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선 <옴니시아를 위한 비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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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는 헤드라이트의 끝에서 불현듯 형태를 얻었다. 어둠이 뱉어낸 것이 아니라, 빛이라는 올가미에 걸려 억지로 끌려 나온 생명체 같았다. 검은 구체 속에서 번득이는 공포가 나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발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이 종아리를 타고 뇌까지 울렸다. 페달은 힘없이 바닥까지 꺼졌고, 차는 비명을 지르며 늦게 반응했다. 콰직, 금속이 찢기고 유리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세상이 기울었다. 내부의 물건들이 비릿한 화약 냄새와 함께 한쪽으로 쏟아졌다.
안전벨트를 풀자마자 복부 안쪽에서 뜨거운 칼날이 휘젓는 감각이 치밀었다. 숨이 턱에 걸렸다. 차 문을 밀고 굴러떨어진 곳은 젖은 흙 위였다. 손바닥이 미지근하고 걸쭉한 액체에 잠겼다. 피였다.
멀리서 불빛이 다가왔다. 사이렌 소리는 없었다. 의식이 어둠 아래로 침잠하기 직전, 나는 보았다. 사고가 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처음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검은 형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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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이 낮았다. 먼지가 자욱한 노란 전구 하나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빛은 방 구석의 곰팡이 핀 어둠까지는 닿지 못했다.
"정신이 듭니까."
남자는 침대 옆에 화석처럼 서 있었다. 구겨진 흰 가운, 뒤집힌 채 이름조차 보이지 않는 명찰. 그의 손등은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었고 손끝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여기가… 어디죠."
"병원입니다..."
그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모니터의 초록색 선이 느릿하게 파동을 그렸다. 심전도는 평온했으나, 혈압 수치는 표시되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간신히 굴려 주변을 훑었다. 방 저편, 어둠 속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형체는 사람과 같았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였다.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내 것이었는지 그의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죽은 자들과 같은 방에 있었다.
"혈압은요. 왜 안 보입니까."
"지금 당신에게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닐 텐데."
"말해줘요, 수치가 몇이죠?"
"기계가 고장 났다고 해두죠. 죽지 않을 만큼만 흐르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그는 숫자를 철저히 숨겼다. 그의 눈 뒤편에 자리 잡은 거대한 허기가 나를 압도했기에 나는 더 묻지 못했다.
밤이 깊어지자 통증의 성질이 변했다. 짓누르던 무게감이 안쪽에서 터져 나오려는 압력으로 바뀌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복부가 팽창하며 비명을 질렀다.
"선생님… 선생님!"
그가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그의 가운은 이미 피로 절어 있었다.
"터졌군."
"다시… 출혈이… 마취 좀… 제발…."
그는 내 상처를 확인하기도 전에 트레이에서 금속 겸자를 집어 들었다. 챙그랑, 날카로운 금속음이 정적을 깼다.
"마취는 안 됩니다. 지금 약 들어가면 혈압 못 잡아요. 쇼크로 끝내고 싶습니까?"
"그래도 이건… 아악!"
그의 손목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는 겸자를 들고 상처 위로 가져갔지만, 허공에 멈췄다. 그의 손이, 멈췄다.
"…잡아… 잡으란 말이야…."
그는 자기 손을 노려보며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의 온몸이 격렬히 요동치고 있었다.
"선생님, 뭐 하시는 거예요? 제발, 피가… 피가 너무 많이 나요!"
"아… 아니야, 아니야…."
그는 겸자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바닥으로 무너졌다. 무릎을 꿇은 채, 침대 가장자리를 꽉 쥐었다. 그의 눈은 공포에 질린 채 허공을 응시했다. 그는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를 불태웠다. 비명이 찢어발겨진 공기를 타고 지하실을 채웠다. 그가 바닥을 손톱으로 긁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네… 아니, 다시. 하나… 둘…."
그는 내가 아니라, 자기 손을 노려보며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의 셈은 비명보다 더 끔찍했다.
그는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복도의 조명이 명멸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침대에서 굴러 내려왔다. 살아야 했다. 복부를 감싸 쥐고 차가운 바닥을 기어 나갔다. 복도 끝, 어둠 속에 웅크린 그가 보였다. 그는 벽을 손톱으로 긁으며 숫자를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아니, 다시. 하나… 둘…."
그의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뭉치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펼쳤다.
[출혈 4분 — 늦었음]
[출혈 4분 — 또 늦었음]
수백 번은 덧그어 거칠게 파여버린 문장들. 잉크는 눈물처럼 번져 종이를 잠식하고 있었다.
"셋… 넷…."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 그는 내가 아니라, 자신이 놓쳐버린 과거의 누군가를 세고 있었다.
-2-
다시 눈을 떴을 때, 복부는 조악하게 꿰매져 있었다. 매듭은 울퉁불퉁하고 흉측했지만, 기적처럼 출혈은 멎어 있었다.
"봉합은… 당신이 한 겁니까?"
"손이… 잠시 굳었을 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창백한 손을 혐오스럽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늦지 않았어. 절대로."
기운을 차린 나는 지하실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했다. 그곳엔 수술대가 즐비했다. 그리고 그 위엔 천에 덮인 형체들이 있었다. 이전에 시신으로 착각했던 것들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천을 들췄다.
사람이 아니었다. 복부가 수백 번 갈라지고, 다시 기워진 실리콘 마네킹들이었다. 어떤 것은 봉합선이 너무 촘촘해 마치 흉터로 만든 옷을 입은 듯했다. 광기에 가까운 집착의 흔적.
"혹시라도 또 늦을까 봐."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그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역광 때문에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든 메스의 날카로운 광기만큼은 선명했다.
"이제 움직이지 마세요. 아직 내 치료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가 다가와 내 팔을 움켜쥐었다. 힘은 약했지만, 그 손끝에서 느껴지는 냉기가 소름 끼쳤다. 나는 그를 밀쳐냈다. 난간이 굉음을 내며 울렸다. 계단이 기울고, 시야가 점멸했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진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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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대원이 내 상태를 확인하며 경악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처치가… 좀 전문적이에요. 봉합은 엉망인데… 중요한 혈관은 딱 잡았네요. 이건 보통 사람이 못 합니다."
대원은 장갑을 벗으며 덧붙였다.
"사고 신고도 그 사람이 했습니다. 공중전화로요. 자기 위치는 말 안 하고 당신 위치만 정확히 찍어주더군요."
병실 한구석, 의사는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이불을 어깨까지 뒤집어쓴 채, 말라붙은 피가 묻은 가운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손끝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 진동처럼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를 원망해야 할지, 감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것은 위로도, 용서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은 자가 남겨진 자에게 전하는 최소한의 온기였다.
그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그가 울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흉터를 공유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실을 나서는 내 손끝에는, 그에게서 옮겨온 미세한 떨림이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