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에 대하여

긴장과 이완의 리듬 속에서

by diogenes

생명력에 대하여~

우리는 흔히 生命力을 중력을 이기는 힘으로 이해한다. 아래로 끌어당기는 조건과 관성, 나이와 피로, 체념과 타협을 거슬러 위로 나아가려는 의지. 삶은 그렇게 저항할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이해는 특히 성장과 성취가 삶의 기준이 되는 시간에 강해진다. 멈추는 것은 곧 퇴보로 여겨지고. 이완(弛緩)은 나태와 동일시된다. 그래서 생명력은 끊임없는 긴장(緊張) 속에서만 확인된다. 살아있음은 항상 조여있는 상태로 경험된다. 그러나 이 정의는 생명력의 단면에 불과하다. 긴장은 분명 생의 표지지만, 지속되는 긴장은 곧 소모로 전환된다. 긴장이 더 이상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삶은 활력을 잃고 단지 버팀으로 남는다. 이것은 생명력이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된다. 여기서 생명력을 다르게 사유할 필요가 생긴다. 생명은 본래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운동(運動)이다. 심장은 수축과 이완의 반복을 하며 뛰고, 호흡은 들숨과 날숨의 교대 속에서 이어진다. 어느 한쪽만 자속 되면 생명은 즉시 중단된다. 삶 역시 이 리듬(rhythm)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니체가 말한 생의 힘 역시 단순한 상승이나 팽창이 아니었다. 그에게 삶은 긴장과 해소의 운동이며, 자기 소진 없이 다시 긴장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웠다. 이는 강(强)함의 철학이 아니라 회복(回複)의 철학이다. 즉 생명력은 긴장과 이완 사이를 오갈 수 있는 탄성(彈性)에 있다. 이 탄성이 유지될 때 삶은 균형이 되고 균형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갱신(便新)된다. 삶이 살아 있다는 감각은 바로 이 ‘갱신의 리듬’에서 발생한다. 청춘의 생명력이 성장과 돌파라면 성숙한 생명력은 지속과 조율이다. 더 멀리 가는 힘이 아니라 잃어버리지 않고 가는 힘이다. 이제 생명력은 증명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유지해야 할 리듬이 된다. 이에 비로소 삶은 조급함을 잃고 사유는 과잉을 벗는다. 내일이면 새해가 온다. 새해 우리들에게는 늘 생명력이 함께 하길 소망한다~


2025 12.31 오후. 한 해를 보내고,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獨楽齋에서 幽人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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