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by yina


시절 인연

파리해진 거리를 지나 당신은
느릿느릿 꾸물 꾸물 나에게 걸어온다
언젠가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회상 하리라
몹시 흥분한 도시의 몽롱함에 합류했던
잊혀진 것들에 대하여


벽에 비친 보리수 나뭇잎들의 그림자
긴 발톱으로 저 멀리 떨어져가는 별들도
가로등 불빛 아래 맥주의 주황빛 냉기
희귀한 언어를 번역하는 능력자처럼
너의 언어와 눈빛이 번역되던 나의 줄기찬 심장도
이제 그 몽롱함은 투명하게 용해되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릿한 복사본처럼
지구는 돌아간다


외로이 거리를 떠돌던 타잔과 아담은
맨발 끝으로 올라오는 회색빛 습진에 괴로워하며
이 폐허속을 걸어간다
나는 그런 외로운 사내들의 어깨를 껴안는다
만물이 위태로이 하늘거리는 지도 모르고



09 02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