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한 중학생의 망상에서 비롯된
우리는 일반적으로 유클리드 기하를 통해 공간을 이해한다. 좌표평면은 무한히 뻗은 평탄한 구조로 인식되며, x, y, z 축은 직교하는 채로 무한히 연장된다. 그러나 발산(divergence)의 개념, 예컨대 함수에서의 무한대 발산을 보면, 이 구조가 완전한 설명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든다. 이것은 본질적인 단절이라기보다, 우리가 제한된 차원 위에 투영한 결과일 수 있다.
본 글은 위상수학과 사영기하학, 그리고 물리적 직관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하나의 가설적 구성을 제안한다: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은 사실상 하나의 콤팩트화(compactification)된 다양체이며, 그 끝에는 모든 방향의 무한대가 만나는 하나의 위상적 '맹점(singularity)'이 존재한다. 이는 복소 평면에 무한점을 추가하여 만든 '리만 구'나, '실수 공간의 일점 콤팩트화' 와 유사한 개념이다.
'리만 구'는 복소 평면 를 무한대로 콤팩트화한 구조로, 모든 방향에 발산되는 점에서 하나로 모이게 한다. 사영기하학 또한 평면을 확장하여 평행한 직선들이 무한대의 점에서 만나는 구조를 도입한다는 것. 이러한 방식은 무한을 단순한 발산이 아닌, 위상적으로 닫힌 공간의 일부로 해석하게 만든다.
만약 이 구조를 평면이 아닌 공간에 적용한다면, 그 일점 콤팩트화는 3차원 구(S³)로 주어진다. 이는 모든 공간 축 (+x, -x, +y, -y, +z, -z)의 방향들이 위상적으로 하나의 점으로 수렴함을 의미하며, 우리가 무한히 뻗는다고 생각했던 공간은 사실 하나의 국소적인 곡률 위에 놓여 있을 수 있다는 암시다.
우리가 속한 시공간은 (3+1)차원이다. x, y, z 방향으로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시간축은 항상 +방향으로만 흐른다. 이 비가역성은 물리적 법칙이라기보다는,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본 우리의 제약된 투영일 수 있다. 만약 n차원 존재가 n개의 축을 모두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면, n-1차원 존재는 n개의 축 중 하나의 축에서만 자유롭지 못하다. 이 논리를 적용하면, 우리는 4차원의 구조에 투영된 3차원적 존재로서 시간축에서만 비가역적 움직임을 하는 제약을 받는 셈이다.
이 관점은 우리의 세계선을 더 높은 차원의 다양체 위의 측지선(geodesic)으로 해석하게 하며, 시간의 방향성은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라, 관측자의 차원적 제약에서 비롯된 현상일 수 있다.
이제 모든 방향의 발산이 한 점으로 모인다는 위상적 구조를 시간축에도 적용해보자. 만약 공간뿐 아니라 시간의 +∞와 -∞ 방향도 동일한 맹점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시간 또한 하나의 원형 구조(S¹)를 따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주의 시작이자 끝으로 간주되는 빅뱅을 단순한 기원점이 아닌, 시간축의 위상적 접합점으로 해석하게 한다. (한 점의 공간에서 우주의 시작과 끝이 이루어 진다는 점에서 공간축의 위상적 접합점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로저 페넬로즈(R. Penrose)의 conformal cyclic cosmology(CCC)와도 연결된다. CCC에서는 하나의 우주가 엔트로피적 평탄화 이후 축소되어 다음 우주의 초기 상태로 전이된다고 보며, 이때 시간의 무한한 미래는 곧 새로운 시간의 시작이 된다. 우리 우주가 S³ 구조처럼 위상적으로 닫힌 시공간 위에 존재한다면, 빅뱅과 빅크런치는 하나의 동일한 점, 즉 우주적 맹점에서 만나며 순환구조를 이루게 된다.
이 글은 예측 가능한 물리 법칙을 제안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공간의 구조를 새롭게 사유하기 위한 철학적/수학적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영기하학, 리만 콤팩트화, 시간의 위상적 순환 구조는 우리에게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 우주는 직선적 원인이 아닌, 스스로를 접고 펼치는 위상적 생명체이며, 맹점은 단절이 아니라 차원 전이의 통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