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괜찮은 거지?
스마트폰 화면이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새벽 6시, 알람 소리보다 먼저 나를 깨운 건 차가운 카드 결제 문자였다. 'OO학원 450,000원 결제'. 잠결에도 손가락은 익숙하게 메시지를 지운다. 뒤이어 날아오는 아파트 관리비와 가스요금 고지서 문자들. 25년 차 직장인인 나의 하루는 이렇게 누군가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월급날은 이제 설렘의 대상이 아니다. 숫자가 통장에 머무는 시간은 채 10분이 되지 않는다. 통장은 그저 숫자들이 잠시 기착했다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흩어지는 환승역 같다. 주택담보대출 이자, 노부모님의 병원비, 아이의 입시 학원비, 그리고 끝을 모르고 치솟는 물가에 맞춘 식비까지. 이 거대한 경제적 흐름 속에서 내 월급은 마치 마른 논에 뿌려지는 한 바가지의 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문득 책상 위에 놓인 가계부를 펼쳐보았다. 블로그에 정보를 정리하기 위해 꼼꼼히 기록하기 시작한 데이터들이 빼곡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수십 개의 지출 항목 중 어디에도 '나'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의 영어 실력을 위해서는 수십만 원을 고민 없이 결제하면서도, 정작 내가 읽고 싶은 책 한 권, 배우고 싶은 취미 하나를 위해서는 만 원 한 장 쓰는 것도 몇 번을 망설인다. 낡은 구두 뒷굽이 닳아 걸음걸이가 뒤틀려도 "아직 한 철은 더 신겠지" 하며 구두방 앞을 지나친다. 내 인생의 황금기를 바쳐 벌어들인 이 수익의 주인은 누구일까. 나는 그저 이 돈을 배달해 주는 배달부일 뿐일까.
대한민국의 50대 가장으로 산다는 것은 '나'라는 자아를 지워 가계부의 '공백'으로 남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 나이 또래들이 모이면 약속이나 한 듯 주식 종목과 부동산 대책을 논한다. 하지만 그 뜨거운 토론의 끝에는 결국 "자식들 뒷바라지 다 하고 나면 우리에겐 뭐가 남을까" 하는 쓸쓸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는 그 끼인 세대의 숙명을 경제적 수치로 증명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다시 넥타이를 매고 지옥철에 몸을 싣는다. 비어있는 가계부의 '나'라는 칸은, 역설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삶을 채우고 있다는 훈장이기 때문이다. 내가 구두 뒷굽을 아끼는 만큼 내 아이의 꿈이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다면, 내가 점심값 2천 원을 아끼기 위해 편의점을 기웃거리는 만큼 내 아내의 장바구니가 조금 더 풍성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가장의 경제학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다만, 가끔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다. "너는 괜찮냐"고. 52세, 인생의 하프타임을 지나 종착역을 향해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돈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숫자로만 가득 찬 가계부 이면에 숨겨진, 우리 시대 가장들의 뜨겁고도 시린 속마음을 말이다.
오늘 퇴근길엔 나를 위해 3천 원짜리 붕어빵 한 봉지를 사야겠다. 가계부에는 차마 적지 못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아주 작은 사치를 부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