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디자인과라고 해서 순수예술을 완전히 등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약간 겹치는 과목이 있었는데, 이는 내게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나는 순수예술을 좋아하기도 했고, 같은 단과대 안의 다른 학과 학생들의 그림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미술사 수업이었다. 나는 한국미술사와 서양미술사로 나누어진 두 가지 수업을 전부 들었는데, 그 중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전통적인 음양의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부여하는 색이 있다. 태극무늬에서 음(-)은 파란색, 양(+)은 빨간색으로 표현되는데 음의 여러 의미에는 여성이 포함되고, 반대로 양의 의미에는 남성이 포함된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시대마다 여성과 남성을 주로 표현하는 색깔이 정해져 있다. 다시 말해서 여성과 남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뚜렷하게 구분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수업을 들으며 교재 귀퉁이에 낙서를 했다. 나는 '보라색 인간'이라고 말이다.
앞에서 말한 초등학교에서의 현도 사건부터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오며 나는 대부분의 남자애들과는 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그 애들이 하는 성적인 농담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애들이 하는 축구나 게임이 나의 관심 밖이었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으면 바로 '형, 동생'거리며 말을 놓고 몰려다니는 집단주의적 성격과 소통 방식이 나랑 맞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것은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인, 이 사회에서 보통 '남성성'이라고 부르는 실체 없는 그것, 혹은 그로부터 파생된 것들이 나와는 정말로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자애들과는 완전히 섞일 수 있었냐고? 예상할 수 있겠지만 당연히 아니다. 인간은 지성의 동물이라지만 본인의 이성 못지 않게 감각에 의존하는 생물이기도 하다. 누가 봐도 남성인 내가 여성 집단에 꼈을 때 느끼는 그 이질감은 노력을 통해 지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여자애들은 다른 남자애들보다는 나를 친근하게 대했지만, 나를 본인들의 동성 친구와 동등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 스스로도 화장품을 얘기하거나 내밀한 연애 얘기를 할 때 그들의 말을 이해할 자신도 없기도 했다. 물론 둘 중 반드시 하나를 고르라면 여자애들 쪽의 소통 방식과 행동이 내게는 조금 더 맞았다. 하지만 완전히 낄 수는 없다. 이 딜레마는 결국 나를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중간자적 존재로 만들었다.
그래서 저 수업을 듣고 보라색 인간이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교재 귀퉁이에 적은 것이다. 빨간색과 파란색을 반반 섞으면 보라색이 된다. 나는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충분히 남자답지도 않고, 충분히 여자답지도 않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나는 예전에는 내가 성소수자인 줄 착각했던 적이 있다. 막연히 성소수자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스스로를 정의할 때 양성 중 하나로 명확히 구분되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그런 쪽에서 답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성소수자는 자신의 성적지향에 따라 갈리는 것이지 내가 하는 고민의 종류와는 동떨어져 있는 개념이었다. 나를 포함해 세상 사람들은 이미 주어진 개념과 고정 관념 속에서 자신을 정의한다. 그런데 나를 정의하기에는 이 세상 속 개념과 관념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다. 애매하게 정의된 자기 자신은 그 마음 속에 애매함을 남길뿐이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타인과 세상을 보는 필터가 다르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1학년 때부터 2학년 때까지, 나에게는 윤형서라는 가장 친한 학과 동기 여자애가 있었다. 2학년 2학기 말쯤 현서가 나를 자기가 사는 기숙사로 야심한 시각에 불러 갑작스레 나가게 되었다.
"창수야, 잠깐 좀 걸을까?"
기말고사 기간이기도 했고, 간만에 오랫동안 공부를 하니 머리도 복잡해 걷고 싶었기에 나는 좋다고 답하고 형서와 학교 담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형서가 나한테 손깍지를 꼈다.
"창수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너는 나한테 진짜 소중한 사람이지. 너 아니었으면 학교에 이 만큼 적응 못했을 거야. 너는 OT때부터 날 챙겨줬잖아. 너 아니었으면 내 성격에 같이 수업들을 사람이나 있었을까? 하하."
"그래? 잘 됐다. 나는 내가 오지랖 넓은 짓하는 거 같아서 그 때는 조금 걱정됐거든. 네가 좋게 받아들여줘서 다행이야. 그런데 너는 연애는 안 해?"
"연애라... 뭐 나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나를 좋아할 여자애들이 있을까? 운동도 별로 못하고, 남자답지도 못한데 나한테 이성적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울 거 같은데?"
"대신 너는 섬세하고 여자 마음을 잘 이해하는 편이잖아. 우리 과 남자애들은 맨날 몰려 다니면서 PC방 가고 술에 쩔어 사는데 너는 그런 곳도 잘 안끼고, 요즘 여자애들은 오히려 다들 너 같은 스타일 좋아할 걸?"
"무슨 소리야. 나 인기 없어.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리고 그게 아쉽지도 않고."
"너 진짜 하나도 모르는구나. 우리 과에서 여자애들 대부분 네가 제일 괜찮다고들 해. CC는 하는 거 아니라고 하지만 너 정도면 진짜 모르겠다고."
"뭐 얻어 먹으려고 그런 소리 하는 거야? 네 말이 맞다고 치더라도 아무도 나한테 그런 쪽으로 신호를 보낸 적은 없었는데? 근거가 없는 말이야. 자존심 세워주는 거야? 이거 고맙네..."
"아니, 그건! 다 이유가 있어... 애들은 나랑 너랑 당연히 사귈 걸로 알고 있으니까 그래. 아예 사귀는 줄 아는 애들도 많아. 그런데 지금 누가 너한테 접근을 하겠어."
나도 바보는 아니다. 손깍지 낄 때부터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될 것이라고 직감은 하고 있었다. 인기가 꽤 있었다는 것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형서의 마음은 더욱 몰랐다. 오해하지 않게 신경쓰고 철저히 친구로 대했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되면 앞으로 학교 생활 동안 형서를 어떻게 마주칠까 두려워 분위기를 어떻게든 다르게 바꾸려고 말을 돌렸던 것이다. 형서가 말을 이었다.
"너랑 나는 무슨 사이야? 나는 네가 언제 쯤 말할까 기다렸어. 솔직히 2년 씩이나 시간이 끌린 것도 나는 너를 워낙 잘 아니까 너라면 그렇게 신중할 수 있겠다 생각헀어. 이제 슬슬 말해줄 때가 되지 않았어?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해?"
진짜 비겁하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되물어보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하지 말았어야 하는 행동이었다.
"반대로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하는데?"
"왜 그러는 거야? 내 입으로 꼭 들어야겠어? 나는 네가 좋아. 너랑 사귀고 싶다고. 네 친구가 아니라 네 여자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이야. 그리고 미친 소리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너랑은 결혼까지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적도 있어. 2년 동안 내가 본 넌 충분히 그런 매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느꼈어. 이제 네가 답할 차례야."
형서는 강단이 있고 용기가 있는 멋진 사람이었다. 저렇게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 그 때부터는 나에게도 더 피할 곳이 없었다. 회피형 인간인 나조차도 완벽히 궁지에 몰리면 유일한 선택지는 당연히 솔직한 답을 해주는 것뿐이다.
"미안하다. 나는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어. 너한테 이성적으로 끌린 적은 솔직히 없어. 아니, 네가 아니라 내 인생에서 나는 아직 이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오늘한 말은 서로 잊고..."
형서는 사실 내가 머뭇거릴 때부터 답을 알았을 것이다. 형서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래. 알겠어. 근데 너 진짜 나쁜 놈이야. 이렇게 좋아하게 만들어 놓고, 그러면 왜 챙겨주는 거야. 왜 나 아플 때 약 사다주고 걱정하는 거야. 왜 내가 만나자면 한 번을 거절을 안 하는 거야. 왜 늦은 밤에 나랑 몇 시간씩 전화를 하면서 내 얘기를 들어주는 거야..."
"아니 나는 그냥 네가 걱정 되니까, 네가 아프면 약을 사다 준 거야. 친구니까. 그리고 전화는 네가 힘든 일이 있으면 나라도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랬어. 나는 듣는 거 하나는 잘하니까. 만나자는 것도 친구인 너랑 있으면 재미가 있으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
"장담은 못하겠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러면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아. 남자랑 여자가 어떻게 진짜 친구처럼만 지내. 친구처럼 지내더라도 동성친구처럼 친해지기는 어려운 거야. 다들 그렇게 살아. 논리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고. 남녀 사이에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가까운 친구는 있을 수 없어. 그게 내 생각이야."
맞는 말 같았다. 다른 사회와 그 곳의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사회와 사람들에 한정해서는 옳은 말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된다고 한들 피상적인 관계에 머무르는 것이 한계였고, 관계가 깊어지면 보통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남성인 내가 여자 커뮤니티에 끼는 것에 분명한 장벽이 있다고 느꼈기에 나 역시 그것을 통감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형서는 예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고 나는 그녀에게 큰 상처를 안겨주고 만 것이다. 너무 미안했다. 형서가 마지막으로 말을 이었다.
"억지로 네 맘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알아. 이렇게 될 건 어렴풋이 짐작했어. 그래도 나도 너한테 말을 하고 결론을 내고 싶었어. 안 그러면 계속 널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니까. 넌 특별하고 좋은 사람이야. 네가 행동하고 싶은대로 행동하면 언제든 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그러니까 맨날 스스로를 낮춰 보지말고 자신감을 가져도 돼. 언젠가 만날 네 사람이 내가 아니어서 아쉽지만, 내 마음은 내가 잘 정리해볼게. 고마웠어."
형서는 나를 너무 잘 알았다. 자존감이 낮고 자학하는 성격이 있는 내가 형서가 떠나면 남한테 상처를 준 걸로 스스로를 학대하며 자괴감에 빠질 것도 알았을 것이다. 가장 상처가 컸을 본인보다 내 마음을 추슬러 주고 형서는 먼저 기숙사로 들어갔다. 이런 일을 겪고 친구로 남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후로 형서랑은 지나치다 만나면 가볍게 손인사를 할 뿐인 사이가 되었다. 신기하게 소문이 많은 대학가에서 그 후로도 별다른 구설수는 따라오지 않았다. 아마 동기들에게는 형서가 잘 얘기해줬을 것이다. 다만 그 다음으로는 형서만큼 나를 잘 이해하는 친구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 후 내 대학생활은 특별할 일 없이 공부와 실기에 집중하는 학업의 연속으로 끝나게 되었다.
내가 졸업할 때 쯤에는 입학 전 예상대로 디자인과 학생들이 취업하기 꽤 좋은 시대가 되었다. 나를 포함해 우리 학과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쁘지 않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도피성이 아니라 본인 의지로 대학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제조사로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R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수와 복리후생이 좋았고 노조가 있어서 근속 연수도 긴 회사였다. 어차피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크게 업무가 달라질 게 없다면, 조건을 보고 선택할 뿐이었다. 내게 회사란 그런 수준의 의미를 가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남자 쪽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그런 말은 과거의 격언일 뿐이다. 여자 중에서도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충분히 많고, 나는 그래서 회사에서 근무할 때도 남녀 비율이 그렇게 큰 격차가 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디자인본부에 속한 우리팀만 해도 남자가 훨씬 많았다. 디자인과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여초학과인데 말이다. 나름 외국인도 근무하는 글로벌 기업인데도, 외국인조차 남자가 훨씬 많았고 여자들이 있는 부서는 거의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생산이나 영업 쪽은 가끔 업무적으로 엮일 일이 있으니 만나게 되는데, 그런 유관 부서 중에 여성은 거의 없었다. 여성은 주로 경영지원이나 디자인에 많은 비율로 몰려 있을 뿐이었다. 그 마저도 앞서 말했듯이 절대적인 수는 남성에 비해 부족했다. 아직도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건 남자라서 였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돈을 벌러 온 것일뿐이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데 직접 해본 회사생활은 내 예상과 달랐다. 나는 회사란 기능적 조직이니 기능적인 부분만 잘 수행해내면 회사원으로서 충분히 만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능적인 부분을 만족하는 것과 별개로 이 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초조직과 비슷했다. 남자들끼리 몰려 다녔고, 회사에서 정해준 '매니저'라는 통일된 직함이 있지만 조금만 친해지면 남자들은 '형', '동생'으로 서로 호칭을 했다. 이 호형호제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신입사원이오면 남자 신입들에게 접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놓고 자기를 형으로 불러도 된다며 호칭체계를 가볍게 무시했다. 사내에서는 존칭을 쓰라는 인사팀의 안내는 말단인 각 팀에 와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인사팀의 안내와는 별개의 사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이 호형호제 집단에 끼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인 고립을 의미했다. 업무에 영향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각종 암묵지를 자기들의 '동생'에게 제공하고, 업무 중 협조의 정도도 '형'인지 그냥 선배인지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이 쯤 되니 나 역시 어느 정도는 맞출 수 밖에 없었다. 일에서 뒤쳐지기는 싫었던 노릇이다. 내게는 그렇게 부서 내 5명의 형이 생겼다. 나이 차이가 많게는 10살도 나는데 형이라고 부르니까 웃기긴 했다. 아무튼 그 형들 중 대장이 어느 날은 퇴근 30분 전 내 자리에 와서 회식 제의를 했다.
"헤이 창수, 오늘 한 잔 고?"
"오늘이요? 좀 갑작스러운데..."
"에이, 우리 사이에 갑자기가 어딨어? 어디 여자친구라도 만나러 가나? 뜨거운 시간 보내게? 야, 나는 만난지 한 달 안에 안 주면 그냥 바로 차버렸어. 여자친구면 바로 속궁합부터 봐라? 아무튼 여자친구라는 거지? 그럼 내가 이해해줄게."
돌연 고등학교 때의 아픈 기억들이 떠올랐다. 여자친구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있었다면 저 말은 내 여자친구에 대한 성희롱이기도 하다. 그럼 내가 참을 수 있었을까? 정말 가기 싫었지만 더 헛소리 하기 전에 가겠다고 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뇨, 저 여자친구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퇴근하고 형 자리로 갈까요?"
"어어, 형 자리로 와. 너 말고도 오늘 한 8명 온다. 그 외장 쪽 애들이랑은 아직 안 만나봤지? 오늘 만나서 많이 친해져."
하필 지나가던 얼굴만 아는 외장 쪽 선배가 형을 보고 내 자리로 다가오더니 말을 건넸다.
"오, 얘가 너희 팀 신입? 똘똘하게 생겼네."
"네네, 제가 말했죠. 머리만 똘똘할까요? 아니면 아래도? 혹시 아래에 있는 그 놈 이름이 똘똘이냐? 깔깔."
"아, 하여간 이 새끼 재밌어. 임마, 너네 형 재밌어서 회사 생활 재밌겠다, 야."
외장 쪽 선배는 방금 날 처음 봤는데 형이 나한테 반말을 하니 자연스레 나한테 똑같이 반말을 했다. 그리고 저 형이라는 놈의 정신나간 성희롱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업무를 정리하고 형이 말한대로 8명이서 식당에서 가서 반주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법인카드도 안 나오는 자체 회식이라 돈이 깨질까 걱정했는데, '형'들이 체면을 세우려고 다 사주었기에 돈이 들 일은 없었다. 술이 조금 취해갈 때 쯤, 형이 갑자기 숙취해소제를 챙겨주며 내 옆 자리에 앉았다.
"야, 새로 본 형들 인사하느라 힘들지? 이거 마셔라. 너 술 잘 못하잖아."
"아, 형.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옆에 있던 외장 쪽 선배가 한 마디했다.
"이야~ 저거 막내 기가 막히게 챙기는 거 봐라. 우리 때는 저런 선배 없었다~"
형이 곧바로 대답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 형 뭘 그런 말을 해요. 세상이 다 변하는 거지. 이제 막내들한테 밉보이면 '소원수리' 당합니다? 하하."
역시 숙취해소제는 맛이 없었다. 억지로 다 비워내니 형이 갑자기 사회자처럼 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자자, 다들 적당히들 드셨죠? 그럼 슬슬 일어나서 우리 '거기' 가야죠? 오늘 다들 핑계 준비 하시고~"
술에 취해 누군지도 모르겠는 목소리들이 뒤엉켜서 호응했다.
"이야, 오늘 우리 막내 홍콩가는 날이야?"
"너는 오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진짜 복 받은 줄 알아라."
"옛날에는 이것도 아무나 시켜주는 게 아니었는디, 나는 지방에서 올라와가지고는 요것을 상당히 늦게 경험한 것이 한이여. 오늘 많이 놀아라잉? 그럼 나는 먼저 갈랑께, 다들 잘 놀고 다음 날 늦지들 말어."
"에이~ 우리 행님이 없으면 우짭니까? 우리 '박드릴' 행님 없으면 거기 아가씨들이 억수로 행님 찾는다고예. 빼지 말고 얼른 가입시다. 행님"
술에 취했지만 대화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서윤이 누나가 내가 회사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걱정했던 게 바로 이거였다. 자기 회사에서 성매매 업소 가는 남자들이 많다는데, 네가 안 가더라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까봐 걱정이라고 말이다. 일단 그런 곳은 난 죽어도 갈 생각이 없었다. 다 떠나서 범죄가 아닌가.
"저 혹시 어디 가는 건가요? 이제?"
"다 알면서 왜 그래, 좋은 구경하러 가는 거지."
"그러니까 어디 가는 건데요? 말해주세요."
형이 귀에 대고 '업소'라고 속삭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예상이 맞았다.
"형, 죄송한데 저는 못 갈 거 같아요. 속도 안 좋고..."
"속 안 좋아도 돼. 가서 술 더 안 먹어도 되니까 따라만 와."
"솔직히 그런 곳 가는 거 저는 싫어해서요. 죄송해요."
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옆에서 듣던 외장 쪽 선배가 술에 취한 탓인지 언성을 높이며 성질을 냈다.
"뭐가 싫은데? 그런 거 싫어하는 남자도 있어? 그리고, 뭐 너는 우리가 그런 곳 가니까 더럽다 이거냐?"
형이 선배를 말리며 말했다.
"아, 형, 아니야. 아니야. 얘가 취해서 그래. 야, 창수야. 그러면 앉아만 있다가 가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안 해도 돼. 그냥 얘기 좀 더 하다가 가자. 오늘 너 때문에 모인 거 아니냐."
나 때문에 모였다고? 금시초문이었다. 나 때문에 모이기에는 입사한지도 꽤 지났고, 명분이 없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른 선배들이 비꼬기 시작했다.
"아따, 아주 신념이 있구마잉. 지만 아주 깨끗허고, 우리는 더럽제. 나라고 좋아서 가는 줄 아는 갑네. 이것이 다 일인디. 일."
"와, 행님 저런 놈 처음 보네예. 여자 싫다는 놈이 어딨나 했더니 여기 있네."
퇴사를 하는 한이 있어도 나는 그런 곳에서 모르는 여자한테 돈을 주고 몸을 사서 섞는 일은 진짜로 하기가 싫었다. 몸을 섞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연인하고 하고 싶지 애초에 모르는 사람이랑 마구잡이식으로 하는 그 생각 자체가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강하게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 이건 안 됩니다. 저 때려 죽여도 안 갑니다. 술도 많이 취해서, 들어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죄송하니 오늘 제가 먹은 것만이라도 계산하고 가겠습니다."
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다. 형들 내가 얘 보내고 갈 테니까 먼저들 가 있으셔요. 야, 카드 집어 넣어. 됐으니까 얼른 집에 가."
누군가 또 말했다.
"지 밥값 내려고 하는 거 봐라. 아주 딱 우리랑 손절을 치려고 하는구만. 우리가 나쁜 놈 된 기분이네, 진짜. 망할 놈."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른 체로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 집으로 왔다. '형'들은 자기들끼리 결국 2차까지 갔다. 보아하니 저것은 일상적인 일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형들은 다음 날부터 회사에서 날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몇 번씩 부르던 번개 모임도 더 이상 이제 부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몇몇 선배들은 화장실에서라도 나를 만나면 째려보고 지나갔다. 내가 잘못한 게 없기에 큰 불이익은 없었지만 난 철저하게 그들만의 커뮤니티에서 배제당했다. 그렇다고 해서 방금 전까지 저 쪽과 어울리다가 갑자기 다시 우리 팀 여자들과 어울리기에는 타이밍이 지나갔다. 솔직히 처음부터 여자들이랑 어울렸어도 나를 받아줬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이 조직에서도 또 다시 '보라색 인간'이 됐다. 그들이 크게 괴롭히거나 한 것은 없지만, 아무리 기능적 조직인 회사라도 마음 터놓을 상대가 없는 것은 꽤 힘들었다. 하지만 고독은 원래 익숙했기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는 인간관계외에도 내가 힘들만한 요소는 너무나 많았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는 '매니저'와 '선임매니저'로 직급을 이원화하고 평등한 관계를 가질 것을 직원들에게 제의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입사 시기에 따라서 선후배가 나누어졌고, 그러다보니 '막내'라는 개념이 여전히 존재했다. 업무적으로도 막내 업무가 따로 있어, 주로 단순 취합 및 서무 업무가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당연히 회의실 예약부터 회식 때 식당 예약까지 신변잡기적인 일들은 당연한 것처럼 막내가 해야 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이러한 공역의 잡다한 일들을 모두 몰아주는 것은 취업 규칙에 나온 내용도 아니고, 논리적 근거도 없었다. 나는 근거가 없으면 쉬이 납득을 못하는 성격이라 이게 너무 힘들었다.
더불어 디자인센터 특성상 해외 공장들과도 '컨퍼런스 콜'이라고 하는 국제전화를 할 일이 많았는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들은 우리와 시간대가 완전 반대이기 때문에 새벽에도 전화를 받아야 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역시 회사를 위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들은 정식으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이상 연장근로로 가산되지 않았다. 이러한 시간들을 모으면 꽤 적지 않은 시간이 되었기에 무상노동을 해준 셈이라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회사를 돈을 벌기 위해서 다닐 뿐인데 돈을 주지 않는 노동을 하면 당연히 근로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불만들을 속에 쌓아두면 언제 한 번 크게 터질 것 같았고, 나는 이러한 근심을 풀어내고자 서윤이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선배 직장인으로서 누나를 거의 유일한 믿을 만한 멘토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기대와 달랐다. 막내 때 그렇게 굴러봐야 일을 배우는 건 맞다느니, 선배들도 다 그렇게 배웠기에 일을 잘하는 건 맞다느니 예상과 다른 말을 쏟아내며 이건 네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내게 확신에 차서 훈계를 했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짜증이 났다. 욱해서 해외 업무는 회사에서 저녁 시간대에 한 명을 더 고용해서 전화를 받게 하거나 연장 근로수당을 주는 게 맞는 거 아니냐고 반박을 하니, 누나는 사람이 두 명이 되면 업무의 연락 채널이 일원화되지 않아 혼란을 줘서 안 된다고 말했다. 연장 근로는 네 말이 일리가 있지만 그 정도 업무를 세세히 근로 시간에 산입하려고 하면 네가 앞으로 피곤해질 거니 내려놓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난생 처음으로 서윤이 누나의 말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논리적인 사람이 논리적이지 못한 주장을 하고 있었다. 누나의 관점은 회사의 경영효율성을 위해서는 맞는 말일지 모르나, 근로기준법과 노동인권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말이었다. 솔직히 이건 육군, 공군, 해군 같은 군사조직이 아닌 이상 말이 안 된다. 국익을 위한 희생을 군인은 감내할 수 있지만, 직장인은 사익이 우선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서윤이 누나 역시 우리 집의 불화로부터 도피처를 찾았다. 서연이 누나에게 그게 매형이었으면 서윤이 누나에게는 그게 회사였을 것이다. 빠르게 본인의 입지를 다지고 집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던 누나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런 누나가 회사의 언어와 논리에 익숙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 나는 이 때 누나의 말을 들으며 순간적으로 군대 선임이 생각이 났다. 가장 남성적인 조직의 문화를 옹호하는 게 남성 위주의 사회를 가장 싫어하는 우리 누나라니, 믿을 수 없었다. 유리천장, 육아휴직, 여성임원비율에 대해서 항상 열변을 토하던 누나가 그 개념들 이전의 대전제, 회사라는 계약 관계에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저 군대식 시스템에 대해서는 옹호를 하는 게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그 즈음에 나는 누군가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힌 신념은 타인이 결코 빼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학습한 상태였다. 납득이 된 것은 아니지만, 알겠다고 말하며 누나의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는 누나에게 다시는 회사 일로 전화한 적이 없다. 그리고 회사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더라도 그것에 대해 개선을 기대하거나 누나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피력한 적이 없다. 이처럼 머리를 비우니 스트레스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렇게 바보처럼 회사를 다니며 내 사회생활은 무미건조하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