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태명은 듣지 못했고 미처 이름은 받지 못했다. 나는 한 여인의 자녀로 세상에 태어났고, 불렸다. 그것은 무척 편안하고 또 안전하게 나의 탄생을 증명해 주었다.
2년이 흘러, 나와 같은 명찰을 단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는 이미 이름도 있고 심지어 아명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최민혁의 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철이 없어 그 이름의 무게를 몰랐고, 어린 소년은 동생과 함께 사고를 치거나 자주 싸웠다. 그 이름은 내게 질투와 분노의 감정을 처음 가르쳐 주었고, 잘못을 빌고 화해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그렇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름 중 하나가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나의 이름을 알고, 부모님을 알고, 또 누군가의 형임을 아는 친구의 부모님은 나를 [반장]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은 처음으로 내게 책임감을 가르쳤다. 또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차분하게 말하는 재주를 길러 주었다. 내가 가졌던 가장 짧고 무거운 이름이다.
대학교에 가서는 주로 MT를 가거나 술을 마셨다. 이따금 노래를 하거나 시위 현장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때 나는 [05학번 대학생]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 이름은 지금껏 내가 알던 것들이 보잘것없음을 가르쳤고, 세상에는 다양한 소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우주를 탐험하는 것이 너무 좋아 술자리를 끊지 못했다.
그렇게, 학점을 망치고 나는 군대에 갔다.
그곳에 가서는 자꾸자꾸 바뀌는 이름을 받았다.
[훈련병-이병-일병-상병-병장]
밖에 나와서는 그 이름이 너무 싫어서 떼었다 붙이기도 하고, 가끔은 소리도 질렀다. 하지만 그곳의 이름표도 내게 무언가를 남겼다. 불편한 사람들과도 잘 살아내는 용기.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인내의 마음이었다. 모두가 힘들 때 누가 진짜 값진 사람인지 드러난다는 지혜도 일러주었다. 그곳에서 배운 슬기로 나는 내 주변을 조금 더 따듯하게 채울 수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직장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곧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최대리]
이제 직급은 사라졌고 모두가 수평적인 문화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성과 직급을 함께 불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과, 거기에는 따로 옳고 그름이 없다는 진실을 천천히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음을 나는 매일 또 매일 배웠다.
아! 사람은 성실하게 일을 하고 보상을 받아 살아간다는 단순한 세상의 이치도 깨우쳤다. 새 이름이 가르쳐 준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 [누군가의 아빠] 또 [누군가의 할아버지]
혹은 아직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내 가슴에 달렸던 명찰들을 하나씩 꺼내어 읽어본다. 마음속에서 묻는다.
넌 이름이 뭐니?
높을 최, 옥돌 민, 클 석. 훌륭한 선비가 되라는 뜻을 담아 할아버지는 내 첫 이름을 지어주셨다. 하지만 이후로도 내 이름은 계속 늘어만 갔다. 그때마다 난 그 명찰들을, 학생증을, 군번줄을, 명함을 미처 버리지 못하고 서랍 속에 차곡차곡 모아 왔다. 마치 훈장처럼 모여있는 작은 증거들 속에 최.민.석. 세 글자가 미처 담지 못한 내가 들어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머리가 복잡한 날이면 나는 그 서랍을 열어본다. 그곳에는 지나간 내 도전과 실패가 가감 없이 담겨있어 나를 한결 편안하게 해 준다. 내 작은 역사서는 '새로운 이름'이 언제나 '새로운 가르침'과 함께 '나'를 만들어왔음을 고백한다. 아마 나는 명찰 모으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