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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Nov 09. 2024

위로가 필요할 때...
나의 사랑 이야기를 하십시오

최고의 위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것

위로가 필요합니까?

그렇다면 나의 사랑 이야기를 하십시오.

물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위로하는 데 너무나 서툽니다. 그 상실이 얼마나 크고, 그 슬픔이 어떠한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겪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배우자를 잃었을 때 적절하게 위로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똑같이 배우자를 잃었지만, 그 사람이 느끼는 상실과 슬픔은 나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고의 위로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준 것입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했고, 그 사람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이야기하고, 그 사람은 나의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내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주치의가 불렀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쓸 약도 없고 치료법도 없다면서, 이제 임종 단계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명시적으로 그 말을 듣는 순간 절망감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가슴은 터질 것 같고,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이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어찌해야 합니까?

저녁이 되고 밤이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온 병원을 돌아다녔습니다. 누군가 붙들고 통사정을 하고 싶었습니다. 본관 별관 1층부터 꼭대기까지 온 병원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웬일인지 지하에 있는 기도실은, 매일 밤 기도하던 곳인 데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불면의 밤이 지나고 다음날, 지난 밤 그렇게 찾아다녔던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먼저 나를 찾아왔습니다. 바로 앞서 잠시 이야기했던 병원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입니다.

병원 내의 상담사,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의 상담을 맡은 사회복지사가 병동마다 배치되어 있었고, 이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내가 그 상담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카운슬러는 나이 마흔이나 되었을까…나의 딸 뻘의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상담실 테이블에 마주 앉았습니다.

마음 속으로 이런 어린 여자가 무엇을 알까…무슨 상담이나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크리넥스 한 통과 물 한 잔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첫 마디는 전혀 뜻 밖이었습니다. 

아내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120% 완벽한 여성이지요. 나에게는…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여자…”

“아, 이렇게 말씀하신 분은 아버님이 처음입니다. 어머님은 참 행복한 분이시군요!”


그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휴지를 뽑아 내밀었습니다.


“어머님 이야기 더 해 주세요…”


나는 이렇게 나이도 어린 여성 앞에서 내가 그렇게 펑펑 울 줄은 몰랐습니다.

아내와 나의 행복했던 순간, 우리가 처음 만나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가슴 속을 채우고 있던 커다란 불덩이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카운슬러가 내게 해 준 말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진지하게 듣고, 내가 계속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 준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울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그것이 최고의 힐링임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고, 슬픔이 가벼워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대하는 나의 마음, 태도는 완전히 바뀐 것이지요.


그 후에도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아니 임종을 늦추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시간들에 대한 추억은 슬픔 속에서도 적지 않은 위로를 주었고, 그것이 내가 버텨 나가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겨가는 날, 나는 침대에 실려 옮겨가는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내가 당신이 꼭 걸어서 이 병원을 나가게 해줄 거야!”


그리고 내가 믿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기적적으로 나았다는 사연을 따라 전국 곳곳을 뒤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 여기저기 알아보고,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그것은 생각해보면, 많은 부분, 자기 위로의 한 방편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내가 무엇이라도 했다, 또는 최선을 다했다는 일종의 변명이랄까요…


호스피스 병원에서도 소속 카운슬러와의 상담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은 이전 상담에서 큰 위로를 얻은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나와 아내 이야기를 많이 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스스로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도 꽤 많은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역시 앞서 간략하게 소개했던 대화 내용을 좀 더 상세하게 되살려보면…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 아버지를 잃었고, 친구도 잃어 봤고… 그런 상실을 많이 겪어서 이번에도 잘 견딜 수 있을 거예요.”

“7살에 어머니를 잃은 경험과 12살에 아버지를 잃은 경험, 그리고 성인이 되어 친구를 잃은 경험 등은 모두 각각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즉 이런 것들이 경험이 되어 내성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아버님은 다른 사람보다 몇 배 힘드실 것입니다. 어릴 때의 그 상실이 적절한 치유가 이뤄지지 않은 채 그대로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또 다른 상실의 상처가 덧입혀지므로, 다른 사람보다 더 큰 데미지가 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미국 어느 주립 대학에서 학위를 했다는 그 상담 선생님은 혼자서 그 많은 환자와 가족을 감당하느라 매우 바빴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여러 번 상담 스케줄을 잡아주고, 또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등 특별히 배려해 줬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장례식장에 문상까지 와 줬으니까요.

그녀가 문상을 온 그날 제가 말했습니다.


“자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솔루션을 내놓으세요…”

“솔직히 솔루션은 없습니다. 이 슬픔을 견뎌내는 것이지요. 충분히 슬퍼하시고 애도하시고, 어머님을 추억하십시오. 두 분 많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만큼 더 힘드실 겁니다. 그래도 그 사랑으로 이겨내셔야죠…”


그녀는 아무런 처방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신뢰가 갑니다.

지금도 가끔, 누군가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으면, 나와 아내, 우리가 얼마나 서로 사랑했고, 그 아름다운 시간들이 어땠는지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또 눈물이 솟아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감마저 차오르니까요.

위로가 필요하십니까?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서로 사랑했던 그 아름다운 스토리와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 놓고 이야기하십시오

제가 읽은 책의 한 구절입니다.


“우리가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망자와의 이별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망자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슬픔을 이야기함으로써 우리는 망자를 계속 우리의 삶에 존재하게 하고, 그들의 죽음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의 상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게 된다.”(켄디 칸 ‘가상의 사후 세계’: ‘제대로 슬퍼할 권리’ p.92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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