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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meless Aug 20. 2024

첫 등교

펜션 그리고 시크릿 


첫 등교





지난주 목요일(15일) 서울서 짐을 바리바리 싸서 한 차를 가득 채우고서(카니발이어서 가능했을 것 같다) 강원도 홍천을 향했다. 무더위가 절정을 치달아 자녀들의 표정도 짐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토록 고대하며 준비했지만 막상 닥치니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조금의 두려움과 ‘이미 엎질러진 물 의심하지 말고 잘하는 건 내 몫이야’라는 다짐을 동시에 했다. 다시금 마음속으로 생각을 다잡고 운전대를 잡았다. 













출발하는 날이 하필? 공휴일이었다. 한 시간 사오십분 거리를 세 시간 반이 걸려 도착했다. 누군가에게는 휴가길, 또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시작. 그렇게 고속도로에는 차로 가득했다. 숙소 초입에서 짜장면으로 요기를 하고 펜션에 도착했다. 펜션 사장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곳은 이미 여러 가족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이곳을 거주지로 정한 이유는 그냥 처음부터 끌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사전에 검색했을 때부터 이곳이다 싶었다. 산속이었고, 물이 맑고 공기가 깨끗했다. 무엇보다 전원주택 경험이 전무해 전원주택 임차보다는 펜션 지기 덕분에 관리에 신경을 덜 쓸 수 있는 점도 한몫했다. 도시에서 시골 생활로의 연착륙 지점에 이곳이 있었다. 




밤에 잠이 잘 들고, 푹 잘자면 그 장소가 나에게 맞는 장소라고 했다. 불면증이 조금 있기에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풀벌레 소리가 자연스레 잠으로 끌었다. 첫날은 직장생활 때보다 조금 이른 기상을 해서 산책을 했다. 평소 꼭 습관들이고 싶었던 어씽을 하면서 스트레칭도 하고 호흡 명상도 했다. 머릿속은 그간의 습관 덕에 잡념이 따라붙었지만, 가급적 자연 속에 온전히 머무름을 택했다. 





며칠의 적응 기간을 거쳤고,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둘째와 토마토와 오이를 땄다. 감사하게도 사장님께서 편하게 따가라고 몇 번이나 말씀을 주셨다. 이 또한 우리 ‘복’이다. 사과, 바나나, 양배추, 토마토, 브로콜리를 넣은 해독주스와 견과류 그리고 삶은 계란으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스쿨버스가 올 때까지 둘이서 재잘거리며 강아지들과 놀았다. 이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산골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날까지도 여러 가지가 고민이 되었다.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라 거주민인데 아파트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의 사생활 보장이 필요했다. ‘펜션은 사람들이 북적대니 시끄럽지는 않을까?’란 생각과 반대로 ‘평일은 사람이 없어 너무 적막하지 않을까? 특히 밤에는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이 적응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 추위는 어떻게 견딜까?’ ‘이웃 주민들에게 먼저 인사를 드려야 하나?’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걱정은 기우였다. 사람들이 북적대니 자녀들끼리 금세 친해져 같이 수영을 하고 놀았고, 어두운 밤 덕분에 별과 달이 빛났으며, 가벼운 목례에 이웃한 할머니께서 고추를 한 아름 답례로 주셨다. 역시 두려움은 직면하는 게 제맛. 직면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망상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아빠와 함께하는 좌충우돌 농촌유학. 어떤 일이건 걱정은 조금 내려놓고, 직면하는 일상은 차분하고 성실하게 해결해 나가야겠다. 새소리와 물소리에 그간 급하게만 살아왔던 마음과 영혼의 긴장이 조금씩 누구러든다. 







- 시크릿 -





A4지에 여섯 가지 다른 사진을 넣어 평소에 꾸준히 심상화를 한다. 십여 년 정도 된 것 같다. 지방을 갈 때처럼 특별할 때 빼고는 대체로 꾸준히 챙긴다. 내가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여섯 가지이다. 그중에 한 장면이 전원주택 사진이다. 전원주택의 유유자적한 자연 친화적인 삶. 더불어 어씽이나 약초, 침, 뜸처럼 대체 요법에도 관심이 많다. 물론 관심만 많지 관련된 지식은 전혀 없다. 따로 배운 적이 없다.





학교 측에서 몇몇 곳의 숙소를 소개해 주었다. 거주지를 정할 때 홍천 시내의 아파트나 오피스텔도 있었지만 애초에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힘들게 얻은 기회이니 자녀들과 나에게 농촌 혹은 산촌 생활을 온전히 경험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달 전에 학교 면접을 한날 이곳을 택해 하루를 묵어갔다. 













처음 방문을 했는데 내가 평소 심상화하던 전원주택과 참 많이 닮아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씽길이란 푯말도 보였다. 펜션지기와 대화 중에 기회가 되면 약초도 같이 캐러 가자고 말씀을 주셨다. 쑥뜸도 하셨다. 고민할 필요 없이 이곳이 나의 거처였다. 신기할 만큼 나의 꿈과 일치했다. 역시 사람은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된다. 내가 창조자였던 것이다. 꾸준한 심상화로 나머지 다섯 가지도 이뤄가야겠다. 




오늘은 새벽에 버섯을 채취하러 갔다 오셨다며 10년이 넘은 더덕을 캐오셔 함께 나누어 먹었다. 몸에 힘이 솟는듯하다. 




이곳에서 속세의 때를 벗어내고 제2의 인생을 위해 몸과 마음의 쇄신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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