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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의 의료인문학] 의술의 향기, 그리고 의료인문학

의학은 인류 역사와 함께 진일보해 왔다. 숱한 질병으로부터의 희생 속에서 피어난 임상경험은 오늘날 의학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세계보건기구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안녕의 완전한 상태라고 ‘건강’을 정의했다. 건강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학은 생명과학이다. 무릇 모든 과학은 철학을 기초로 함은 당연하다. 그래서 태동한 것이 의학철학이다.          



현대의학에 대한 철학적 반성 필요     


의사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그리스의 의성,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배경에는 앞서 언급한 의학철학이 서양의학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 유명한 히포크라테스의 명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사실, 의사의 ‘인생은 짧고 의술은 영원하다’는 의미였다. 의사가 되기 위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당찬 결기와도 같다. 의대를 졸업하던 날, 의료의 윤리적 지침을 읽어 내려가던 내 마음의 다짐도 그러했다.     



오늘날 현대의학은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모든 질병의 퇴치는 요원하다. 환경의 파괴는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 출현을 야기했고 여전히 우린 그들과 투쟁 중이다. 전 인류가 고통 받고 있는 ‘코로나19’가 그렇다. 전염병이 창궐할수록 의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균열되고 있으며 현대의학에 대한 철학적 반성으로 의학철학을 주목하게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제하는 코로나의 역습으로부터 의료인문학이 공동체 재구성에 주요한 단초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의료 인문학'을 주제로 글을 쓰는 배경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철학은 전능한 신께 치료를 간구하는 비현실적인 영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치료 원리로 주창한 사체액설은 모든 질병의 원인은 자연에 있고, 자연에 의해서 인체를 구성하는 4가지 액체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 질병이 생긴다고 보았다. 담즙의 흐름을 원래대로 돌리는 것이 가장 적절한 치료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철학은 현대 서양의학의 기초가 되었다. 일찍이 인간의 면역력이 모든 질환의 가장 효율적 대응이라는 진실에 최초로 다가선 것이다.     



의술의 인문학적 접근은 '인간의 한계 인정하고 극복하는 것'     


히포크라테스 이후 그리스는 2008년 9월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서유럽의 작은 나라였던 그리스는 유로존을 비롯해 국제 사회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여 디폴트 위기에 빠졌다. ‘파르테논 신전’같은 돌덩어리 빼고는 국내외 자산이 각국으로 팔릴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2017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묵직한 이야기이다. 나라의 경제 위기가 일상이 된 세상을 세 편의 각기 다른 자화상으로 그려낸다. 인간의 행복에 대해 근원적 성찰을 안겨주는 잔잔한 풍경은 위기 속에서도 사람에게 희망을 찾는 지혜를 보여준다. 그렇다 인간의 면역은 행복이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사체액설의 정수리라 치환해도 과하지 않을 터이다.     



하나 더, 그리스 문학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니코즈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의사로서의 삶의 좌표를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뿐인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갈 방법에 대해 조르바는 조언한다. 이념과 제도로부터 얽매이지 않고 온전한 자신에 집중하며 불합리한 상황에 당당히 맞서라고 말이다. 조르바의 삶의 태도는 의료현장에서 질곡의 시간들을 헤쳐 온 위로였으며 힘이었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라는 문장은 카잔차키스가 인류에게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함축한다. 그것은 박제된 윤리만이 추구되는 세상에 대한 항변이었을 것이다. 어찌 변하지 않은 가치가 있을 것인가. 변이하는 바이러스를 대하는 현대의학의 경직성은 없던 것일까. 의술이 권위적이지 않아야 될 이유이다.              


 

끈덕지게 우리를 괴롭히는 코로나19도 언젠가는 누그러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남긴 생채기는 곪은 상처의 진물처럼 오래갈 것이다. 백신 개발만이 우리가 해야 될 전부는 아니다. 코로나19로 격리된 사회를 살며 이제 우리는 의술의 휴머니즘의 현주소를 묻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예측대로 생명공학의 발전은 ‘신이 된 인간 Homo Deus'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언할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존재이다. 의술의 인문학적 접근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가장 좋은 치료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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