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버리기
3.1. 술
3.1.1. 에피소드 1
어른들의 막걸리를 조금씩 얻어 마셨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처음 술을 마셨던건 고등학생 때였다. 동네 친구들이었던 중학교 동창들과 텐트와 버너 그리고 김치를 챙겨서 경상북도에 위치한 탑리라는 곳에 캠핑을 떠났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가족들이 아닌 친구들과 떠나는 첫 여행이였다. 장소는 나의 시골, 할아버지 댁이었다. 참 개구쟁이들이 었다. 당시 비둘기(완행) 열차를 타고 세 시간 넘게 도착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계곡으로 향했다. 물고기도 잡고, 수영도 하고, 삼겹살도 구워먹고 재미있게 놀 생각에 밤잠도 설쳤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이런 웬걸 계곡은 정비사업 공사중이었다. 깨끗한 물과 자갈 마당은 흙탕물과 공사 자재로 가득했다. 우리들의 아니 나의 첫 캠핑에 청천벽력 같은 사실만 눈으로 확인되었다. 어쩔수 없이 흙탕물 옆에 텐트를 치고 1박을 하기로 했다. 챙겨온 카세트에 십대가요 테이프를(당시엔 흔하게 길거리에서 살 수 있었다) 틀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놀았다. 삼겹살과 같이 먹을 고추와 깻잎은 근처 밭에서 다 구할 수 있었다. 밤 늦게까지 놀다 피곤에 지쳐 잠들었다. 자갈 돌멩이들을 침대 삼아 등이 참 아픈 첫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우리는 남은 일정까지 망칠 수 없어 가까운 장소를 찾기 시작했고 다행히, 근처 빙계 계곡이 있다는걸 확인하고 버스를 타고 그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도착한 곳은 명소 였다. 물도 맑고, 물고기도 보이고, 근처 과수원에는 사과도 달려있었다. 집을 벗어난 자유로운 마음에 친구들과 저녁에 소주를 마셔보기로 했다. 두세 병을 사서 여럿이서 마시는데 양이 부족해 마지막 한 병은 냄비에 붓고 물과 섞었다. 당연히 맛이 이상해서 모두 버렸다. 그래도 처음 느껴보는 취기가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다. 한층 고양된 기분으로 인근 텐트들을 돌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 대가로 먹을 것들을 한아름 받아 텐트안에 비상 식량으로 챙겨두었다.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며칠전 같이 선명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재미있는 추억이다.
처음 느꼈던 취기를 그렇게 간직한채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대학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주당의 대열에 합류했다.
꽃다운 새내기 시절을 생각하면 따듯한 봄날과 벚꽃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가끔 철 지난 그때 그 시절 노래가 들리면 등굣길의 풍경과 설레던 마음이 아직도 싱그럽게 느껴진다. 4월 어느날은 체육대회가 있었다. 제일 친한 친구 C와 축구 농구를 하고 햇발터(교내 공원)에 쉬는데 한 아름 쌓여있는 술과 음료수 궤짝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우리 둘은 저거다 싶었다. 선배들이 시합과 응원에 열중할 무렵 드디어 때가 왔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둘 중 하나는 땅을 팟고 나머지 하나는 술 궤짝을 구덩이로 옮기기 시작했다. 소주 두 상자, 사이다 한 상자 정도 된 것 같다. 술과 음료수를 땅에 묻고 흙으로 덮었다. 용돈이 아쉬웠던 시절이라 마음이 푸근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도에 해당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 시절이라면 충분히 낭만으로 둘러댈 수 있었다. 우리 둘은 환상의 콤비, 꼭 사이좋은 한쌍의 햄스터 같았다. 거사를 끝내고 미리 챙겨둔 사이다 한 병으로 진하게 우정을 나누었다. 보람이 느껴졌다.
새내기의 여러 모임중 우주회를 내가 창설했다. 비우(雨) 술주(酒) 우주회. 뜻이 맞는 동기들 몇몇이 모여 비오는날 학교 연못 가운데 정자에서 술을 마셨다. 주종을 가리지 않았다. 소주도 막걸리도 좋았다. 안주는 과자 부스러기지만 비가 추적거리는 정자의 풍경은 운치 있는 한 폭의 수묵화였다. 막걸리 한잔에 안주는 새우깡. 빗물에 뻐금거리는 붕어들과도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문제는 맑은 날인데 그때는 하늘의 뜻으로 우주회 참석이 힘들다. 대신 술은 사올 필요가 없다. 소주 두 상자가 저 위 언덕에 다소곳하게 묻혀있다. 등굣길에 삼겹살만 오천원치 사면된다. 사물함은 이미 전공책 대신 버너와 가스가 자리를 차지했고, 도면을 넣을 방창통(화구케이스)에는 언제나 수저 한쌍이 덜그덕 거리며 대기중이었다. 수업은 대출계에(교수님이 출석을 부를 때 한 사람이 목소리를 바꾸며 대신 대답해주는 계) 이미 가입해둔 덕에 교실 뒷문으로 조용히 나와 버너를 챙겨 햇발터로 향한다. 땅속에 묻어둔 도토리를 찾아내어 조금씩 꺼내먹는 다람쥐 같이 땅속에 숨겨놓은 소주와 음료수 몇 병을 꺼내고(꺼내고선 다시 흙으로 잘 덮어 두어야 한다) 등굣길에 사온 삼겹살을 버너에 올리면 여긴 비로소 천국이 된다. 내 나이 스무살 그해 4월은 숨막힐 정도로 잔인한 계절이었다. 소주 몇 잔에 취해 대낮에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면, 식물이 광합성 하는 기분을 느껴다고나 할까? 글로 표현이 힘들 정도로 편안하고 따듯하며 아늑한 기분이었다. ‘마약을 하면 이정도의 충만감을 줄까?’싶을 정도의 기분과 분위기였다.
그 세월에 그 날씨에 그 바람에 그 사람에 그리고 그 순간에 나는 온전히 녹아 내렸다. 햇살을 이불 삼아 평화롭게 잠이 든다. 그렇게 한두시간 자고 일어나면 이제 대학로 입구에 있는 호프집으로 향할 시간이다. 어떨때는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한 두시 부터 호프집 앞에서 사장님 오시기만을 목놓아 기다린다. 얼마나 자주가고 친해졌던지 나는 외상이 가능한 몇 안되는 신뢰할 수 있는 학생이었다. 심지어 군대에서 가끔 휴가를 나올 때도 사장님들이 하나같이 반겨주시고 서비스도 아끼지 않으셨다. 젊디젊은 이십대 초반을 그렇게 술과 사람들과 함께 보냈다.
너무나도 즐거웠던 그 시절.
나는 내가 술을 마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무렵 부터였다.
술이 나를 조금씩 마시기 시작한 것이.
술은 특히나 그렇다. 드라마의 대사처럼 나를 채워준다. 그 순간 만큼은 나를 살린다. 누구나 그렇듯 이십대의 나는 항상 허기졌었다. 나를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가 무척이나 절실했다. 그런 내게 술은 나를 온전히 가득 채웠주었고, 나를 자유케 했다. 우린 서로 궁합이 참 잘 맞았다.
술자리 분위기도 참 좋았다. 술 기운에 평소보다 고양된 기분으로 자신감이 넘쳤다. 친구들와 앞날을 이야기 하며 소주잔을 부딪히는것도 참 좋았다. 내가 살아있음이 순간 순간 느껴졌다. 나를 표현하고, 친구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삶이라는 강에 같이 흘러가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들은 방황스러운 나의 이십대에 큰 위로와 위안이 되었다.
젊음이 무기였던 그 시절엔 때로는 세상과 싸울 만큼 자신도 있었다. 그럼에도 눈에 비친 세상은 커보였고 두려웠으며 어두웠다. 게임 공략집처럼 잘사는 방법이 절실했다.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취직이 간절했다. 틀에 박혀 정형화된 그런 삶이 세상의 전부처럼 보였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 만큼 나는 조급했고 불안했다. 그런중에도 ‘이 길이 맞나? 이 길이 유일한 길일까?’ 하는 눈치없는 고민을 간간히 했다. 역할의 나만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도 잠시였고 내 알맹이는(의식, 주의) 나라는 껍데기(육체) 속에 숨어서 차가운 현실을 두려운 눈으로 멀뚱거릴 뿐이었다.
아버지의 병환, 기울어가는 가세. 들어가는 나이. 불안한 미래. 불확실한 삶.
친구와의 소주 한잔이 나를 채워주던 이십대에 내 인생의 사춘기가 찾아왔다.
그 무렵 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술에 중독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