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습관이 되기까지의 어려움

꾸준함의 벽 앞에서

by 노멀휴먼

나는 초등학교 이후 일기를 거의 쓰지 않았던 사람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다시 기록을 시작했는데,

펜 대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키보드 위에서 시작된 일기는 내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적어야 할지 막막했다.

빈 메모장 화면은 종이보다 더 차갑고 텅 빈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 공백을 채우는 일은 내 마음의 공백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처음 며칠은 열정적으로 썼지만 금세 흐름이 끊기곤 했다.

업무에 치이고 피곤하면 컴퓨터를 켜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꾸준히 한다는 것은 시작보다 훨씬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딱 세 줄만 쓰자’라는 목표를 정했다.

긴 글이 아니어도, 오늘 있었던 일 하나만 남기기로 했다.

그 작은 다짐이 기록을 다시 이어가게 했다.


하지만 꾸준함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연속으로 쓰던 기록이 하루만 비어도 그 흐름이 쉽게 끊겼다.

꾸준함은 길게 달리는 힘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완벽하게 쓰려는 욕심을 내려놓았다.

잘 쓰는 글보다 ‘남겨두는 흔적’ 자체가 더 중요했다.

기록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로 쓰다 보니 손으로 쓸 때보다

훨씬 빠르게 생각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머릿속의 조각들이 그대로 자판 위에서 문장이 되었다.

속도는 편리했지만 때로는

감정이 충분히 가라앉기 전에 흘러가기도 했다.


디지털 기록은 저장과 검색이 편리했다.

몇 년 전의 기록도 단번에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편리한 탓에

‘흘려 쓰고 금세 잊어버리는 습관’도 생겨났다.


꾸준히 쓰기 위해 나는 나만의 의식을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노트북을 켜고,

조용한 음악을 틀고 기록하는 시간을 정했다.

습관은 결국 ‘나만의 리듬’을 만드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종종 멈췄다.

출장이나 야근 같은 변수가 흐름을 끊어놓곤 했다.

꾸준함은 결국 ‘멈춤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힘’이었다.


때로는 억지로 쓰는 날도 있었다.

쓸 게 없다는 투정조차 그대로 메모장에 적었다.

그 불완전한 기록들이 쌓이며 나의 일기가 완성되었다.


꾸준함은 화려한 글을 쓰는 능력이 아니었다.

때로는 단 한 문장만 적고 끝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한 문장이 모여 내 삶을 증명해 주었다.


기록을 이어가면서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텍스트 속의 나는 종종 낯설었지만 동시에 진짜 나였다.

꾸준한 기록은 나 자신을 마주하는 거울이었다.


벽을 넘는 방법은 크고 완벽한 글이 아니라 작은 흔적이었다.

큰 글을 쓰려할수록 부담만 커졌다.

짧고 가벼운 기록은 오히려 오래 이어졌다.


꾸준히 기록을 쓰다 보니 어느새

‘쓰지 않으면 허전한 습관’이 되었다.

치아를 닦지 않으면 불편한 것처럼, 일기를 빠뜨리면 마음이 공허했다.

그 허전함이 나를 다시 컴퓨터 앞에 앉혔다.


나는 꾸준함을 ‘의지의 승리’라기보다

‘작은 반복의 결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작은 반복은 어느 순간 큰 습관이 되었다.

습관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반복이 주는 선물이었다.


기록이 끊겼을 때 나는 나를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멈췄던 시간을 탓하기보다 다시 이어가면 충분했다.

자책보다 다독임이 습관을 더 오래 지켜주었다.


기록은 성취보다는 위로를 주었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보다

'오늘을 살아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꾸준한 기록은 내 마음의 체온을 지켜주는 장치였다.


돌아보면 꾸준함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나는 종종 멈췄지만 다시 자판을 두드렸다.

넘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일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몇 줄을 남긴다.

그 몇 줄이 내일의 또 다른 기록을 불러온다.

꾸준한 기록은 결국 나를 지켜주는 다리라는 믿음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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