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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추억

스마트폰과 스마트한 사람

by 노멀휴먼

나는 핸드폰을 오래 쓰는 편이다.

지금 사용하는 기기도 4년을 훌쩍 넘겼다.

고장 나지 않는 한, 새 핸드폰을 살 일은 거의 없다.


광고에서는 핸드폰 하나로

인생이 멋지게 바뀌기도 하던데,

나라는 사람한테는

그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나는 주로 친구들과의 카톡 대화나 전화

게임에서 정해진 시간에 아이템을 받을 때만

핸드폰을 주로 썼기 때문에,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신형 스마트폰은

단지 더 비싼 전자제품일 뿐,

내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달 3900원의 할부금만 내면

아이폰 3GS를 가질 수 있다는 광고를 보았다.


갑작스럽게 내 마음속에서는

‘이제는 나도 스마트한 사람이 될 거야’라는

욕망이 급격하게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만족스럽지 않은 학점과 불우한 연애운이

스마트폰으로 모두 해결될 것처럼 말이다.


마음 한편에서는

그게 스마트폰으로 해결될 문제가

맞는지 반문했지만,

이성과 욕망의 싸움은

순식간에 욕망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결국, 나는 서둘러 핸드폰 매장에 들어가

아이폰을 구입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핸드폰을 담보로

빚쟁이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처음 아이폰을 손에 쥐었을 때,

손가락 하나로 인터넷 화면을

이리저리 넘기는 기능에 감탄했고,

앱 스토어에 들어가며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 그래서 다들 스마트폰을 쓰는구나.’

나는 하루 종일 핸드폰을 붙들고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손가락으로 열심히 화면을 밀어댔다.


이틀째에도 스마트폰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스마트폰으로 바꾼 지 오래라

점점 애정이 식어가고 있을 때였지만,

나는 마치 원시인이 문명을 만난 것처럼

'우와, 오, 이럴 수가'를 연발하며

아이폰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녔다.


어쨌거나 친구들은 아이폰 자체에는 심드렁했지만,

그래도 폴더폰을 쓰던 내가 스마트폰으로 바꾼 것을 보고는

인간이 진화할 수 있다는 증거를 찾았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변화를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사흘째가 되자,

그토록 재미있고 자랑스러웠던 핸드폰에 대한 애정이

서서히 식기 시작했다.


물론 스마트폰은

은행 업무, 인터넷 검색,

다양한 앱 활용 등

만능 해결사 같은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틀 반 만에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핸드폰이 바뀌었어도,

나는 여전히 그대로라는 사실이었다.


내 핸드폰 사용습관은

메신저 60%, 전화 20%,

메모장 10%, 게임과 기타 인터넷 10%로 나눌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달라진 건 고작 10%뿐.

나머지 90%의 사용 시간은

기존 폴더폰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쯤 되니,

홈쇼핑에서 불필요한 물건을 잔뜩 사들이는 사람들을

비웃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떻게 저렇게 낭비할 수 있을까?’

‘그 정도 자제력도 없나?’


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임과 인터넷이라는 10%를 위해

핸드폰을 담보로 빚을 지고,

광고에 휘둘린 소비자였으니 말이다.

물론 더 나은 내가 될 수도 있다고 착각한 것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달쯤 지나,

핸드폰을 해지할 수 있을까 궁금해 매장을 찾아갔다.

판매원의 어이없는 표정과

해지 비용이 기기 할부금보다 더 높다는 이야기에

좌절하며 다시 스마트폰을 쓰기로 했다.


그 후로 나는 스마트폰을

반성의 상징으로 삼았다.

사치스러운 소비를 할 때면,

핸드폰을 쳐다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곤 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너무 익숙해졌다.

이전에 10%에 불과했던 사용 비중이

30~40%로 늘어났고,

일반 폰으로는 더 이상 적응하기 힘들다.


그래도 새로운 핸드폰을 사야 할 때가 되면,

그때의 실패를 떠올리며

내게 딱 맞는 보급형 핸드폰으로 만족한다.


어차피 나에게는 지금의 핸드폰도

충분히 만족감을 안겨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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