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다운 회사를 만들기 위한 작은 선택들
“지금은 울 때가 아니라, 일을 처리해야 할 때 같아요.”
이사 형환의 이 말 한마디가 컨츄리시티즌 HR 제도의 전환점이 됐다. 직원과 이사가 1대 1 면담을 한 후, 직원의 눈이 빨갛게 부어서 나온 사건. 이사는 전형적인 FM 스타일이다.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해결책부터 찾는다. 문제나 실수에 빠져드는 감정보다는 해결을 위한 논리를 설계하는 게 우선인 사람이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히 감정도 가라앉았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대표인 나 역시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다만 해결 이후 직원의 감정을 살피곤 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둘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직 회사 동료로 3년, 그리고 회사를 함께 운영하는 파트너로 다시 4년을 보내고 있지만, 이렇게 비슷한 듯 다른 성향을 가졌다는 건 이 면담 사건을 통해 파악한 새로운 사실이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 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회사는 전부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일 뿐이었다.
이 사건 이후 컨츄리시티즌에서는 암묵적인 두 가지 룰이 생겼다. 이제부터 직원 면담은 대표가 담당하기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직원과 만남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마다 소통 방식이 다르니, 그걸 고려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연차제도에 이은 또 다른 HR 제도, ‘원 온 원’의 탄생이었다.
원 온 원은 한 달에 한 번 진행된다. 나는 직원들과의 식사 주간을 잡아 1대 1로 식사를 한다. 직원들 대부분 처음에는 생경하고, 부담스러워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표와 둘이서 먹는 식사가 편할 리 없을 테니까. 과거 회사의 팀장 혹은 부장과 밥을 먹을 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무래도 일 얘기, 그 이후엔 날씨 얘기. 그리고 어제 본 넷플릭스. 이게 전부였다. 컨츄리시티즌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되게 덥죠? 이제 조금 있으면 시원해지겠죠? 작년에 추웠잖아요.”처럼 백색소음 같은 이야기들로 식사 시간이 가득 찼다. 식사가 조금 늦게 나오기라도 한다면 어색함의 시간은 더 길어지곤 했다.
어색함을 몇 차례 겪은 뒤 대표에게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무조건 대표가, 운영진이 먼저’ 궁금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조금 지겹지만 MBTI는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먼저 물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직원들이 조금씩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성경에서는 천 번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했지만, 직원들의 마음은 그렇게 두드려도 간신히 문고리가 돌아가는 정도였다. 아무튼, 나는 직원들과 수많은 계절을 거친 날씨 얘기를 나눈 뒤에야 직원 간의 관계성을 파악할 수 있었고, T성향의 이사 형환이 알고 보면 직원들의 커피 취향을 잘 외우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컨츄리시티즌의 직원들 역시 원 온 원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원 온 원을 향한 직원들의 환대가 비단 한도 없는 점심식사, ‘특’ 스시 세트를 먹을 수 있어서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또 다른 일상의 작은 선택은 프로그램이다. 흔히들 ‘스타트업’이라면 떠올리는 장면이 있을 거다. 오픈된 회의실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거나, 다양한 업무 툴을 사용하며 트렌디하게 일을 하는 모습들.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좋 모먼트이자 틀림없는 환상이다.
지난 아티클부터 자주 소환하고 있는 배우 박정민의 출판사 무제, 이곳의 이사님이 가장 불편한 점으로 꼽는 건 바로 ‘hwp 파일’이었다. “요즘 아무도 hwp 안 써요”에서 그 ‘아무도’를 담당하고 있는 게 바로 컨츄리시티즌이었다. 새로운 직원들이 입사할 때마다 가장 놀라는 것 역시 문서를 hwp 파일로 공유한다는 사실이었다. 왜 MS워드를 안 쓰는지, 왜 편리한 구글 문서를 두고 한글을 사용하는지 묻는 질문에 나는 박정민처럼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기관은 다 hwp를 써요.” 나라고 워드의 호환성을 모를까, 이사라고 클라우드 용량을 차지하는 hwp를 고수하고 싶을까. 하지만 컨츄리시티즌의 주 고객은 지자체였다. 지역별로 팝업스토어를 기획하고 제안하는 우리 회사의 주 고객층에 맞춰 파일을 제공하는 게 팀이 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이 와중에 컨츄리시티즌만의 색깔을 추가하기도 한다. 늘 hwp 파일을 주고받다가 처음으로 키노트로 만든 결과 보고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아마도 일에 쫓기던 직원이 도저히 hwp 형태에 맞는 보고서를 추가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이미 가지고 있던 키노트 파일에 약간의 첨언을 달아 결과보고서로 제출했고, 나는 그때까지도 키노트 파일이 지자체에서 수용할 수 없는 형식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결과는? 아주 무탈했다. 지자체의 담당자도 키노트 파일이 가진 직관적인 메시지를 이해했고, 상호 간 이해를 기반으로 하니 파일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팀이 조금씩 지자체의 커뮤니케이션을 바꿔가고 있는 건 아닌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기도 했다.
회사의 정체성은 멋진 슬로건이나 화려한 오피스와 브랜딩에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디테일들을 쌓아 컨츄리시티즌만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특’ 스시세트 앞에서 고민을 털어놓는 시간, 기획안은 hwp로 제출하지만 결과보고는 세상 힙한 키노트로 만들어 내는 직원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나하나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선택들이 모여서 컨츄리시티즌의 색깔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팀이 찾은 혹은 여전히 찾고 있는, 회사다운 회사를 만드는 방법이다.
글 | 윤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