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안사(老而安死)

불몽(不夢)

by diogenes

老而安死~ 不夢

어떻게 사느냐가 나에겐 어떻게 죽느냐와 함께 생의 한순간에도 잊히지 않는 화두이다. 어떻게 사느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동안의 공부와 경험으로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해답을 얻었고 그 해답을 기반으로 추론하여, 어떻게 죽느냐에 대한 해답도 추상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어떻게 사느냐의 끝과 내용이 어떻게 죽느냐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 살았느냐가 어떻게 죽는가를 결정한다는 추론이 가능하지만, 어떻게 죽는가에 구체적이고 확실한 지표는 발견치 못한 막연한 추측이었다 그래서 내가 깨어있을 때 사는 삶에 대한 부분(의식세계)에 있어서는, 늘 행동과 생각의 반성과 후회 또는 자협의 반복으로 검정하고, 후회보다 자협(自慊-스스로 만족함)이 많아지면 충만하고 행복한 삶이 된다. 하지만 무의식의 삶에 있어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 들지만, 무의식의 세계는 의식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무의식이 의식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의식의 세계는 의식의 세계의 또 다른 결과이다 그러니 무의식의 세계는 의식세계의 경험과 기억의 소산이다. 따라서 내면적 삶의 완성은 의식세계는 물론 무의식의 세계에서의 완전한 자유의 성취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것이 절대적 자유를 의미한다. 무의식 세계에서의 자유의 척도는 꿈이다. 따라서 꿈에서의 자유는 무의식에서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 말은 곧 꿈을 마음대로 꿀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불농(不夢) 즉 의식의 숨김이나 회피로 무의식이 되어버린 콤플렉스가 꿈에서 더 이상 현상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완전한 자유, 즉 내면적 완성의 지표를 우연히 장재집을 읽으며 공자의 이상적인 죽음의 형태 (老而安死 不夢周公)에서 발견한 것은 나에겐 대단한 행운이다.꿈은 무의식의 표현이며 의식세계에서의 결핍과 원망과 열등감 억압당한 것 등이 주된 소재이다. 따라서 불몽(不夢), 즉 꿈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란, 의식세계의 결핍 원망 열등감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의 완전한 해소와 극복, 나아가 내면적 완성의 성취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죽음이란 늙어서 죽음에 이르렀을 때 의식과 무의식의 일체에 얽매임 없는 절대적 자유를 누리며 편안하게 가는 것이다. 老而安死의 필요충분조건은 楽道(락도)와 慎獨(신독)이다.


2025 3월 初, 봄이 옴을 느끼며~

獨楽齋에서 幽人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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