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집에 손님이 와 게임을 시청할 상황이 아니었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흐름을 짐작할 뿐. 부엌 옆 내 방에서 음식 준비하며 스코어만 확인. 다음날 새벽 일찍 잠에서 깨, 컴퓨터로 리플레이를 본다.
첫 쿼터 5분 만에 선제 점, 터치 다운을 내 준 브롱코스. 공은 우리 팀으로 넘어오고 꽤 전진을 하는가 싶더니, 엔드 존 근처 20 야드에서 공을 인터셉(intercept)을 당하고 만다.이겼다는 걸 알고 보는 게임이지만 ‘아이고~’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아무리 기량이 좋은 쿼터 백이라고 하나, 보 닉스(Bo Nix)는 신생이고,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여실이 증명하는 실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아쉬운 표정이 잡힌다. 20대 중반인 그에게는 성장할 일 만 남았다. 경험과 노력을 통해서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는 해설자의 설명. 그렇겠지, 라며 동의했지만 2 쿼터에서는 쌕(Sack: 공을 던지려는 쿼터백을 상대방 수비수가 태클을 걸어 넘어지며 공격이 종료되는 것)까지 당했다. ‘저걸 어쩌지?’ 아쉽게도 게임은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겨우 터치다운 하나를 만들어 점수차이가 좁혀졌지만 상대 팀도 필드 골 하나를 추가해 또 점수를 벌린다. 하프타임이 시작되자 모여 있던 남편의 고교 동창들은 ‘아직 잘 못하네. 신생 쿼터 백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거야. 그래도 작년의 쿼터백보다는 훨 낫지, 따라잡을 수 있어’ 등등의 한 마디씩을 보탰던 것이 사뭇 이해가 됐다. 동창들 와이프 중에 나만큼 풋볼에 진심인 사람은 없다. 누구는 게임의 룰을 아예 모르고, 관심도 없고 또 누구는 브롱코스가 지난 10년간 너무 못해서 짜증이 나서 보기 싫단다. 사실 나도 그랬다, 작년까지는. 그러나 올해는 아직 희망이 있다. 일단 와일드카드에 안착을 했고 이번 게임에 이기면 플레이 오프에 갈 확률이 87%라는 CBS 스포츠 해설가의 설명. 한 유튜버는 이번 게임이 슈퍼볼에서 승리했던 2015년 이후, 가장 중요한 게임이란다. 남은 3게임이 상당히 어려울 거고 우리와 동률에 있는 팀들의 남은 게임들은 상대적으로 좀 쉽다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일렬 직관했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쫄깃거리는 감정들을 잘 기억하며 다음 게임도 응원한다. 지난주는 브롱코스의 바이 윅(Bye Week). 시즌 게임을 하는 동안 각 팀이 시즌 중간에 한 주 쉬게 되는 주. 기량을 보충했고 상대팀에 대한 연구도 세심히 하여, 홈구장에서 하는 게임. 확실하게 기선을 잡을 줄 알았는데, 계속 끌려만 간다.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하프타임이 끝나고 3 쿼터가 시작되며 보 닉스는 던진 공을 상대방에게 공을 빼앗기는 인터셉션을 또 당하고 말았다. 아래층에서 들려왔던 ‘야, 야, 야’의 소리가 백번 이해가 되었다. 욕심을 내 너무 멀리 던졌던 탓. 과유불급. 이어 상대방이 다시 터치다운을 만든다. 그때 우리 감독은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상대 팀 선수는 공을 들고 달려 엔드 존 터치다운이 되었다고 생각해 공을 떨구며 환호했는데, 비디오 판독 결과는 그가 엔드 존 밖에서 공을 떨군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터치다운은 카운트가 되지 않았다. 안도의 함성이 구장을 가득 메운다. 상대방 선수의 커다란 실수. 우리에게 너무 큰 도움이 된 거다. 양쪽 쿼터백들은 인터셉을 계속 당하고, 점수는 더 이상 나지 않는 지리멸렬한 경기. 실시간으로 안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면 남편 친구들 앞에서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씩씩거리고 열을 내지 않았을까.
마지막 쿼터가 되고, 상대방 펀트 공을 받은 우리 팀 선수, 밈스(Mims)가 25야드 근처부터 달리기 시작해 수비벽을 뚫고 레드 존(Red Zone)인 15야드 근처까지 달렸다. 이어 다음 공을 받아 터치다운. 순간 점수는 역전되며, 팀의 기세는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또 상대방 공을 가운데에서 낙아 채 엔드 존까지 달려가 또다시 터치 다운을 만들었다. 점수차는 급격히 벌어졌다. 구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 2주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른다. 나도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곳에 있는 것처럼 흥분되고 ‘와아~~~~~’하는 소리를 지르며. 이어서 또 터치다운. 게임 종료 5분 전이었다. 모든 경기가 그렇겠지만 끝나 봐야, 결과를 아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젖 먹던 힘까지 다 쏫는다.
양 팀 모두 너무 많은 인터셉션을 허락했고, 쌕도 많이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롱코스는 4 쿼터에 모든 역량을 다 한 것 같다. 3개의 터치다운을 만들어냈다. 바이 윅을 지내며 팀의 기량이 더 안정되고 나아졌을 거라는 기대는 깨졌지만 일단 플레이 오프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것에만 의미를 두기로 한다. 아직 3번의 게임이 남아 있다. 3팀 다 우리보다 역량이 더 높다는 통계. 예외의 상황은 늘 있지만, 늘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일상 아닌가.
모레, 목욜에는 LA에서 게임이 있다. 시즌 16주의 게임이다. 마음은 벌써 그곳을 향하고, 브롱코스 기어를 챙겨 입고 목소리와 마음을 보태며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고, 발바닥이 아프도록 발을 구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