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 몸과 의학의 한국사> 신동원 / 역사비평사 (2004)
[My Review MMXXXV / 역사비평사 2번째 리뷰] 우리 나라 의학은 그 기원이 꽤나 오래 되었다. 하지만 '중국의학의 아류'라는 헛소문으로 인해 '한(韓)의학'이 크게 주목 받지 못했고, 그나마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향약집성방>과 같은 우리 의학서가 나오기는 했으나 오래도록 '중국의 의서'인 <황제내경> 같은 책들에 의존하는 바람에 크게 빛을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조 때 허준에 의해 집필된 <동의보감>이 쓰여지고 나서는 '한의학'도 새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약재로 중국에서 들여온 비싼 약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약재를 도용하였고, 우리의 풍토와 기질에 맞는 처방법을 시행하면서 독자적인 체계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구한말에 '서양의학'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한의학'이 다시 한 번 위축되었으며, 일제감정기를 거치면서 '근대의학'은 서양의학으로 완전히 굳혀지는 듯 싶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의학체계가 이대로 '서양의학'을 기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정녕 '한의학'은 건강보조식품 취급하듯이 뒷전으로 밀려나야 올바른 것인가? 이런 의문이 끝없이 되묻게 된다. 서양의학이라고해서 '근대 이전'부터 획기적인 시술 방법을 선보인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의학사를 뒤적거리면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잔인하고 끔찍하고 몰상식(?)한 방식으로 환자의 몸을 다뤘다는 점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동양의 의학'은 꽤나 점잖은 편이다. 적어도 환자의 몸을 가르고 째면서 살풍경한 장면을 연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맥과 침, 뜸을 이용하여 환자의 기운을 먼저 보살핀 다음에 '병의 근원'을 치유해나가는 방식이 꽤나 고급져 보일 정도다. 그런데 근대 이후 과학의 발달과 의학기술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해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인식은 확연히 달라졌다. 이른바 '과학적인 관점'에서 서양의학의 압승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동양의학'은 명함조차 내밀 수 없을 정도로 내쳐지고 말았다.
그렇다고해서 '서양의학'만을 현대의학의 바람직한 기저로 보는 지금의 의료계 실태가 진정 바람직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분명히 우리의 '한의학'도 바로 설 자리가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 까닭으로 요즘도 수많은 환자들이 '양약'이 아닌 '한약'을 더 선호하는 편이고, 정형외과적인 시술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고 한의사의 시술(침, 뜸 등등)을 받고서 더 회복이 빨랐다는 예는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에서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서로 콜라보를 해서 서로의 취약점을 보완하며 '협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현실에서는 이게 녹록치 않다는 것만 재확인할 뿐이다. 흔히 말하는 '밥그릇 싸움'에 비견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이게 정말 그럴 정도로 싸울 일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의사들 말로는 '환자'를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정말 '환자'를 위한다면 양의학과 한의학을 가리지 않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치료를 하려고 서로의 학문 영역을 넘나드는 연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물론 '비의료진'의 짧은 소견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책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가 반가웠다. 비록 책의 내용은 '논문'조로 쓰여져서 읽기에 딱딱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의학의 역사를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비판 아닌 비난만 늘어놓은 책이 아니라 '한의학'도 애초에 사람을 살리려던 목적으로 연구되었다는 긍정적인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참 좋았다. 비록 우리의 의학수준이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서 무당을 빌어 굿판을 열거나 부적을 써서 붙이고 태워서 먹이고 허공에 날리며 귀신을 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는 '근대의학'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간절한 바람이었고, 최고의 주술적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바라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랬던 우리가 구한말에 '서양의사'를 만나면서 새로운 의학을 접할 수 있었고, 일제가 '세균'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여주면서 병의 기원이 세균에서 비롯되었다며 '위생'을 깨우치던 조선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코로나19' 감염병으로부터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방법으로 슬기롭게 극복해내는 기염을 토할 정도가 된 셈이다. 이렇게 발달한 대한민국의 현대의학이 오롯이 '서양의학'에 의한 것인지는 한 번 따져볼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더 오래 동안 습득하고 발달 시켜왔던 '한의학'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오히려 서양의학을 연구한 권위자들마저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한약'을 챙겨 먹는 일도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강을 챙기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에 한정되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요즘 사람들치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환자들이 119구급차를 타고서 '대학(대형)병원 응급실'이 아닌 '동네 한의원'을 찾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기껏 발전시킨 '서양의학의 토대'를 완전히 뒤바꿔서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선생님들에게 '한의학'까지 배우라고 강제적인 학과 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거듭 밝힌다.
하지만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서로 만나서 서로 공통으로 다루거나 완전 다른 점을 서로 비교할 수는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게 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불치병'이나 '난치병'의 경우에 획기적인 접근법으로 치유와 치료법을 머리를 맞대고 찾아보는 노력을 기울일 수는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학문을 연구하는 이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들 처지에서는 정작 자신의 아픔을 다스려줄 사람이 '양의사'인지 '한의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하나 뿐인 생명을 두고서 '이런 실험', '저런 실험'을 하며 가지고 놀듯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 분야'만 심도 있게 파고 들어도 힘든 과정인데, 그렇게 힘들고 빠듯한 과정에 서로 연관성이 '1도' 없는 양의학과 한의학을 콜라보 하라니 참으로 한가한 소리나 한다는 불평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시간 정도만이라도 할애를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정도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서 '의료진' 스스로 결정을 내리라고 권유하고 싶다. 우리 전통 의학의 역사를 마주한다는 열린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