 독립이었기에, 그렇게 버텨내고 난 후에는 내 대학생활은 별 일 없이 순탄하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