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의 크기대로 살자
최근에 나는 내가 정말 큰 착각 속에서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착각이라고 불릴 만한 사소한 오해들이 있다.
가령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모든 사람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평균 이상의 외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착각과는 거리가 멀다.
거울 속의 나를 볼 때마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지 못할 충분한 이유를 매일 확인하니까.
또 하나의 흔한 착각은 어린아이들이 자주 하는 것이다.
“나는 크면 서울대에 갈 거야!”
그리고 서울대에 못 가면 연세대나 고려대쯤은 가겠다고 생각하는 착각.
나도 어릴 적엔 이런 귀여운 오해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쯤 되니 그 착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어린 시절의 착각은 이렇게 귀엽게 끝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깨달은 내 착각은 결코 귀엽지 않았다.
오히려 충격적이었다.
그 착각은 바로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다”라는 믿음이었다.
내가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던 근거는 꽤 그럴듯했다.
하루 일과를 보면,
회사 업무 외에도 영어단어를 외우고,
일기를 쓰고,
전화영어 수업을 듣고,
헬스장에 가며,
독서를 하고, 자격증 공부에 대학원 논문까지 쓰는 생활을 해왔으니까.
이 모든 걸 계획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그냥 하나씩 시작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나는 점점 더 확신했다.
“나는 참 부지런하게 살고 있구나.”
그래서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생각했다.
만약 나에게 더 많은 여유 시간이 주어진다면,
영어도 마스터하고,
글도 많이 쓰고,
지금보다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심지어 새로운 자격증까지 따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던 차에 긴 휴가가 주어졌다.
나는 잔뜩 들뜬 마음으로
이 시간을 내 잠재력을 폭발시킬 기회로 삼기로 했다.
평소 짧은 여가 시간도 알뜰히 쓰는 나니까,
이 긴 연휴엔 평소의 몇 배는 성취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일주일 내내 퍼져 있었다.
영어단어 책을 펼쳤다가
“시간 많은데 나중에 하지 뭐” 하며 덮고,
일기도, 글도, 독서도, 자격증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한 건 전화영어였는데,
그조차 허둥지둥 준비하며 대충 넘겼다.
나머지 시간은?
인터넷 서핑, 게임, TV 시청, 멍 때리기 등
평소 “배척해야지”라고 다짐했던 모든 것에 푹 빠져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큰 행운은 지옥과도 같다.”
결국 나는,
평소 시간의 부족함이 만들어낸 부지런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풍족해지자 나는 그 여유를 감당하지 못하고,
게으름의 늪에 빠져버렸다.
휴가가 끝나고 다시 출근할 때,
나는 조금은 놀랍게도 감사함을 느꼈다.
일상이 주는 소소한 여유로움이야말로
내게 딱 맞는 그릇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사람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대로 산다.”
이제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내겐 너무도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