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이란 허망한 외침 아래, 스펙터클만 남았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사랑해 온 팬이라면, 새로운 쥬라기 월드 영화 소식에 가슴이 정말 설렜을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1993년 선사한 첫 쥬라기 공원은 공룡을 스크린 위에 되살리며 경외감과 전율을 안겨 주었고, 이후 여러 속편들이 희비를 거듭하며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이제 2025년, 무려 일곱 번째 이야기인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작>이 개봉되었습니다. 참고로 부제 '새로운 시작(Rebirth)'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말 그대로 시리즈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포부를 담은 제목인데, 이 영화가 그 출발점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했는지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판단이 갈릴 듯합니다.
오랜 팬으로서 저는 극장에 들어서기 전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 느꼈던 그 정말 벅찬 감동과 스릴을 다시 경험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몇 편의 쥬라기 월드 시리즈가 남긴 아쉬움 때문에 조심스러운 기대를 품고 있었죠.
과연 이번 작품은 공룡 시리즈의 팬들에게 우리가 갈망해 온 경이로움을 되찾아 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또 한 번 실망을 안길까요?
이 리뷰는 그 질문에 대한 저의 솔직한 대답이자, 한편으로는 쥬라기 시리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성찰인 것입니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 보여준 장점과 단점을 꼼꼼히 짚어보며, 제가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차분히 풀어가고자 합니다.
쥬라기 시리즈가 지닌 의미와 이번 작품의 주제 의식, 그리고 서사적 완성도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겠지만, 그 바탕에는 여전히 이 시리즈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흐르고 있음을 먼저 밝힙니다.
영화의 배경은 공룡들이 현대 세계에 풀려난 후, 인간과 공룡이 어색하게나마 공존하게 된 가까운 미래입니다. 전 세계가 ‘신(新)쥬라기 시대’를 맞이한 가운데, 인간은 여전히 공룡들을 통제하거나 활용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거대 제약회사 임원 마틴은 치명적인 심장병 치료제 개발을 위해 공룡 DNA가 필요하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것도 평범한 공룡이 아니라 바다·육지·하늘을 대표하는 세 종의 거대 공룡들, 즉 해양의 초대형 포식자 모사사우르스, 초대형 육상 초식공룡 타이타노사우르스, 그리고 거대한 익룡 케찰코아틀루스의 혈액을 채취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무모하고 극도로 위험천만한 임무를 위해 그는 전직 특수부대 요원이자 작전 전문가 조라와 공룡에 대한 학구적 열정을 지닌 고생물학자 헨리 박사를 고용합니다. 여기에 높은 보수를 보고 합류한 베테랑 선장 던컨까지 한 팀을 이루어, 이들은 야생 공룡들이 남아 있는 외딴 섬으로 향합니다.
영화의 본격적인 비평에 들어가기 앞서, 잠시 쥬라기 시리즈가 지닌 의미를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저를 비롯한 수많은 관객들에게 쥬라기 공원/월드 시리즈는 헐리우드 공룡 영화 그 이상의 추억과 상징성을 지닙니다. 1993년, 저는 어린 마음으로 VHS 테이프를 통해 처음 쥬라기 공원을 접했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이 보여준 브라키오사우루스를 향해 팔을 뻗는 그 장면에서 느꼈던 벅찬 경이로움은 제 영화 인생을 통틀어 가장 선명한 감동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를 본 후에도 한동안 저는 공룡의 세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티라노사우루스 장난감을 손에 꼭 쥐고는 집 마당 한구석을 파헤치며 "공룡 뼈를 찾겠다"고 나설 정도로, 쥬라기 공원이 제 어린 날의 상상력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쥬라기 공원은 전 세계 관객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고, 실존했던 거대 생명체들이 스크린 위에서 되살아난다는 꿈같은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그 숭고하면서도 위험천만한 아름다움, 그리고 “과학자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라 정작 해도 되는지 고민하지 않았다”는 이안 말콤 박사의 경고 등이 던져진 메시지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스필버그가 창조한 쥬라기 세계관의 힘은 바로 이 경외감과 윤리의식의 조화에 있습니다. 관객들은 공룡을 마주한 등장인물들의 눈망울을 통해 자연의 압도적 위대함을 체험하는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낸 오만이 빚어낸 위험과 마주하게 되죠.
원작 소설을 쓴 마이클 크라이튼은 이러한 주제를 통해 과학자의 책임과 한계를 일찍이 경고했고, 영화는 그의 상상을 실감나는 시각 경험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존 해몬드와 이안 말콤 박사, 두 사람의 충돌 속에 던져진 메시지인 “인간은 자연 속에 있다는 것” 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였습니다.
이후의 속편들도 각기 방식은 달라도 이러한 철학을 잇고자 노력했습니다. 2편 <잃어버린 세계>에서는 자연을 보호하려는 이상주의와 탐욕스런 사냥꾼들이 대립했고, 3편에 이르러서는 생존 어드벤처에 집중했지만 공룡을 이용하려는 인간의 욕심이라는 테마는 여전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재가동된 쥬라기 월드 3부작 역시 유전자 조작과 군사적 활용, 그리고 공룡들의 세계로의 탈출 등 규모를 키운 설정 속에, 결국 “통제 불가능한 생명”이라는 원점의 메시지를 되새기곤 했습니다.
이렇듯 쥬라기 시리즈는 30여 년에 걸쳐 여러 세대의 관객들에게 경이로움과 교훈을 함께 안겨 준 드문 블록버스터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태곳적부터 이렇게 거대한 생명체에 대한 동경심을 품어왔습니다.
고대의 용(龍) 이야기부터 오늘날의 공룡 화석 발굴에 이르기까지, 현실에 부재한 거대한 생물을 향한 호기심과 경외감은 우리 문화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쥬라기 시리즈는 그러한 원형적 상상을 현대 과학과 영화 기술로 눈앞에 구현해 냄으로써, 일종의 현대판 신화를 만들어냈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래서일까요. 비록 쥬라기 월드 시리즈(2015~2022)에 이르러 상업적 색채가 짙어지고 비평적으로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팬들은 여전히 쥬라기라는 이름에 애정을 갖고 새 영화를 기다려왔습니다. 저 역시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공룡이 펼치는 장엄한 광경과 그 이면에 담긴 의미에 다시 한번 전율하기를 꿈꾸며,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야말로 스필버그 감독이 처음 그려낸 그 경이와 숭고함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켜주길 바랐습니다. 물론 시대가 바뀐 만큼 새로운 해석과 진화를 보여주기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이 영화는 그 기대에 부응했을까요?
이 작품이 처음 표방한 중심 주제는 분명 거창했습니다. 바로 공룡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과학의 윤리라는 두 축입니다. 영화의 설정부터가 공룡이 현실 세계에 풀려나 인간 사회와 얽히는 시대이며, 여기에 더해 인간이 공룡의 존재를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자원으로 이용하려는 이야기 구조가 얽혀 있습니다.
이는 겉보기엔 매우 흥미로운 갈등 구도입니다. 공존이라는 거대한 이상과,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정면으로 부딪히니까요. 영화 속 마틴이라는 인물은 노골적으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체현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서 진정 두려운 존재는 공룡이 아니라 그렇게 비추어진 인간의 악행이라는 것입니다. 마틴의 냉혹함은 외부의 괴물인 공룡보다도 더 무서운 위협으로 다가와, 결국 클라이맥스의 핵심 갈등도 사실상 인간 대 인간으로 귀결됩니다.
이는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이 단지 거대한 파충류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탐욕과 오만임을 일깨우는 설정입니다. 반대로 조라와 헨리, 던컨은 처음에는 돈이나 자신의 목적 때문에 임무에 가담했지만, 점차 양심과 인류애에 눈뜨며 마틴에 대립하게 됩니다.
이처럼 시나리오는 대척점에 선 인간 군상을 통해 “인간 내부의 빛과 어둠”을 부각하려 했고, 더 나아가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성찰하려 한 듯 보입니다.
또 하나의 축은 앞서 언급한 공존입니다. 영화 곳곳에는 공룡과 인간이 대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감하거나 협력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델가도 가족의 막내 소녀 이사벨라가 섬에서 우연히 마주친 새끼 공룡 아퀼롭스와 맺는 작은 우정입니다.
겁에 질려 울던 어린 소녀가 자신만큼이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기 공룡을 달래주고, 서로 체온을 나누며 의지하는 모습은 짧지만 무척 따뜻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는 종을 초월한 순수한 교감으로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과 공룡도 결국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실 공룡과 인간의 공생이라는 화두는 시리즈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2편 <잃어버린 세계>(1997)에서 존 해먼드는 공룡들을 인간이 간섭하지 않는 별도의 섬에 맡겨야 한다고 역설했고,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2022)에서는 결국 공룡들이 세상 곳곳에 퍼져 인간과 마주하게 되는 상황을 그려낸 바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그 연장선에서 더욱 본격적으로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온 공룡들을 조명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작품은 공존이라는 이상과 인간의 탐욕이라는 현실을 동시에 포착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거대한 주제가 마음속에 제대로 와닿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분명 작품은 입으로는 높은 이상을 말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전달하는 서사와 캐릭터의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못해 공허하게 울렸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델가도 가족의 역할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가족은 이야기 속에서 상징적인 기능이 분명 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서로를 돌보고 희생하는 가족애를 보여주고, 앞서 말한 이사벨라와 아퀼롭스의 교감처럼 인간성의 긍정적인 본능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죠.
하지만 정작 델가도 가족 개개인의 캐릭터는 피상적으로 그려져 있어 관객이 깊이 이입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아버지 루빈은 가족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 외에 자신만의 스토리나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큰딸과 남자친구의 관계도 간략히 언급될 뿐 별다른 갈등이나 성장이 없이 주변을 맴도는 수준에 그칩니다.
이렇다 보니, 가족이 처한 위험에서 느껴야 할 긴장감이나 그들이 살아남길 바라는 간절함이 생각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델가도 가족은 서사의 촉매로서 이용될 뿐, 관객에게 입체적인 인물로 다가오지 못합니다.
그들이 극 중에서 담당하는 기능, 이를테면 던컨과 조라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운다든지, 인간-공룡 교감의 도구가 된다든지 하는 부분은 이해되지만, 그런 의도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나머지 캐릭터 자체의 생명력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이야기를 위한 도구”로 보인다는 점에서 몰입을 방해합니다.
둘째로,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야 할 조라와 던컨 등 주요 인물들의 심리적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조라는 이 작품의 주인공격 인물로, 초반에는 돈을 받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러 나선 냉철한 용병으로 비칩니다.
그녀의 과거에 대해 약간의 암시가 대화로 언급되긴 하지만, 영화는 곧바로 모험과 액션에 집중하느라 조라의 내면을 깊이 있게 보여줄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반부에 조라가 마틴의 비윤리적 행동을 목격하고 갑자기 임무보다 인간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돌아섰을 때, 관객으로서는 그녀의 변화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한 순간의 충격으로 개과천선했다고 보기엔 심리적인 다리가 부족한 것입니다.
사실 조라가 한때 동료를 잃은 상처가 있다고 언급되지만, 정작 섬에서 또 한 명의 동료를 잃게 되는 순간에도 조라의 내면이 그 트라우마와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는 거의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런 과정이 드러났다면 그녀의 결단에 훨씬 큰 설득력이 실렸을 텐데 말입니다.
던컨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이혼 후 과거 지키지 못했던 자녀에게 특별한 애착을 보이는 던컨은 이 영화를 가족 영화로 만드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합니다.
그가 델가도 가족을 구하러 뛰어드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지만, 그것이 단지 자신도 이혼 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라거나 하는 동기 정도로 간략히 설명될 뿐, 이후 던컨이 어떤 심정으로 행동하고 결정하는지는 깊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결국 조라와 던컨은 이야기 전개에 따라 움직이는 평면적인 캐릭터처럼 보이게 되었고, 그들의 선택에 담긴 윤리적 의미조차 피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캐릭터상의 아쉬움은 영화의 주제 전달에도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메시지는 입으로 나와도, 그 메시지를 몸소 보여주어야 할 인물들의 여정이 허술하니 관객 입장에서는 공감이나 감동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조라와 던컨이 돈 때문에 움직이던 용병 팀에서 인류애로 뭉친 정의로운 팀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관객의 감정적 지지를 받아야 이 영화의 의도가 완성되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급작스럽게 그려집니다. 한마디로 “결말을 위해 급히 봉합한 전개”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이야기와 인물이 탄탄했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공존과 윤리의 메시지가 훨씬 가슴에 사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의의 인물들은 밋밋하고 악역은 전형적이다 보니, 관객으로선 너무 쉽게 선악 구도를 예측하게 되고 메시지도 상투적으로 들려버립니다.
정리하자면,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명백히 의미 있고 시의적절한 주제를 내걸었지만 그걸 피부로 느끼게 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델가도 가족과 조라 일행의 서사가 유기적으로 엮이지 못하고 병렬적으로 진행되다가 마지막에야 급히 합쳐지는 구조, 인물들의 내적 변화에 대한 설득 부족, 그리고 몇몇 중요한 장면에서의 감정선 비약 등은 영화가 전하려 한 메시지를 공허한 구호로 만듭니다.
영화 속 대사와 설정으로는 “인간과 공존”을 외치지만, 정작 스크린 위에 펼쳐진 드라마는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쥬라기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많은 팬들은 주저 없이 “공룡”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사실상 이 프랜차이즈를 특별하게 만든 건 거대한 공룡들이 단순한 CG 괴물이 아니라 서사의 핵심 존재로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원작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들은 인간이 맞서 싸워야 할 악당이라기보다, 자신들의 생태를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느껴졌습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랩터들을 쫓아내며 인간을 간접적으로 구해주는 의도치 않은 히어로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새끼 공룡을 지키려는 어미 티렉스나, 죽어가는 트리케라톱스를 보살피는 장면 등에서 우리는 공룡들에게 감정이입을 했고, 그들의 고통이나 분노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벨로시랩터같이 지능적인 공룡들은 마치 악역 캐릭터처럼 교활한 전략을 구사하여 긴장감을 높였죠.
요컨대, 과거의 쥬라기 시리즈는 공룡들을 하나의 주체로 존중하며 이야기에 녹여냈습니다. 관객들은 공룡을 두려워하면서도 묘하게 그들에게 매료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에서는 이러한 공룡의 서사적 주체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번 영화의 공룡들은 압도적인 스케일과 화려한 볼거리로서의 기능에만 치중될 뿐, 개별 생명체로서의 존재감은 희미합니다.
물론 전편들처럼 일부 친숙한 공룡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공룡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돌연변이 거대종이라 일일이 캐릭터성을 부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가 전개상의 편의로만 공룡들을 등장시킨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입니다.
모사사우르스, 타이타노사우르스, 케찰코아틀루스는 이야기 속에서 그저 “채취해야 할 목표” 혹은 “피해야 할 재앙”으로 기능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예컨대 타이타노사우르스와 마주치는 장면에서 인물들은 경외심을 보이지만, 곧 그것이 위험으로 급변하면서 그 거대한 생명체는 하나의 재해처럼만 소비됩니다.
모사사우르스 역시 초반과 후반에 등장하여 큰 긴장을 유발하지만, 관객이 이 존재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곤 막연한 두려움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이 공룡들이 그 섬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크고 위험한 장애물로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지요.
사실 영화는 나름대로 공룡들에게 서사적 역할을 부여하려고 한 흔적이 없지는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아퀼롭스 아기 공룡의 등장은 공룡도 교감 가능한 생명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였고, 한걸음 더 나아가 공룡들끼리의 상호 작용도 묘사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흥미로운 설정들이 영화의 메인 서사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곁가지로 남는다는 겁니다. 아퀼롭스와 이사벨라의 우정은 아름다운 장면이었지만 이야기의 큰 흐름과는 분리되어 있고,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결국 공룡들은 인간들의 싸움에 휘말려드는 배경 요소로 전락해버립니다.
마틴의 탐욕이나 조라 팀의 선택 같은 인간 드라마가 최종 대결의 중심을 차지하고, 공룡들은 그저 그 싸움터를 제공하거나 우연히 한쪽 편에 가담하는 형태로 그려지죠.
이는 공존과 윤리라는 주제를 풀면서 공룡의 존재 가치를 논하려던 시도가 허무하게 느껴지게 만듭니다. 영화는 한편으로 “공룡도 소중한 생명”이라 말하는 듯하지만, 정작 그 소중한 생명들의 목소리는 들려주지 않는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게 느낀 부분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쥬라기 시리즈를 오래도록 사랑해온 팬으로서, 저는 공룡들이 단순한 CGI 괴물이 아니라 서사와 감정의 일부가 되길 바랐습니다.
<새로운 시작>에서도 그런 순간이 아예 없진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헨리 박사가 거대한 타이타노사우르스의 피부를 직접 손으로 느끼며 벅찬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순간만큼은 관객인 저도 공룡의 숨결과 고동을 함께 느끼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상적인 장면들이 제대로 메인서사가 되어 확장되지 못하고 곧바로 다음 사건으로 쫓기듯 넘어가버리는 전개 탓에, 전체 서사에서 공룡들이 차지하는 정서적 비중은 극히 미미하게 남습니다.
결국 공룡들은 이 거대한 이야기의 배경이자 도구일 뿐,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 못합니다. 이는 시리즈 팬으로서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룡 영화”에서 정작 공룡이 서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소품처럼 쓰이는 것은, 이 시리즈의 정체성마저 흐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표방하는 영화라면, 그 자연의 대변자인 공룡들에게 최소한의 서사적 존엄을 부여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공룡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에서 정작 공룡이 조연에 그쳤다는 아이러니가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여러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의 장점과 제게 즐거움을 준 요소들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불공평할 것입니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비판 지점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충분한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했습니다.
러닝타임은 다소 긴 편이지만, 사건 전개가 다양하게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우선 기술적 완성도와 볼거리 측면에서 이 작품은 시리즈 중 손에 꼽힐 만큼 발전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공룡들의 CG 표현은 매우 정교해서, 햇살 아래 비늘의 질감부터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눈동자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또한 제작진은 CG에만 의존하지 않고 실물 크기의 애니매트로닉 공룡을 몇몇 장면에 투입했다고 합니다. 배우들이 직접 눈앞의 공룡 모형과 연기함으로써 생생한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죠. 밀림의 푸르른 색감이나 공룡 피부의 윤기가 더욱 실제처럼 느껴졌습니다.
연출 면에서도 몇몇 인상적인 시퀀스들이 돋보였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연구소에서의 추격신은 제게 있어서 오랜만에 쥬라기 시리즈가 선사한 명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폐혀가된 과거 연구시설의 어둑한 편의점이라는, 시리즈 전통의 정글이나 연구소와는 다른 배경에서 펼쳐진 이 씬은 공룡과 마주한 인간의 공포를 신선하게 그려냈습니다.
유리 진열장 너머로 언뜻언뜻 지나가는 공룡의 실루엣, 냉장고 속 깜빡거리는 형광등 아래에서 숨죽이는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지는 포효 소리 등은 공포 영화의 긴장감을 능가할 만큼 강렬했습니다.
작은 공간에 갇힌 채 거대 포식자를 피해 숨죽여야 한다는 설정은 쥬라기 공원 1편의 부엌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현대의 일상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색다른 스릴을 안겨주었습니다.
액션과 모험의 쾌감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숲속 강에서 펼쳐진 추격전, 절벽 아래로의 급강하 탈출, 그리고 마지막 연구소 붕괴씬 등 영화는 한 시도 쉬지 않고 다양한 양상의 액션을 펼쳐 보입니다.
감독 가렛 에드워즈의 전매특허라 할 만한 거대 크리처 연출 역시 훌륭해서, 거대 공룡과 인간이 한 화면에 잡힐 때의 스케일감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특히 케찰코아틀루스가 절벽을 기어오르며 인간을 공격하는 시퀀스에서는 아이맥스 화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날개와 그림자가 보는 이를 압박해오는 듯했고, 공룡의 일거수일투족에 관객의 눈과 귀가 휘둘릴 정도로 파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이처럼 사운드 디자인과 음향 효과 또한 뛰어납니다. 저는 이 영화를 IMAX 포맷으로 관람하지는 못했는데, 거대한 공룡들이 마치 눈앞으로 돌진해 오는 듯한 스릴과 현장감이 대단했습니다.
모사사우르스의 울음소리가 저음역에서 극장을 진동시키고, 마지막 돌연변이 공룡의 굉음이나 절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실감 나게 표현되어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음악 면에서는 존 윌리엄스의 원조 테마를 필요한 순간에 적절히 끌어와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새로운 장면들에는 현대적 편곡과 새로운 서브 테마를 사용하여 모험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예를 들어 조라 일행이 섬에 처음 상륙할 때, 고전 테마의 한 소절이 잔잔히 흘러나오다가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로 확장되는 순간에는, 저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벅찬 감흥을 느꼈습니다.
배우들의 열연 또한 장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스칼렛 요한슨은 이 시리즈 최초의 여성 단독 주인공으로서 손색없는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그는 액션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뿐 아니라, 후반부에 자신의 신념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결단을 내리는 장면에서는 섬세한 감정 연기도 선보이며 캐릭터에 무게감을 실었습니다.
종합해보면,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볼거리와 오락성 측면에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비록 이 영화에 여러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극장에서 두 눈을 반짝이며 공룡들의 향연을 즐겼던 제 자신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쥬라기 영화가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할 스릴, 흥분, 그리고 한 줌의 경이감은 분명 이 작품에도 살아 있었습니다. 몇몇 장면에서는 어린아이처럼 화면을 응시했고, 긴장되는 순간에는 엉겁결에 몸을 움츠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극장 체험의 즐거움만큼은 이 영화가 확실히 선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공룡 영화를 보러 가는 가장 큰 이유일 테니까요. 그리고 이 영화가 선사한 이러한 체험은 어린 관객들에게도 강렬히 다가갔을 것입니다. 제가 관람하던 상영관에서도 몇몇 어린아이들이 무서움에 부모 손을 꼭 잡으면서도, 화면을 끝까지 응시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며 저는 문득 1993년 처음 공룡을 마주했던 제 자신을 떠올려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제 앞자리에서 영화를 보던 한 아이는 무서운 장면에서 두 눈을 손으로 가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화면을 계속 엿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공룡의 마력이 이토록 강렬하여, 무서움조차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장점과 단점을 모두 이야기했지만, 이 글을 마무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앞으로의 쥬라기 월드 시리즈를 여전히 기대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한 팬으로서 이번 영화에 느낀 아쉬움은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제 안의 공룡을 향한 사랑까지 식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극장을 나서는 길에 제 머릿속에는 벌써 다음 이야기에 대한 상상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만약 다음 편이 나온다면, 거기서는 정말 인간과 공룡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혹은 새로운 진화를 이룬 공룡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사실 쥬라기 시리즈의 부활은 언제나 추억과 혁신 사이의 줄타기였습니다. 오랜 팬들의 향수를 만족시키면서도, 새로운 세대의 관객에게 참신함을 안겨줘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었지요.
이번 <새로운 시작>에서도 그런 고심의 흔적이 보입니다. 제작진은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원년의 각본가와 필름 촬영 기법 등을 재도입하는 한편, 여성 주인공과 가족 드라마를 전면에 내세워 현대적 감각을 더하려 했습니다.
그러한 시도는 일정 부분 성공적이었지만, 동시에 무엇인가 절충된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모두 잡으려다 보니, 한쪽으로 크게 나아가기보다는 무난함에 머무른 측면도 있으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1993년 첫 영화를 극장에서 부모님 손을 잡고 관람했던 어린이들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 자기 자녀와 함께 새로운 쥬라기 월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시리즈가 이렇게 오랜 세월 세대와 세대를 연결해주며 사랑받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쥬라기 시리즈는 그만큼 보편적인 매력과 시대를 초월한 판타지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쉽게 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리즈가 여전히 거대한 상상력의 무대로서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블록버스터 중에서 이렇게 실감 나는 공룡들을 앞세워 거대한 모험담, 인류와 자연의 교감을 그린 서사를 펼치는 프랜차이즈는 쥬라기 시리즈밖에 없습니다.
우주는 스타워즈와 마블이, 마법은 해리 포터가 맡고 있지만, 공룡의 꿈만큼은 오직 쥬라기 공원/월드만이 실현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어릴 적 공룡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혹은 현재 진행형 공룡 덕후라도, 이 시리즈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축복과 같습니다.
설령 완벽한 영화가 아닐지라도, 극장에서 거대한 티라노의 포효를 듣고 목이 긴 용각류가 울창한 숲 위로 목을 쳐드는 모습을 본다는 건 그 자체로 대체 불가능한 희열입니다.
저는 이번 <새로운 시작>을 보며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티라노사우르스의 실루엣이 나타날 때 나도 모르게 숨이 막히는 이 느낌,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울부짖을 때 가슴이 두근대는 이 느낌을, 나는 정말 오래전부터 사랑해왔구나 하고요.
또한 쥬라기 시리즈의 세계에는 아직 무궁무진한 이야기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믿습니다. 예컨대 공룡들이 전세계로 퍼져 인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가는 진정한 공존의 시대를 그린다든지, 혹은 인간이 또다시 공룡을 이용해 이윤을 추구하다가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을 부르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차기 작품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팬들은 벌써부터 "쥬라기 월드"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의 성과에 따라 후속편 제작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음 작품에서 몇 가지를 더 보완해주길 바랍니다.
하나는 공룡들에게 더욱 서사적 주체성을 부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캐릭터들의 감정과 심리를 한층 깊이 있게 그려내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시리즈에 아직 등장하지 않은 다양한 공룡 종들도 선보여 팬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바람들이 모두 실현되기란 쉽지 않겠지만, 쥬라기 시리즈의 잠재력은 그만큼 무궁무진하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혹평을 받은 작품이 나오더라도, 쥬라기라는 이름이 새겨진 영화를 또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이번 영화를 보기 전 날 밤에도 저는 어린 아이처럼 옛날 쥬라기 공원을 다시 돌려보며, 새 영화가 어떤 놀라움을 줄지 상상했습니다. 그러면서 느꼈습니다. 나에게 쥬라기 시리즈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는 여행과 같다고.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평범한 내가 잠시 동심으로, 혹은 인류의 기원이던 공룡 시대로 돌아가 상상 속을 헤맬 수 있는 통로라는 것을요. 그러니 웬만해서는 이 시리즈에 등을 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관객 각자가 이런 개인적 추억과 애정을 지니고 있기에, 쥬라기 월드는 설령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져보는 부분은 제작진도 이러한 팬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군데군데 과거 쥬라기 공원 1편을 오마주한 장면들이나 대사들이 등장했고, 스칼렛 요한슨 같은 배우도 실제로 시리즈의 오랜 팬이기에 직접 아이디어를 내며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만드는 이들도 이 시리즈의 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언젠가 다시 한 번 쥬라기 시리즈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을 수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기술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고, 관객들의 기대 수준도 높아지는 만큼, 더 나은 스토리와 연출로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할 날이 오리라 기대합니다. 공룡들이 달리는 초원을 다시 한 번 숨죽여 바라볼 그날을 저는 기꺼이 기다리며 다시금 영화관으로 찾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