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와 시작
순애가 여섯 살이던 해 가을, 아버지의 부음이 바다 건너서 도착했다. 일본 오사카의 메리야스 공장에서 평생일을했던 아버지는 처음엔 새벽부터 밤까지 실과 바늘로 가족의 미래를 짜맞추던 사람이었다. 그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깎이고, 냄새나는 돼지우리 옆에 판잣집에서 잠을 청했지만, 매달 고국의 아내와 딸에게 송금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 후 아버진 일본에서 자수성가한 조선인이 되었다. 순애는 아버지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그가 보낸 편지 속 글씨가 매우 단정하고 깔끔했던 것, 그리고 마지막 편지에 '순애야, 아버지가 곧 돌아간다'는 문장이 있었던 것만은 기억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둘째 부인이 된 일본 여자가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유산 문제였다는 말도 있었고, 그 여자가 조총련 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진실은 바다에 묻혔고, 어머니는 일본에 가서 그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버지의 유골함을 가지고 오셨다. 아버지와 함께 일본에 남았던 오빠는 북송선을 탔는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했다. 가끔 오빠가 순애를 위해 색연필도 보내주고 맛있는 것도 보내주어 순애는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
어머니는 순애의 손을 잡고 대구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덜컹거렸고, 순애는 차창에 이마를 대고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들판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고, 가을볕은 따갑게 쏟아졌다. 그날 이후 순애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사는 대구의 집, 마당 한가운데에는 백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감나무가 서 있었다. 가을이 되면 그 나무에는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순애는 할머니와 함께 그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들곤 했다. 할머니는 순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감은 말이다, 서두르면 떫어. 천천히, 오래오래 익혀야 달콤해지는 거란다." 그 말의 의미를 순애가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순애가 열네 살이 되던 해,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는 사흘 밤낮을 쏟아부었고, 뒷산의 흙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순애는 그날 밤, 안채 대들보가 꺾이는 소리를 들었다.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숨을 거두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집의 절반은 진흙에 묻혀 있었다. 감나무만이 간신히 서 있었지만, 뿌리가 드러나 있었다. 어머니는 그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순애는 어머니의 갸녀린 등을 바라보았다.
결국 어머니와 순애는 광주로 이사했다. 낯선 도시, 낯선 사투리, 낯선 학교. 순애는 전학 첫날, 교실 뒤편 구석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녀를 힐끔거리며 수군거렸다. "대구에서 왔대." "아버지가 일본에서 죽었대." "집이 무너졌대." 순애는 그 시선들을 견뎌냈다. 그리고 며칠 후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물었다. "혹시 노래 부를 수 있는 사람?" 순애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아이들이 웅성거렸지만, 순애는 단상에 올라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다. 〈고향의 봄〉이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목소리는 맑고 또렷했고, 교실은 고요해졌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날 이후 순애는 더 이상 '낯선 아이'가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가을, 순애는 학교 합창부에 들어갔다. 합창부는 방과 후 음악실에 모여 연습했고, 순애는 소프라노 파트를 맡았다. 지휘자는 중년의 음악 선생님이었는데, 순애의 목소리를 듣고 말했다. "자네 목소리는 슬픔을 담고 있어. 그게 자네의 무기야." 순애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노래하는 동안만은 아버지도, 무너진 집도, 슬픔도 없었다.
그해 겨울, 합창부는 지리산으로 수련회를 갔다. 버스는 산길을 올랐고, 아이들은 노래를 불렀다. 순애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산은 깊었고, 하늘은 맑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순애는 준서를 만났다. 그는 남자 중학교 합창부 학생이었고, 키가 크고 눈빛이 맑은 소년이었다.
수련회 마지막 날, 합동 공연이 열렸다. 남녀 합창부가 함께 무대에 올라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순애와 준서는 나란히 서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겹쳤다. 노래가 끝난 뒤, 준서가 말했다. "목소리 참 좋네요." 순애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사랑과 상처
봄이 왔다. 광주의 봄은 화사했다. 벚꽃이 흩날리고, 개나리가 피어나고, 아이들은 교복 재킷을 벗고 다녔다. 순애는 중학교 삼학년이 되었지만, 고등학교 진학은 불투명했다. 어머니는 논밭을 조금 가지고 있었지만, "여자는 많이 배우면 못쓴다." 어머니의 말은 단호했다. 순애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밤마다 창밖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배우고 싶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그때 준서가 나타났다. 그는 순애의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기억하세요? 지리산 수련회 때." 순애는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준서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날 이후로 계속 생각났어요. 용기 내서 찾아왔습니다." 순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뻤다. 그들은 함께 걸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천천히. 준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7남매의 장남이었고, 아버지는 노름을 하시다 얼마전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매우 신경질적이라고 했다.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은 꿈도 못 꿉니다. 그래도 일하면서 공부는 계속하려고요." 순애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는 자신과 닮아 있었다.
여름이 왔다. 합창부 친구들이 다시 지리산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순애와 준서도 함께 갔다. 그들은 산길을 올랐고, 폭포 앞에서 쉬었다. 물소리가 시원했고, 햇살이 부서졌다. 그날 오후, 일행은 길을 잃었다. 안개가 갑자기 내려왔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순애와 준서는 일행과 떨어졌다. 그들은 손을 잡고 길을 찾았지만,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산속 작은 폐가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순애는 떨고 있었다. 추위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 준서는 그녀를 안았다. "괜찮아요. 제가 지킬게요." 순애는 그의 품에서 울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들은 서로를 안았다. 그것은 사랑이었고, 동시에 절망이었다. 순애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 안개가 걷히고 그들은 길을 찾았다. 일행은 그들을 발견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순애는 말을 잃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 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무슨 일이니?" 순애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 후 순애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
준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합격을 하였다. 어머니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논밭 한 뙈기를 팔아서 준서의 대학 등록금을 대주기로 한 것이다. "공부해라. 그리고 내 딸을 행복하게 해라." 준서는 눈물을 흘렸다. 순애도 울었다. 그들은 어머니 앞에서 절을 했다.
준서는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금은방집 애들 과외를 했다. 순애는 아이를 키우며, 재봉틀 학원에 다니며 기술을 배웠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다. 순애는 준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은 꼭 성공해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어요."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준서의 어머니가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순애를 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은 대학까지 나온애에요." "당신 같은 여자들이 우리 아들의 장래를 망치고 있어요. 집안도 변변찮고, 중학교밖에 안나온 주제에." 순애는 울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준서는 군대에 갔다. 입대 전날, 그들은 마지막으로 만났다. 기차역에서. 순애는 그에게 편지 한 뭉치를 건넸다. "매일 쓸게요. 당신도 답장 주세요."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차가 출발했다. 순애는 플랫폼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기차가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혼자 남은 플랫폼에서, 순애는 주저앉아 울었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차가웠다.
삶의 추락과 헌신
준서가 없는 이 년은 순애에게 견딤의 시간이었다. 그녀는 재봉틀 공장에서 일했다. 아침 부터 밤 늦게까지, 미싱을 밟았다. 그리고 밤마다 준서에게 편지를 썼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얼마나 그리운지.
준서의 답장은 가끔 왔다. 군대 생활은 힘들지만, 순애와 아이생각을 하면 견딜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제대하면 바로 순애를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순애는 그 편지를 가슴에 품고 잠들었다. 하지만 어느 날, 편지가 끊겼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순애는 불안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녀는 준서의 부대로 편지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석 달 뒤, 순애의 집 앞에 준서의 어머니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순애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우리 아들이 군대에서 큰 사고를 쳐서 영창에 갇혀있대. 다 너때문이야. 순애는 얼어붙었다. "그게 무슨…". "이제 그만 포기해 우리 아들 인생 망치지 말고." 준서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순애는 무너졌다. 그녀는 공장을 쉬고, 방에 틀어박혀 울었다. 어머니가 문을 두드렸다. "순애야, 나와라. 밥이라도 먹어라." 하지만 순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로부터 육 개월 뒤, 준서가 제대했다. 그는 순애를 찾아왔다. 수척한 얼굴, 깊게 패인 눈. 그는 순애를 보자마자 순애를 끌어 안았다. 그들은 울었다. 오래, 오래.
준서는 순애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다. 군대에서 선임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반항했고, 그 결과 영창에 갇혔다고. 어머니가 면회도 오지 않았고, 편지도 전달되지 않았다고. "어머니가 당신을 포기시키려고 한 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아요." 순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서는 이름있는 전자회사에 취직했다. 스마트한 준서는 순탄하게 승진하여 과장이 되었다.
일 년 뒤,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딸이었다. 아이는 순애를 닮아 눈이 크고 이뻤다. 준서는 딸을 보며 웃었다. "우리 공주님." 그들은 행복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준서는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동시에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돈이었다. "이번에는 확실해. 내가 정보를 얻었어." 순애는 불안했지만, 남편을 믿었다. 하지만 주식은 폭락했다. 준서는 손실을 만회하려고 더 큰 돈을 걸었다. 그리고 또 잃고 또 잃었다. 빚이 늘어만 갔다.
순애는 임신 중이었다. 네째였다. 그녀는 배를 안고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하세요. 우리 이렇게라도 살아요." 하지만 준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번에 만회할 수 있어. 조금만 더. 난 반드시 돈을 벌어서 애들에게 대궐같은 집을 지어줄거야" 순애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준서는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주식 투자로 업무에 소홀했다는 이유였다. 순애는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 "이제 어떻게 해요. 애들은 어떻게 키워요." 준서는 술을 마셨다. 매일 밤, 그는 취해서 돌아왔다. 순애는 술 냄새를 맡으며 남편을 이불위에 눕혔다. 그리고 부엌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순애는 결심했다. '내가 벌어야 한다.' 그녀는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김밥, 순대, 닭발, 곱창, 오뎅국물, 소주 등을 팔았다. 겨울에는 손이 얼었고, 여름에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은 다섯이 되었다. 순애는 출산 후 일주일 만에 다시 포장마차로 나갔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이들은 굶길 수 없었다.'
준서는 점점 더 술에 빠졌다. 그는 밤마다 술을 마시고, 때로는 순애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모두 잘 되게 해주려고 한거야" 순애는 맞받아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남편의 구토물을 닦아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준서는 알코올중독이 심해졌다. 그는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순애는 병원비를 벌기 위해 포장마차 외에 낮에는 식당 설거지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큰딸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녀는 공부를 잘했고, 선생님은 대학 진학을 권했다. 하지만 순애는 말할 수 없었다. '대학은 꿈도 꾸지 마라'는 말을. 대신 그녀는 딸에게 말했다. "공부해라. 엄마가 뭐든 해줄게." 딸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애는 그날 밤, 포장마차에서 혼자 울었다. '이 아이만큼은 내 인생을 반복하게 할 수 없어.'
아이들은 자랐다. 다섯 명 모두 순애를 닮아 착했다. 그들은 어머니의 고생을 알았고, 절대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큰딸은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갔다. 둘째 아들은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낮에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준서가 쓰러졌다. 간경화였다. 의사는 말했다. "길어야 육 개월입니다." 순애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준서는 가늘게 눈을 뜨고 순애를 보았다. "미안해…" 순애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이제 쉬어요." 준서는 눈물을 흘렸다. "당신을… 행복하게 못 해줘서…" 순애는 그의 손을 꼭 쥐었다.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제 행복이었어요."
준서는 한 달 뒤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조촐했다. 아이들은 모두 모였고, 순애는 영정 앞에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 준서는 젊었다. 스물다섯의 청년. 맑은 눈빛. 순애는 그 얼굴을 한참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수고했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 그녀는 울지 않았다. 눈물은 이미 다 말라버렸다.
익어가는 영혼
남편이 떠난 뒤 십 년이 흘렀다. 순애는 일흔이 되었다.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허리는 구부정했다. 하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맑았다. 그녀는 이제 작은 반찬 가게를 운영했다. 김치, 장아찌, 나물. 손님들은 순애의 반찬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사장님 손맛이 최고예요." 순애는 웃으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정성이지."
은행원인 큰딸이 첫 손주를 낳았다. 순애는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분만실 간호사가 아기를 안겨주었다. "할머니, 건강한 손녀예요." 순애는 작은 생명을 품에 안고 기뻐서 떨었다. "아가야, 너는 행복하게만 살아라. 이 할미가 지켜줄게."
손주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순애의 집은 명절이 되면 북적였다. 아들딸들과 손주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었다. 순애는 아들과 딸들의 평안한 얼굴, 손자 손녀들의 웃음소리, 며느리들이 설거지하는 소리.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순애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게 내가 바랐던 거였구나.'
어느 날, 큰딸이 물었다. "엄마,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 뭐든 해드릴게요." 순애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몽골… 가보고 싶어." 아이들은 놀랐다. "몽골이요? 왜요?" 순애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티비에서 봤는데, 거기 끝없는 초원이 있더라. 하늘이 정말 맑고, 바람이 자유롭게 부는 곳. 한번 가보고 싶어."
아이들은 계획을 세웠다. 다섯 가족, 총 십오 명이 함께 몽골로 가기로 했다.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하고, 일정을 짰다. 순애는 그 준비 과정을 보며 가슴이 벅찼다. '내가 이런 날을 맞을 줄이야.'
출발 전날 밤, 순애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아버지, 무너진 집, 준서, 포장마차, 아이들.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녀는 중얼거렸다. "나는 잘 살았나."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순애는 알고 있었다. 정답은 없다는 것을.
드디어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내렸다. 나무들이 안보이는게 신기했다. 대신 언덕마다 푸른잔디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잔디에 큰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루동안에 사계절이 펼쳐쳤다. 그래서 거리에 사람들의 옷차림은 봄,여름, 가을, 겨울이 다 썩여 있었다. 키크고 노란머리의 백인,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고 얼굴이 감자같이 생긴사람, 정말 너무 다양해서 미국인것처럼 느껴졌다. 조금있으니 귀가 먹먹해졌다. 울란바토르의 고도가 높아서였다. 그리고 밤 11시나 되어서야 도시가 어두컴컴 해졌다. 다음날 말경주 대회가 있다고 하여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한 시간 이상 교외로 달렸다. 차에서 내려 언덕배기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끌고와 달리는 장면을 구경했다. 달리는 말발굽소리와 일어나는 먼지 그리고 그 사람들의 함성은 큰 장관이었다.
끝없는 초원, 푸른 하늘, 하얀 구름. 순애는 초원 한가운데 서서 두 팔을 벌렸다. 바람이 불어왔다. 습도가 하나도 없는 상쾌한 바람이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저녁이 되자, 가족들은 게르(몽골인이 사는 천막집) 앞에 모여 몽골분이 말똥 말린것에 돌을 구워 양고기 내장에 넣고 굽는 동안 말젖으로 만든 요거트를 먹었다. 먹고난 그릇을 씻으려고 했는데, 선량하게 생긴 주인은 오래된 책을 북북 찢어서 한장씩 주며 먹은 그릇을 닦으라고 하였다. 이것이 설저지였다. 하긴 징키스칸은 전쟁시에 수천개의 수레에 어마어마한 궁전을 실어 옮겨 다녔는데, 만일 군병이 빨래를 했다간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그 만큼 물이 귀했다고 한다. 그러니 설거지도 이렇게 하는것이 이들에겐 맞는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손주들은 노래를 불렀다. 순애는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큰딸이 물었다. "엄마, 행복하세요?" 순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 행복해."
밤이 깊어갔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졌다. 순애는 게르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반짝였다. 그녀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여보, 우리 보고 있어요? 우리 애들 다 컸어요. 손주들도 이렇게 많구요. 당신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바람이 불었다. 순애는 그것이 준서의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순애는 일찍 일어나 혼자 산책을 했다. 광활란 초원은 고요했다. 잔디에 이슬이 맺혀 있었고, 해가 천천히 떠올랐다. 순애는 걸으며 생각했다. ' 사랑이란 게 참… 익는 데 오래 걸리더라.' 그녀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감은 천천히 익혀야 달콤해진다고. 그 말이 이제야 이해됐다.
집으로 돌아온 뒤, 순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반찬 가게를 열고, 손님을 맞고, 저녁에는 산책을 했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졌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에 매달리지 않았다. 아버지도, 무너진 집도, 준서의 술도, 포장마차의 고된 밤들도. 모든 것이 이제는 '그저 그런 일'이 되었다.
어느 가을날, 순애는 동네 공원에 앉아 있었다. 감나무 한 그루가 공원 한가운데 서 있었고,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순애는 그 감나무를 보며 미소 지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할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바람이 불었다. 순애는 벤치에 앉아 그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한 할머니가 다가와 앉았다. "날씨 참 좋죠?" 순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요." 할머니가 물었다. "손주들 자주 보세요?" 순애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자주 봐요. 애들이 자주 와요." 할머니가 부러운 듯 말했다. "좋겠네요. 자식 잘 키우셨네요."
순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잘 키운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사랑했을 뿐이에요."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감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순애는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걸으며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어머니,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어요. 고맙습니다."
그날 밤, 순애는 일기를 썼다. 그녀는 평생 일기를 쓰지 않았지만, 몽골에서 돌아온 뒤 시작했다. 낡은 공책에, 연필로, 그날 있었던 일을 적었다. 오늘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살아 있어서 행복하다. 사랑했고, 사랑받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일도 해가 뜬다면, 나는 다시 웃을 것이다.
순애는 공책을 덮고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눈물 한 방울이 베개를 적셨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