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둔 감정의 거울
나는 오랫동안 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답답함을 안고 사는 날이 많았다.
일기를 쓰면서 그 억눌린 마음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하루를 기록하는 단순한 습관에 불과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수준에서 멈추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글 속에는
감정의 흔적이 남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 흔적들을 읽으며 스스로도 놀라곤 했다.
평소에는 차분해 보이던 내가 사실은 많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일기는 마치 거울처럼 내 마음을 비춰주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분노의 감정을 마주할 때가 많았다.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글 속에서는 다른 모습이 드러났다.
그것은 억눌러왔던 감정이 드디어 목소리를 낸 결과였다.
또한 외로움이 자주 등장했다.
사람들과 어울려도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었다.
일기를 통해 그 외로움을 인정하는 순간이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슬픔도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그동안 슬퍼할 틈조차 주지 않고 달려온 것 같았다.
하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 슬픔을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기쁨의 순간도 더 선명해졌다.
작은 성취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글 속에서 반짝였다.
그것은 내가 느낀 행복을 온전히 붙잡아 두는 방법이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지만,
속으로는 늘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일기는 그 두려움이 나를 얼마나 지배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이렇게 하나씩 감정을 꺼내어보니,
나도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속마음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기는 그 간극을 줄여주는 다리와 같았다.
어느 날은 일기를 쓰다가 눈물이 났다.
글로 표현하지 않았다면
결코 흘리지 않았을 눈물이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반대로 웃음이 터진 날도 있었다.
하루의 사소한 해프닝을 글로 옮기면서
스스로도 웃게 되었다.
그 웃음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일기를 쓰며 깨달은 것은
감정을 숨기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더 깊이 쌓이고 굳어져 나를 무겁게 한다.
글은 그 굳은 마음을 조금씩 풀어내는 열쇠였다.
나는 이제 감정을 숨기는 대신 기록하려 한다.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솔직히 적어낸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분명히 알게 된다.
과거의 일기를 읽으면 당시의 마음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그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도,
왜 그렇게 기뻤는지도 이해된다.
마치 또 다른 나와 대화하는 기분이다.
이 기록의 거울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그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일기가 무겁게 다가올 때도 있다.
지나치게 솔직한 내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일기를 쓰면서 느낀 것은,
감정을 숨기는 것은 나를 지키는 방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정직하게 드러낼 때 치유가 시작된다.
글은 그 치유의 시작점이었다.
내 진짜 마음을 마주하는 일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마주해야 한다.
일기는 그 과정을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였다.
이제는 일기를 쓰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히 나를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숨겨둔 감정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숨겨둔 감정을 솔직하게 비추는 거울로 삼을 것이다.
그 거울 앞에서만큼은 거짓 없는 나 자신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