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건
햇살이 아니라
늘 그림자였습니다.
내 발끝을 따라붙는 긴 어둠,
아무리 달려도 떨쳐낼 수 없는 그늘,
그것은 마치 미완의 숙제처럼
언제나 제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느 날엔 이유도 없이
나라는 존재가 낯설게만 다가왔습니다.
봄날의 꽃잎처럼 희망은 스러지고,
여름의 번개처럼 분노는 번쩍이며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가을의 낙엽처럼 익숙히 쌓여
겨울의 그림자처럼 제 곁에 머물렀습니다.
제가 바라던 삶은 참 단순했습니다.
작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품에 안아 사랑을 나누며,
그 속에서 내 결핍이 채워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삶은 바다였습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파도처럼 겹겹이 밀려들었고
저는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거친 바다 위에서
또 다른 생명을 불러내야 하는가.
내가 지닌 무게를,
내가 어긋난 길을
그 작은 어깨에까지 얹어야 하는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바람은 스쳐갔지만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고,
별빛은 반짝였지만 끝내 닿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제 안의 빛은 서서히 옅어지고
나만의 색깔은 바래어 사라졌습니다.
존재의 의미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바람결에 흩날리는 먼지로 남았습니다.
밤이면 어김없이 생각들이 몰려와
검은 파도처럼 내 가슴을 덮쳤습니다.
아침이 와도 사라지지 않는 발자국들,
그 위에 앉아 나를 끝내 지켜보는 그림자.
저는 묻습니다.
이 무게를 감사라 해야 할까요.
아니면 감당하지 못하는 나를 탓해야 할까요.
그러나 질문은 바람 속으로 흩어질 뿐
아무런 답도 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오늘도 글을 쓰는 동안
숨이 조금은 고르게 쉬어졌다는 것.
그 잠시의 고요가
제 안의 바다를 가라앉히고,
제가 구태여 살아 있다는
아주 작은 이유가 되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