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힌 눈물
울고 싶어 죽겠다 죽을 만큼 울고 싶다
울기만 하면 되는 아이처럼 울고 싶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울거나 삼키거나 밖에 없다
이 눈물을 꾹꾹 눌러두면 마르려나
말라서 굳으려나
죽고 싶은 마음도 굳어서 딱쟁이가 되고
그때는 할 줄 아는 것도 하나 더 생기려나
참을 수 있고, 잊을 수 있고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말도 뱉어 본다
세상사를 주관하는 이도 단 하나,
내 인생 정답엔 입을 꾹 닫는다
정답 좀 알려달라 치면, 질문만 던져대고
책임 좀 져 달래면, 손만 잡아준다
한 달에 한 번 정기 상담에 간다. ‘남자 몇 명이 지나갔다, 아쉽다. 그런데 귀인을 만났다, 목표가 생겼다, 책을 쓸 것이고, 강연자가 될 것이다. 이제 결혼이 목표가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게 목표이다, 잠을 안 자도 신난다.’ 지난 몇 주간 있었던 변화에 대해서 얘기했다. 십 여분 간 차분히 내 얘기를 듣던 선생님이 말하셨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던 게 언제냐고, 우울증이 아니라 조울증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짜증이 팍 났다. 직전 상담까지는 나를 살피지 않고 결혼해서 애나 낳고 싶다는 낮은 자아상이 문제였다. 때문에 아이가 아닌 스스로 열중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내가 그냥 나로서 괜찮다고 인정하는 것이 우리 상담의 목적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좀 더 직접적으로 심하게 표현하자면 자살하지 않고 잘 살아보려 노력하고 애쓰고, 미래를 위한 포부를 밝혔더니 선생님이 초를 쳤다.
조울이라는 말도 싫었다. 조울증은 내 모든 자아상, 그 전부를 부정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밝고 상냥한 본래 기질 뒤에 숨겨진 우울이라는 한 면이 있지만 그 또한 인정해 주고 아껴주면 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울증은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나의 ‘에너제틱하고 밝은 내 모습’까지 질병의 한 증상이라고 꼬리표를 붙이는 기분이었다. ‘앞면도 문제고 뒷면도 문제라면, 도대체 나는 뭐야?’라는 물음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간신히 우울과 동행 중이었는데 하나가 더 있었다니, 문제투성이 나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끊임없이 물었다. 쉽사리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조울증에 관한 설명과 대표적 증상이 나왔다. 부정할 수 없었다.
‘DSM-5’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출간하는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에서 설명하는 조울증은 다음과 같다.
조울증, 양극성 장애로도 불리며 기분장애의 일종이며 1형과 2형으로 나뉜다.
1형은 조증, 우울증, 정상적 기분의 순환을 경험한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롤러코스터 정상에 이렀을 때는 세상의 정상에 서있는 기분을 느낀다. 이때 경험하는 조증 삽화란, 비정상적으로 들뜨고 의기양양하거나 과민한 기분과 목표지향적 활동 또는 에너지의 증가가 지속되는 분명한 기간을 의미한다.
2형은 1형보다 증상이 경미하다. 조증 삽화도 경험하지만 보통 경조증 삽화를 경험한다. 경조증 삽화는 ‘고조되는 기분 등 조증 삽화와 증상이 유사하지만 우울증 증상’으로 더 많은 문제를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좀 더 쉽게 자가진단을 할 수 있는 대표적 증상은 다음과 같다. ‘의욕이 넘친다.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 않다. 금방이라도 큰 일을 할 것 같다는 자신감에 부푼다.’ 이러한 기간과 우울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조울증의 증상이다. 내가 보기에도 지금 내 증상과 들어맞는 구석이 많았다. 검색을 끝낸 후 엉엉 울었다. 흐어엉, 끅끅 초등학생이 떼쓰듯 울다가, 지금 상황이 너무 웃겨 웃음이 났다. 낄낄낄 거리며 한 시간 넘게 울며 웃었다. 우울증을 겪을 때, 내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자살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가’였다. 조울증에는 ‘도대체 나는 뭐지, 나는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계속 살지 말지 결정을 할 텐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엉망진창 같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일어나 출근을 했다. 짧았던 ‘경조증 삽화’ 시간이 지나고 다시 우울해졌다. 혼자서 가만히 울고 싶었지만 출근해서 내 자리도 지켜야 하고, 해야 할 일도 있었다. 저녁시간 나를 아껴 주시는 나이 지긋한 동료에게 넋두리하듯 얘기도 늘어놓았다. ‘우울증이 아니라 조울증이란다, 지금 당장 허기가 져 죽겠는데 이 남자, 저 남자 가리고 싶지 않다, 물론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프로님 같은 분이 많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1등급 사랑은 나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남자와의 사랑이다. 그 밖의 사랑은 다 2등급 사랑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동료는 내게 말해주었다.
‘주영 프로가 꿈꾸는 행복은 없다. 단언컨대, 모두가 불행하게 살고 있다. 너를 아껴줄 수 있는 진짜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 좋겠지만, 자신이 그런 남자여도 네 이야기를 들으면 도망가고 싶어 질 것이다. 있지도 않은 환상을 꿈꾸며 그것이 지금 자기 손에 없다고 슬퍼하는 지금 모습은 참 어리다.’ 참고로 이 동료는 내 엄마와 동갑이고, 결혼하지 않으셨다. ‘엄마의 잔소리가 이런 느낌일까?’ 이 분과 얘기를 나누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든다. 듣기 싫을 때가 많고 나랑 생각이 너무 달라 답답하지만 틀린 말이 없어 끝까지 듣게 된다.
저녁 시간이 끝나고 회사에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물었다. 혹시 부담스럽진 않으시냐고, 내게 금요일 저녁 명동 롯데백화점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조울증과 불우한 어린 시절, 자살에 대해 터놓는 동료가 있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번쩍 들어요. 아무렇지 않습니다.’하며 특유의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는 미소와 함께 짧게 답하는 동료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다.
끝으로 지금 나를 멘토링, 코칭해주시는 대표님께 화두를 던졌다.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고 5시간은 고사하고 하루 한 장 글쓰기, 책 읽기도 못하는 나도 괜찮은 지. 처음에 보셨던 당차고, 뭐든 할 것 같은 내 앞면 뒤에는 조울증으로 살지 말지 고민하는 무기력한 내가 있는데 한심하진 않은 지. 강연 당 500만 원을 받고, 몇 백억 단위를 다루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표님의 시간투자를 받을 만한 사람인지. 대놓고 표현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쭈굴 하고 꼴 뵈기도 싫은 누추한 자아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넌지시 던진 나의 걱정에 나의 멘토는 한 마디를 던졌다. ‘뭐든 해보세요. 아주 작은 일부터 해봅시다.’
이틀이 걸렸고, 내로라하는 어른들의 손길을 몇 번 거쳤다. 나는 ‘조울증이 있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은 어디 내놓기도 남사스럽고 부끄럽다. 남들에게도 부담 그 자체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외모와 성품을 가진 내가 연애시장에서는 영 맥을 못 추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는 데서 기인하는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면해 극복하기로 했다. 허공에 부유하던 것들을 이 페이지에 적어낸다. 나도 타인들도 부담스럽지 않게 잘게 잘게 다져 소화시켰다.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인기강연자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족을 씹는 얘기가 많다. 근사한 모습으로 청중 앞에 나서 엄마, 아빠, 불우했던 환경을 열심히 씹는다. 충분히 소화된 고난이 그이들의 입술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나는 내 인생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 편식 없이 눈을 딱 감고 한 술 크게 턱, 퍼다가 꼭꼭 씹어 삼키고 싶다. 그래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죽고 싶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