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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주 Jun 10. 2021

어떤 종업원은 냉소적일 수밖에

눈빛은 말한다.

축축한 토요일 저녁 카페였다. 바깥은 음습했고, 나는 맨 정신이었다.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장엄하리만큼 조용했다. 두 사람은 예외였다. 사실은 두 사람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카페의 많은 사람들을 엄중한 상태로 만든 것이었다. 한 명은 카페 임시 종업원인 나였고, 나머지는 버블티를 맥주잔처럼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술 취한 고객이었다. 


고객은 그다지 젊지도 않았고 많이 늙지도 않았다. 그다지 신경 쓴 차림새도 아니었지만 완전히 후줄근한 모습도 아닌, 확실한 것은 부유해 보이지는 않았고 심술은 덕지덕지 붙은 미련한 얼굴이었다. 나는 이런 류의 얼굴을 안다. 턱이 발달했고 큰 얼굴은 비대칭이고 반곱슬의 머리스타일을 한 얼굴. 이런 얼굴은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다.


카운터 앞에서 고객은 내 얼굴 앞으로 버블티를 들이밀었다가 뺐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내 눈 앞에 있다가 멀어졌다가 하는 버블티와 고객의 고약한 턱주가리를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버블티 안의 타피오카 펄이 넘칠 정도로 손을 달달 떨며 흥분한 고객이 턱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내 잘못이란 거야?"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은, 고객 스스로가 화를 못 이겨 난동을 부리기 직전까지 그대로 두어야 할 때가 있다. 프로페셔널한 종업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공격적으로 대응하며, 고객이 스스로 무너지게 할 필요까지도 있다. 당장 한판 하자고 도발하며, 정식으로 대결하자고 부추겨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흥분한 고객은 그래 한번 해보자며 날뛰다가 나자빠진다. 그게 아니라면, 주변에 몇 안 되는 제정신의 동료가 고객을 끌어안으며 말릴 것이다. 말릴 만한 제정신 박힌 동료가 없다면? 가까운 경찰서의 경찰들이 동료가 돼줄 것이다. 물론 그때는 고객의 두 손에 수갑을 채우겠지만. 112는 민중의 몽둥이이다. 술 깨는 데는 몽둥이찜질 만한 것이 없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대학교 동문이자 이 카페의 사장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사장에게 괜찮다며 고개를 숙이는 신호를 보냈다. 사장은 머뭇거리며 다시 음료 제조실로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훽 돌려 고객을 바라보고 말했다. "네. 고객님 잘못입니다. 제가 번호와 메뉴 물어봤잖습니까. 고객님은 대답까지 하고 가져갔잖습니까." 고객은 문신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유성매직 짱구 눈썹을 치켜세웠다. "뭐? 그래서 어쩌라고?" 고객이 말했다. "이렇게 일해서 얼마나 버는데? 만원? " 고객은 언짢은 표정으로 혀를 찼다. 내가 아니꼽다는 태도였다.


"내 일당으로 스무고개를 할 마음은 없습니다."

나는 일부러 '고객님'이란 호칭을 빼고 날카롭게 말했다.

"이미 빨대까지 꽂고 시럽까지 넣었으니 버블티 가격 추가로 계산합니다. 그리고 주분 번호 17번 카페 라테는 곧 나옵니다."


나는 초연한 태도로 사건을 처음부터 떠올렸다. 술 취한 고객은 직장 동료로 보이는 몇과 함께 카페 라테를 주문했고, 나는 주문서에 적힌 주문 번호를 직접 읽어줬다. 17번이라고 말했다. 주문 번호를 부르면 메뉴를 확인하고 가져가라고 했고, 시간이 15분 걸린다고 말했다. 고객은 내 안내에 건방진 손짓으로 대답했다. 나는 제조실로 주문을 전달했고, 제조실에서는 주문을 받고는 앞서 주문받은 14번 고객의 버블티를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14번 고객의 버블티가 나왔다고 이야기를 했고, 갑자기 17번 고객이 자신의 카페 라테인 줄 알고 받자마자 빨대를 꽂고 시럽을 넣었던 것이었다.


"뭐? 잘못 나온 음료를 내가 결제하라고? 이거 정말 미친갱이네. 야!" 고객은 더 흥분한 상태로 소리를 지르며 카운터 가까이로 다가오려고 했다. 나 역시도 고객 가까이로 계속 가려고 했다. 나와 고객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던 카페 손님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우유같이 부드러운 여자들의 목소리와 커피처럼 묵직한 남자들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겹치고 섞여 웅성거렸다, "어머!" "어떻게!" "저기 싸우려나 봐!" 


나는 혹시 모를 물리적 충돌에 대비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와라. 이런 상황에서의 제1원칙은 전심전력이다. 당하고만 있지는 않으리라. 내가 두 팔을 위로 올리며 방어 자세를 취하려는 순간, 고객의 동료 중 한 명이 카운터로 뛰어왔다. 그는 자신의 신용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이걸로 계산해주세요. 이 친구가 원래 안 그런데, 술을 많이 먹고 와서 좀 흥분한 거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멈췄다. 당장이라도 내 얼굴에 잽을 날릴 것만 같았던 고객의 얼굴에 안면장애 같은 웃음이 퍼졌다. 뛰어온 사람은 동료가 아니라 상사인듯했다.


카페 사장이자 대학 동문인 친구는 토요일 하루만 카페 일을 도와 달라고 했다. 카운터를 보는 아르바이트생이 21살인데, 51세인 어머니가 갑자기 황반변성 진단을 받아 금요일에 수술을 받았고, 최소한 하루는 병간호를 해야 해서 도저히 나올 수가 없다고 했다. 사장인 자신은 음료 제조를 해야 해서 카운터를 동시에 볼 수 없으니 어떻게 안 되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르바이트생의 나이와 그 어머니의 나이와 질병명까지 전해 들으며, 알았으니 그만 말해도 된다며 일일 아르바이트를 승낙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고객의 상사로 보이는 사람의 카드로 계산을 하고 얼마 안 되어 17번 주문인 카페 라테가 나왔다. 나는 영수증과 카페 라테를 함께 내밀며 아주 큰 소리로 말했다. "주문하신 17번 카페 라테 나왔습니다! 주문 번호 확인하고 가져가세요!" 음료를 받은 고객 일행은 뭔가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찰랑하는 소리와 함께 카페 문을 박차고 나갔다. 


15분 정도가 지나갔다. 카페의 많은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를 재잘대기 시작했다. 나는 카운터에서 각자의 이야기에 몰두하는 손님들의 한 명 한 명 노려 봤다. 경고의 눈빛이었다.  '경고한다. 전국의 모든 카페 종업원들이 항상 친절하지는 않다. 특히나 축축한 토요일 저녁의 어떤 카페 종업원은 매우 냉소적이다. 더구나 그 상대가 14번과 17번을 구분 못하는 술 취한 고객이라면' 그들은 내 눈빛에 담긴 메시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커피를 홀짝이며 가벼운 입들을 재잘대고만 있었다. 


그렇게 카페 임시 종업원의 토요일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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