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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Oct 27. 2024

저울의 눈금이 돌아오다

 푹신한 빈백이 어느새 내 몸과 같은 모양으로 움푹 파여 있다. 아까 눈을 감고 나서 30분 쯤 지났으려나. 나는 천천히 눈을 뜬다. 천장에는 시스템 에어컨이 굉음을 내며 우렁차게 가동되고 있다. 밖이 엄청나게 더워서 그런가보다.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본다. 눈을 감기 전 인도를 지나가던 시위대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확성기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다른 장소로 옮겨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 같다. 지혜는 더운 날씨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데... 집에 잘 들어갔을까? 관계를 먼저 포기한 놈이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 자기가 떠밀어서 보낸 주제에 걱정이라니, 우스울 뿐이다.


 일단 몸을 일으켰다. 억지로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이대로 영영 누워만 있을 것 같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면 내 생각에 스스로 잡아 먹힐 것이 분명하다. 나는 살아오며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생각이 너무 많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신중해서 그렇다고 말해주었지만, 누구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신중한 사람이 아니라 사변적인 사람이다. 내가 하는 생각은 계획과 논리적 생각이 아닌 공허한 꼬리물기식 공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카페를 나갔다.


 에어컨으로 내려가 있는 체온 때문인지, 햇빛을 받아 아지랑이를 일으키는 아스팔트의 복사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살아오며 느껴본 적 없는 더위가 몸을 덮친다. 밖에 있을 때가 아니다. 나도 일단 얼른 집에 가야겠다. 지하철 역이 어느 쪽이더라. 마침 발 밑을 보니 스티커로 마포역까지 '서울 지하철 5호선'이라는 보라색 유도선이 붙어 있다. 생각해보니 지혜랑 처음 만났던 것도 마포였는데, 우리의 마지막도 본의 아니게 마포가 되었다. 이제는 마포에 올 때 마다 지혜 생각이 날 수밖에 없겠지. 뚜벅뚜벅 걸어내려가 승차 태그를 하고 승강장으로 들어갔다. 내가 탈 열차는 방금 지나갔는지 승강장에는 사람도, 열차도 없었다. 적당히 빈 의자에 앉았다. 앉으니 시선이 자연스레 정면을 향했다. 투명한 스크린도어 너머로 반대편 승강장이 보였다. 작은 여자애 손을 잡고 부부가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가 낯익은 얼굴이다.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쳐다보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는 나이가 조금 들어 인상이 약간 변하긴 했지만 형서가 분명했다. 어느새 형서는 좋은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었구나. 좋은 사람이니 본인 못지 않게 좋은 사람을 반려자로 만났을 것이다. 형서에게 이제 나라는 사람의 생각은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행복해보이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대학생 때 형서의 고백을 거절한 이후로, 나는 묘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기내어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보여주는 형서의 앞에서 비겁하게 회피를 했던 까닭이다.


 누가 들어도 변명에 불과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형서와 친구로 지냈던 그 2년 간의 시간과 인연이 소중했기에 그게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다. 그럼 반대로 형서는 나와의 인연이 소중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누군가는 설령 그 동안 쌓아온 인연이 끊어질 수 있더라도, 본인이 행동을 해야할 때가 오면 그 선택을 과감히 감내한다. 결과는 본인이 미리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 상황에서 본인의 의중에 따라 정직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 선택으로 오랜 기간 쌓아온 인연이 끊어질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지, 혹은 더욱 강화될지, 아니면 그 사람과의 단절을 계기로 또 다른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와의 인연은 단절되었지만, 형서는 그 덕에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훌륭한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머리가 맑아졌다. 이는 부모 자식이라도 다를 것이 없는 문제다. 부모와 얽혔던 34년의 세월은 무게가 꽤 나갈 것이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오랜 기간 함께 살아왔기에 그 인연의 무게가 무거워진 것이지, 그 인연이 내재적으로 무거운 가치를 지녀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역사와는 달리 인간관계에서 과거는 현재의 선택에 있어 근거로 쓰일 수 없다. 나와 달리 이 사실을 그 때 형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현재, 그것은 바로 지혜다. 과거에 먹지도 못하던 생선회와 양꼬치를 이제는 잘만 입에 쑤셔넣게 만든 것도 지혜고, 자기 전 재즈 음악을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평온해지는지 알려준 것도 지혜다. 그 외에도 상견례 전 날까지도 삶에 있어 새로운 재미를 계속 찾게 해주던, 현재의 나를 실시간으로 재구성하던 작동원리 자체가 그녀였다. 과거와 현재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이제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휴대폰을 꺼내서 글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한 문장을 적어 아버지와 엄마에게 보냈다.


'파혼은 무슨, 그 동안 키워줘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저한테는 신경 쓰실 것 없이 두 분이서 잘 사시면 될 것 같아요. 잘 지내세요.'


 지하철로 지혜의 집에 가려면 빙빙 돌아서 가게 된다. 지혜가 가고 이미 한 시간 가량 흘렀다. 그런데 낭비할 시간은 없다.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 지하철 출구 근처에 올 때 쯤 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손가락을 옆으로 밀어 통화를 거절했다. 그 후 연락처 목록에 들어가 곧바로 아버지와 엄마 모두를 차단해버렸다. 방금 나와 부모의 인연은 끝났고, 더 이상 대화할 필요는 없다. 지하철역을 나왔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서 있는데 마침 근처의 꽃집이 보였다. 그냥 가는 것보다는 꽃이라도 하나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꽃집에 들어갔다. 둘러보는 중에 보라색 장미가 눈에 띄었다.


 나는 남자든 여자든, 사실 그것을 떠나 보통의 부류의 어느 사람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던 보라색 인간이다. 보라색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과거에는 색깔을 낼 수단이 적어 희귀한 색이었고, 기술이 발전한 현대에 와서도 염료가 비싸고 합성이 쉽지 않다. 굉장히 다루기 까다로운 색인데, 그런 점도 참 나랑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좋아해줄 사람을 찾는 게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쓸데 없이 까탈스러운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 지혜는 단순히 나의 이해자를 넘어 빨간색과 파란색이 아닌 보라색도 충분히 좋은 색깔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보라색을 긍정하고 내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장미를 사서 서둘러 택시에 몸을 실었다.


 아직 지혜가 내 사과를 받아들여 줄지는 모르겠다. 만약 지혜의 마음이 닫혔다면, 난 그 마음을 열 유일한 방법을 안다. 앞서 지혜를 통해 불완전했던 정체성을 확립하고 완전해졌듯이, 지금까지 지혜의 반려자로서 불완전한 모습을 보였던 나였지만 조금 늦었더라도 올바른 방향을 찾아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슬슬 저기 먼발치 지혜의 집이 보인다. 나는 이제 택시에서 내려 지혜의 집으로 무거우면서도,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기도 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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